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 후폭풍 1

오세훈 전 시장의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인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표 결집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박 전 대표가 주민투표 선긋기에 나섰다는 이유로 당 안팎에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 이에 더해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입장차로 차기 대권레이스에서도 자연스레 박근혜 대 反박근혜, 非박근혜 구도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항마’를 꿈꾸는 이재오 특임장관, 정몽준 전 대표 등이 오세훈 전 시장의 주민투표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지난 회동 이후 크게 부딪치지 않았지만, ‘오세훈 지원’ 카드를 꺼내들었던 이 대통령과 사실상 ‘방관’했던 박 전 대표는 각자의 길을 가는 모양새다. 자연스레 ‘지원-방조’를 둘러싼 친이-친박 간 갈등구도가 표출되며 후폭풍이 엄습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내 가속화 중인 권력이동 및 ‘각자도생’ 와중에 코너에 몰린 친이계가 당 복귀를 앞둔 이재오 특임장관을 구심점으로 재결집할 하나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친이계가 최근 ‘아산 나눔 재단’ 발족을 계기로 대권행보를 본격화한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연대를 통해 ‘박근혜 대항마’ 만들기에 주력할 명분으로도 작용할 공산이 크다.
친이 등 비박, ‘박근혜 대항마’ 띄운다
‘박근혜 책임론’ 제기…보궐선거 지원유세 불가피
친이-친박 갈등 양상
오세훈 전 시장이 주민투표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기획한 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정략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무상급식으로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일격을 당한 여권으로서는 반전의 카드가 필요했고, 여권 핵심부 일각에선 대선주자 오 전 시장을 보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박근혜 대항마’로 띄우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통령 측근인 박형준 청와대 사회통합특보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올해 초 박 특보가 무상급식 문제를 복지 포퓰리즘과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보수층을 결집시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오 전 시장에게 주민투표를 하자고 권유한 사람은 박 특보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박 특보는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와 극한적으로 대립하던 오 전 시장에게 ‘주민투표에 부쳐 승부수를 띄워라. 이기면 보수의 영웅이 된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는 게 여권에 퍼져 있는 정설”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계의 중진의원도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주민투표에 거부반응을 보인 것도 박 특보의 의도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무상급식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에서도 친이계와 친박계-소장파 간엔 이견이 표출됐었다. 대표적으로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과 소장파 대표격인 남경필 최고위원이 전면 무상급식에 찬성 입장을 표했다. 유 최고위원은 주민투표 논란의 와중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민주당 도지사냐”라며 오 전 시장을 지지하는 한나라당의 공식적 입장에 반발하기도 했다.
친이-친박계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한나라당 지원 문제를 두고는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달았다.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이 “주민투표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에 대해 친이계 신지호 의원은 22일 한 방송에서 “최전선에 나가서 동지들이 싸우는데 뒤통수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몰상식한 해당행위”라고 소리를 높였다. 신 의원은 “서울시당 내에서 수차례 논의 끝에 추진하지 말자는 일부 소수 의견이 있었느냐, 전체적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다수의견이 있어서 추진하게 된 것인데 유승민 최고위원은 그 과정에 전혀 관여한 적도 없고, 대구의원으로서 나중에 최고위원이 되었다”며 “그러면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적어도 입을 다물고 있는 최소한의 그런 정도의 금도는 지켰어야 하지 않느냐, 자기가 한 게 뭐 있다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속된 말로 고춧가루나 뿌리냐”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박근혜 책임론’
친이계, 반전카드로 활용
이 같은 친이-친박 갈등 속에서 치러진 주민투표가 결국 무산되자, 친이계를 비롯한 당 일각에서는 ‘박근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오 전 시장이 대선 불출마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박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외면했다는 것이다.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다. 박 전 대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일관되게 “무상급식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사정과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정과 형편에 맞춰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박 전 대표는 주민투표 전날에도 “서울시민이 판단하지 않겠느냐”며 선을 그었다.
친이계이자 이번 주민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선 신지호 의원은 박 전 대표를 향해 “전면에 나서라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측면지원을 원했는데 이것조차 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신 의원은 그러면서 “실제 현장에서도 박 전 대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아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며 “친박근혜계도 사실상 (투표 지원에) 손을 놓고 있었던 만큼 개표 무산 책임론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친이계 강승규 의원도 한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대표께서 주민투표와 일정 거리를 둔 것이 당·서울시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그 과정 속에서 판단될 것으로 본다”고 경고성 발언을 이어갔다.
실제로 주민투표 이틀 전인 지난 22일 저녁 보수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 150여 명은 박 전 대표의 자택 앞에서 “입장을 밝히라”며 촛불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보수진영 논객들은 앞다퉈 박근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 전 대표는 자신의 공식사이트에 ‘시민의 분노로 한나라당과 박근혜 기득권 체제를 부숴버려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보여준 무기력하고 비겁한 침묵은 경악 그 자체였다”며 “보수의 핵심들이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이 폭발하면 한나라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고, 박 전 대표 독주의 대선 구도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민투표가 단순한 정책투표를 넘어 복지정책을 다투는 보수와 진보의 전면전으로 확전됐던 만큼, 보수층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가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친박계 의원들은 주민투표는 국민투표가 아니기에 중앙정치인인 박 전 대표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오 전 시장이 시작한 투표인데 엉뚱하게 박 전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구상찬 의원은 “이번 주민투표는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주민투표로 박 전 대표나 계파 책임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박 전 대표 책임론을 일축했다.
이한구 의원도 “선거 후보자나 정책 결정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거 과정에서 어려워지면 ‘설거지하라’는 식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책임론을 차단했다.
박근혜 ‘조기 등판론’ 재부상
그러나 ‘박근혜 책임론’이 고개들면서 ‘박근혜 등판론’이 재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10월 서울시장 보선이 기정사실화돼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절실해지는 분위기다. 반여(反與) 민심이 팽배한 현 상태에서 보선이 치러지면 승산이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 등판은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앞당기는 것이어서 대선 경쟁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당 지도부·의원의 구조 요청 쇄도 상황을 가정해 고심하는 기류가 엿보인다. 한 정치전문가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친이계 내부 핵심 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를 보궐선거에 참여하도록 해 대중에게 평가받게 하려는 정략적 판단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에 대한 압박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올 것이고 총선과 가까운 보궐선거라는 이유 등으로 외면하기 힘들어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묘한 시점,
‘신당 창당론’ 제기
이런 시점에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8월 셋째 주 주간 정례조사에 박세일 선진통일연합 상임의장을 후보군으로 올렸다. 박 상임의장은 3.6%의 지지를 얻어 여권 후보로서는 박 전 대표(33.8%), 정 전 대표(4.1%)에 이어 김문수 지사(3.6%)와 공동 3위를 차지했다.
박 상임의장은 이름을 올리자마자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2.7%), 정운찬 전 국무총리(1.4%), 이재오 특임장관(0.8%) 등을 앞선 것이다.
이와 관련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 전 시장이 대선 불출마선언을 함으로써 빠진 자리에 누구를 넣을까 고민하다가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왔을 때 현실정치에 참여할 분이 누굴까 고민하다 박세일 교수를 넣었다”면서 “박 교수가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획득한 것은 한나라당 지지층 내에서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통보수 일부에서 차기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아닌,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닌 우파 이념을 위한 정당과 대선후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에 투철한 이들은 지난 4·27 재·보선 패배 이후 좌클릭이 분명해지고 있는 한나라당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며 보수층을 대변할 선명한 우파 이념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 신당(新黨) 창당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고, 무상급식 포퓰리즘 심판 전도사로 나섰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박 전 대표에 대해 “한 번도 보수였던 적이 없다”, “한나라당을 탈당하라” 등 맹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오세훈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카드로 인해 ‘박근혜 책임론’을 정면으로 받아 안으면서 밖으로는 ‘박근혜 불가론’까지 떠안게 된 형국이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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