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일배 코오롱정투위 위원장 “8년의 투쟁, 명절이 더 쓸쓸해”
[인터뷰] 최일배 코오롱정투위 위원장 “8년의 투쟁, 명절이 더 쓸쓸해”
  • 강길홍 기자
  • 입력 2012-10-17 14:08
  • 승인 2012.10.17 14:08
  • 호수 961
  • 3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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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강길홍 기자] 추석처럼 특별한 날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코오롱그룹(회장 이웅렬)의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최일배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 위원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최 위원장은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13년간 일하다 2005년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번 추석에도 가족들이 있는 집 대신 경기 과천시의 코오롱 사옥 앞에 설치한 천막에서 보내게 됐다. 지난달 25일 최일배 위원장을 만났다.

▲ 최일배 위원장

코오롱은 2005년 구미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78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코오롱은 ‘경영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정리해고 대상자 78명 중 28명은 순순히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남은 50명은 부당한 해고라고 주장하며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했다. 최일배 위원장의 기나긴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해고자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라는 회사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었다.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78명이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대기업이 노동자 78명을 해고해서 경영 정상화가 이뤄진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결국은 강성 노조를 몰아내기 위해 경영위기라는 핑계를 대고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코오롱이 구미공장의 노조를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라고 한다. 당시 구미공장 노조는 17일간의 파업을 진행하며 신규투자와 고용보장 등을 요구했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파업을 끝냈다. 최 위원장은 “그 사건으로 이웅렬 회장이 삼성의 무노조를 부러워하게 됐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없애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05년 정리해고가 이뤄진 다음해 코오롱 구미공장에 민주노총을 탈퇴한 새로운 노조가 설립된 점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최일배 위원장과 50여 명의 동료들은 순순히 회사를 떠날 수 없었다. 코오롱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싸움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공장을 찾아가 출근투쟁을 진행했고, 고압송전탑에 올라가 한달간 고공농성도 벌였다. 하지만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최 위원장은 이웅렬 회장과 담판을 짓기 위해 이 회장의 집에 찾아가 시위를 벌이다 구속당했다.

“이웅렬 회장은 삼성의 무노조를 부러워했다”

벌써 8년이 지난 일이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노동자가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16명의 노동자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하루 국내 최장기 투쟁이라는 쓰라린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생각에 코오롱 정투위는 지난 5월 11일 과천 코오롱 사옥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최 위원장은 “8년간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다”며 “남은 사람들이 더 지치기 전에 올해 안에 끝장을 내자는 각오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 안에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는 목표지만 올해를 넘겨도 상관없다는 각오다. 겨울을 대비해 두꺼운 옷들도 잔뜩 싸들고 왔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천막에 간이 보일러도 설치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5월 과천에서 천막 생활을 시작한 뒤로 단 한번 아버지 제사 때문에 구미에 다녀왔다. 이번 추석도 가족들이 기다리는 구미에 내려가지 않고 과천에서 보내게 됐다. 코오롱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명절에 집에 가지 못한 적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공장 가동이 24시간 이어져 명절에도 근무를 서는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서운하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시절이 더 그립다.

최 위원장은 “일을 했던 것도,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것도 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었는데, 명절 때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싸움을 벌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 위원장은 “그러나 내가 옳았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며 “가족들도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진심어린 사과 받기 전까지 끝내지 않겠다”

8년의 시간을 가족들에게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최 위원장의 투쟁이 시작된 뒤로 오롯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내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던 아내는 투쟁을 시작한 지 5년쯤 지난 뒤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최 위원장은 “아내가 ‘그 정도 했으면 이제 그만하고 가족들을 책임져 달라’고 말했다”며 “그때는 아내와 매일 싸울 정도로 부부 관계가 심각해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최 위원장도 힘들어 하는 아내의 모습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대로 끝내면 지금까지의 시간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결국 아내도 최 위원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다. 중학생인 두 자녀도 아빠에 대한 애정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고 최 위원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항상 품고 살면서도 이 싸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최 위원장은 “‘코오롱 정리해고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어느 기업에도 취직하기가 어렵다”며 “정리해고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명예회복을 이뤄내기 위해서 정리해고 철회는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하나는 회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회사를 그만둘 때 ‘그동안 일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떠나고 싶다”며 “필요 없는 존재가 돼서 쫓겨나듯이 회사를 나왔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원직복직의 가능성은 희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8년간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며 싸워왔다. 코오롱이 책임을 인정하고 정리해고자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소한 이웅렬 회장의 진심이 담긴 사과라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slize@ilyoseoul.co.kr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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