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강길홍 기자]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도록 만들어 제일모직이 입게 된 손해를 배상하라며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 소액주주 3명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법원이 이 회장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건희 회장은 에버랜드 CB 저가발행에 따른 기업지배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민사상 배상책임은 지게 됐다. 형사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를 인수하지 않았다고 인정했지만, 민사 재판부는 이 회장 또는 비서실 지시로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구고법 제3민사부(부장판사 홍승면)는 22일 제일모직 소액주주 3명이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일모직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낸 항소심에서 “피고는 제일모직에 130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에버랜드 CB는 피고 이건희의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등의 주도로 이뤄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CB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돼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상법 399조에 따라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정을 참작해 감액할 수 있지만 피고 이건희의 경우에는 감액할 사정이 없어 감액하지 않고, 불이익 변경의 원칙에 따라 피고들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변경할 수 없어 1심 선고 금액인 130억 원의 배상을 명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회장은 에버랜드 CB를 적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발행해 이재용 사장 등 자녀가 최대지분을 확보하도록 해 회사에 970억여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됐다가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에버랜드 CB 발행은 주주배정 방식이 분명하고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의 인수청약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CB 저가 발행으로 에버랜드가 손해를 입은 것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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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