계속되는 권력 비리 의혹 국민들은 ‘피곤해’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를 펼치다 구속 기소된 박태규 씨와 관련해 과연 현 정권의 어떤 인물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11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름이 거론된 인물 중 이상득 의원은 곧바로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고 이동관 청와대 언론특보는 박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과를 했으나 박 의원이 이에 격노해 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 중에는 박 의원이 벌여왔던 의정활동을 평가하며 ‘뭔가 있을 것’이라고 공감하는 쪽과 ‘일단 지르고 보자’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불신하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상관없이 이른바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됐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피곤해하고 있다. 정권과 관련해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느끼다가 이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정치 무용론’까지 얘기하고 있다.
박태규 리스트 의혹 실명 거론과 관련한 며칠간의 모습을 살펴본다.
이동관 특보, 문자메시지로 ‘물타기?’
신재민 전 차관, SLS그룹-박태규 리스트에 모두 포함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를 펼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태규 씨와 관련된 11명의 인물을 실명 거론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 의원이 거론한 인물은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이상득 의원,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정정길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 이동관 언론특보, 김두우·홍상표 전 홍보수석비서관,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조석래 전 전경련 회장 등이다.
박 의원은 “박 씨를 만난 분들이 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유력인사를 만나서 로비를 하니까 박 씨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박 의원의 의혹 제기가 있은 다음 날 이상득 의원실은 성명을 통해 “일부 야당의원이 제기한 이상득 의원과 박태규 회장 관련설은 사실무근”이라며 “박태규 회장은 이상득 의원이 다니는 교회의 장로도 아니고 이 의원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 같은 일이 재발할 경우에는 동료의원이라 할지라도 법적인 대응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해 향후 박 의원에 대한 법적대응도 고려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동관-박지원
문자메시지 공방
박 의원의 의혹 제기에 발끈한 것은 이상득 의원만이 아니었다.
이동관 청와대 언론특보도 곧바로 박 의원에게 두 번이나 문자를 보내 ‘섭섭함’을 드러냈다.
이 특보는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라는 문자를 1분 간격으로 보냈다.
박 의원은 국감 도중 신상발언을 통해 문자를 공개하면서 “국회를 무시한 처사로 이 특보를 해임하라”고 항의했다. 이 때문에 국감이 15분가량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특보는 이에 대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라는 문장 맨 앞에 ‘내가’라는 표현이 빠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이에 대해 “BBK때 나경원 의원이 ‘주어가 없다’고 해 ‘주어 경원’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주어 동관’이 탄생한 것이다”고 꼬집었다.
이런 박 의원에게 이 특보가 사과의 문자를 보냈으나 박 의원은 또 다시 크게 화를 냈다.
박 의원이 이 특보의 문자메시지를 언론에 공개된 다음날인 5일 이 특보는 박 의원에게 “전화 안 받으셔서 문자 올립니다”며 “저도 섭섭한 감정에 격해 무례하게 비칠 수 있는 글 보낸 점 사과드립니다. 탓 없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너그럽게 화푸세요. 저와 박 선배님이 그럴 사이입니까. 선배님 건승 빕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뒤이어 바로 “이건 공개 안 하실 거죠? ㅎ”라는 문자메시지를 또 보낸 것이다.
박 의원은 이 특보의 문자메시지에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특보가 정당한 국감을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강력한 항의를 해 달라. 이동관 특보를 해임해 달라”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박태규 리스트 의혹이 이 특보와 박 의원 간의 문자메시지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자의건 타의건 상관없이 물타기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다.
언론들은 의혹 제기에 따른 후속 기사보다는 박 의원과 이 특보 간의 문자메시지를 둘러싼 공방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국민들 ‘찔러보기’ vs ‘증거확보’ 갈라져
박 의원이 이른바 ‘박태규 리스트’를 공개함에 따라 이목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일각에서는 실체 없는 의혹 제기 아니냐는 지적도 일었다.
실제로 박 의원이 박태규 리스트의 실명을 공개했지만 언제, 어디서 등 정확한 내용을 밝히지 않아 박 의원의 의혹 제기가 이른바 ‘지르고 보자’는 것일 수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함구하고 있어 당분간 이런 지적을 계속 받을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권력비리를 엄정히 처단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논해야 국민이 납득한다”며 “감옥에 다녀오고 온갖 추문이 있던 분이 권력비리 운운하니 민망하다”고 박 의원을 비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의 의혹 제기는 사실일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박 의원이 의정활동과 국감을 통해 의혹을 제기했던 내용 중에는 사실로 밝혀졌던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의원은 한상대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에서 다운계약, 스폰서 차량 등의 의혹을 제기했으며, 지난해 원내대표를 맡았을 때는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정국 이슈를 확실히 주도하며 ‘정치권이 박지원의 입만 쳐다보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이슈메이커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현재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박태규 리스트를 박 의원이 공개한 것은 ‘찔러보기’가 아닌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 의원은 이상득 의원 측이 “친분이 있는 사람은 박규태라는 연세대 명예교수로 퇴직한 분”이라고 박 의원이 실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소망교회에는 박태규도 있고, 박규태도 있다. 우리도 박규태 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실수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국민은 ‘게이트 피로감’ 해소 원해
박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며 실명을 거론한 인물 중에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부 차관이 있다.
신 차관은 현재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주장하고 있는 로비대상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현금과 법인카드, 차량 등 편의를 제공했으며 지금까지 전달한 돈만해도 1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 회장의 주장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밝혀진 진실은 없다. 하지만 이 회장의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어서 국민들은 이 회장의 주장이 모두 사실은 아니더라도 몇 가지 주장은 맞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정권을 보면 이른바 게이트로 인해 정권 초기부터 말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많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에는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공직자 기강을 확립하려고 했으나 ‘한보게이트’와 ‘김현철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부의 의지가 한풀 꺾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중반에 터진 진승현·이용호 게이트는 ‘국민의 정부’에 오명을 남겼다. 거기에 집권 말기에 터진 ‘옷 로비 사건’은 DJ정부에 치명타를 안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측근 비리와 친형인 노건평 씨 문제로 임기 말기에 곤욕을 치렀다.
국민들은 이제 권력을 가진 인물이 비리와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당연히 그렇지 않겠어?’라는 피로감에 쌓여 있다.
국민들은 이런 피로감을 풀어 줄 인물의 필요성과 함께 권력에 힘을 빌려 측근비리를 저지르는 인물에 대한 강력하고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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