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개월 대통령 외치는 자, 대권 잡는다”
“39개월 대통령 외치는 자, 대권 잡는다”
  • 조기성 기자
  • 입력 2012-10-29 13:48
  • 승인 2012.10.29 13:48
  • 호수 965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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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중임제 개헌, 최대 이슈로 떠오르나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조기성 기자] 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4년 중임제 개헌’이 대선판을 흔들 최대 이슈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등 정책 공약과 함께 정치쇄신이 각 후보들의 핵심 공약으로 발표되면서 대선 주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최근 정치쇄신안으로 내놓은 국회의원수 축소가 이슈화되면서 개헌의 한 방향인 ‘4년 중임제’에 대한 각 후보들의 입장에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4년 중임제’로 개헌 시 2016년 4월 20대 총선과 함께 19대 대선을 함께 치르게 돼 차기 대통령은 39개월(2013년 2월~2016년 5월)의 임기만을 보장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임기 21개월을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먼저 치고나오는 후보가 차기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총선 시기를 일치시키자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2007년 ‘원 포인트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시점을 일치시키자고 제안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현행 헌법 체제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가 자주 실시돼 정치적 갈등과 대결을 심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국회의장, 국무총리, 정당 대표 등을 지낸 여야 원로 17명이 대선 후보들에게 4년 중임제 개헌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원기·김형오·박관용·임채정 전 국회의장, 고건·이수성·이한동·이홍구 전 국무총리, 권노갑·김덕룡·김상현·이기택·이부영·이우재·이종찬·정대철 등 전직 여야 지도부, 목요상 헌정회장 등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민주화를 성취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수행했으나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87년 이후 ‘제왕적 대통령’으로 시작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해 온 전철을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원치 않을 것”이라며 대선 후보들에게 개헌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론 ▲차기 대통령 취임 1년 이내에 개헌 완료 ▲대통령 4년 중임제 ▲19대 대선과 2016년 총선 동시 실시 등을 제시했다.

이들은 또 “18대 대통령 당선인은 19대 대선 때 중임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책임정치 구현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회 내에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상당히 무르익은 편이다. 지난 5월, 19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 결과 여야 당선자 206명 가운데 165명(80.1%)이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개헌이 필요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7.3%에 불과했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76.8%)보다 민주통합당(83.5%)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7대와 18대 국회에서도 개헌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줄곧 이어졌지만, 정당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뚜렷한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재조명 받는 이재오

이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18대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약속했던 내용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이 의원은 현행 대통령제(5년 단임)에 대해 “1987년 체제 이후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뤄냈지만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내용적·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고 있다”며 “이 때문에 역대 모든 정권은 부패로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취임 후 6개월 안에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하고, 정치일정을 안정시키겠다”며 “당선되면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일정을 일치시키기 위해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용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완전국민경선제’ 경선룰을 박근혜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끝내 경선 불참을 선언했지만 그 이후에도 ‘개헌 전도사’로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의원은 지난 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분권형 개헌 추진 국민연합’ 창립대회를 열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목표로 300만 명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단체는 후보들의 개헌에 대한 입장이 수렴될 경우 지지 후보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정권 재창출도 중요하지만 (분권형 개헌이) 나라의 미래다. 일단 이 운동(개헌)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박-문 ‘찬성’ 안 ‘유보’

3강을 형성하고 있는 세 후보들은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개헌에 대해 조금씩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조건부 찬성 입장을 나타낸 반면 안철수 후보는 찬반 여부에 대해선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2일 3명의 대선 후보들에게 개헌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다.

박 후보는 “국가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정치 구현, 부패방지 등을 위해 4년 중임제가 더 낫다”면서도 “권력구조 문제 외에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회 변화에 따른 기본권의 확대를 위한 내용과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한 부분 등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며 “귀화자와 재외국민 증가 등 사회변화에 따라 현행 헌법에 차별금지 사유인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 이외에도 인종, 연령 등을 추가 예시하고 생명권, 환경권 등 현대적 기본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바람직한 개헌 시점은 특정 시점을 적시하기 보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후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민생현안이 실종될 정도로 정치쟁점화해서 추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시급한 안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87년 이른바 직선제 개헌의 핵심은 단임제가 아니라 직선제에 있다”며 “대통령 중임제 개헌은 대통령에 대해 국민이 선거를 통해 평가의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대통령직선제민주정치의 본질적 요청에 부합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정치적 책임성의 약화, 정책의 일관성과 국정운영의 연속성 저하, 선거를 통한 국민의 평가 기회 배제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중장기적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하는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아울러 “권력구조와 관련하여 개헌 논의를 단순한 중임제 개헌 논의에 국한하기보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규범을 담아내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중에서 상당 부분을 총리나 각부 장관에게 분산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 등 통치구조와 국정운영 방식과 관련한 다양한 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안 후보는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만 밝히는 등 개헌 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안 후보 캠프 내에서 4년 중임제 개헌, 2016년 대선과 총선의 동시 실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확대 등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무소속 후보로서 국회 내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 한계가 있어 논의 자체를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각 캠프들, 개헌에 소극적

각 후보 진영의 반응 역시 소극적이다. 이해득실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치고나가기에는 개헌은 너무나 큰 대형 이슈라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한 캠프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의 임기를 21개월이나 줄인다는데 대한 캠프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솔직한 속내”라고 귀띔했다.

또한, 4년 중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1기 재임 기간 동안 재선 운동에 올인하면서 국정 운영이 왜곡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제의 본산인 미국이 4년 중임 대통령제이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김문수 경기지사는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이 정적 탄압과 재선 선거운동에 몰두하고 낙선한 후보는 대통령 끌어내리기로 일관해 4년 내내 극심한 정쟁이 일상화할 우려가 있다”면서 반대론을 폈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 한 의원도 “권력구조를 바꾸면 상당한 사회적 코스트(비용)가 발생할 것”이라며 “4년 중임제는 3년차부터 대선을 준비하면서 레임덕이 더 빨리 올 수 있고, 분권형 대통령제는 위기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주자 중 누군가가 4년 중임제로 개헌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기득권 내려놓기’로 대변되는 정치쇄신 이슈를 선점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지난 17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 주자 진영 간 경쟁적인 정치쇄신안도 결국은 개헌 담론의 하위개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개헌을 이룰 수 있다”며 “후보 측근들도 과감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한다면 후보단일화나 본선 모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도 “5년 단임제는 독재방지 때문에 만들어놓은 것으로 이미 유효성을 잃었다”면서 “2~3년 열심히 설계 잘 해서 레임덕도 짧고 그 다음 임기로 가고, 그 다음 선거에서 기존 4년 동안 쌓은 노하우로 레일을 깔고 후대로 가는 4년 중임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안철수 후보가 임기단축을 걸고서라도 이걸 하게 되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박수 받으면서 내려오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이라면서 “안 후보는 사실상 어쨌든 임기단축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걸 한다고 하면 안 후보를 지지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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