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말기 검찰이 청와대 눈치 보기식 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자칫 2007년 대선자금 수사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온갖 특혜 비리가 수명이 다해가는 정권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태세다.
정권 출범 초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부하던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이번 비리로 MB 정권은 사실상 벗어날 수 없는 레임덕에 상황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최재경 부장검사)는 25일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와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최 전 위원장을 소환해 집중 추궁에 들어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40분께 검찰에 출두해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밝힌 뒤 조사실로 들어갔다.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을 선거 여론조사에 썼다고 언급해 대선당시 자금출처와 사용처가 수사의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을 상대로 브로커 이동율(60·구속)씨를 통해 파이시티 이정배(55)전 대표로부터 인·허가 로비 청탁과 돈을 받은 경위, 성격, 액수, 사용처 등을 규명할 방침이다.
검찰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이 전 대표로부터 브로커이자 D건설사 대표 이 씨를 통해 “인허가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수억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브로커 이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08년초 사이 11억여 원의 로비자금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검찰은 브로커 이씨의 운전기사 최모(44)씨로부터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도 일부 확보했다. 최씨는 인허가 청탁 관련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이씨를 협박해 수천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브로커 이씨와 함께 구속됐다.
이밖에 이 전 대표로부터 박 전 차관에게도 돈이 건너갔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해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 또 이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현금과 은행계좌이체 등으로 61억여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해 실제 전달된 돈의 액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시중 "선거여론조사 비용" 말 바꾸기
파이시티로부터 금품수수의혹이 불거지자 최 전 위원장은 지난 23일 기자들과 만나 “돈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받아썼다”면서 “인허가 청탁의 대가는 아니었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선캠프에서 여론조사 등에 필요한 비용으로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금품수수에 대한 해명 하루 만에 “개인적으로 썼다”며 당초 발언을 뒤집었다.
최 전 위원장은 24일 “파이시티 측에서 받은 돈을 내 개인적 활동을 하면서 모두 썼다”며 “내가 2006년부터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다. MB하고 직접 협조는 아니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 돈을 받은 시점이 대선이 다가오는 시절이어서 얼떨결에 ‘여론조사’를 언급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MB 대선자금으로 쓰였다는 말이 나오는데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개인적인 비리 의혹일 뿐”이라며 선을 긋자, 최 전 위원장이 말 바꾸기로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 특혜의혹 수두륵
최 전 위원장이 청탁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 복합유통단지(파이시티) 조성 사업과 관련해 서울시가 2006년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점포 건설을 허용하는 시설 변경 승인을 밀어 붙인 정황이 드러나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파이시티 사업 관련 안건이 상정된 2005년 11월 24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에서 소관부서인 서울 도시계획국은 ‘화물터미널에 대규모 점포를 들이는 것은 경미한 사항’이라며 도계위 심의·의결 안건이 아닌 자문안건으로 올렸다.
당시 일부 도시계획위원들은 “중요사항의 변경에 해당한다”, “엄청난 안건이다. 경부고속도로 옆인데다 교통난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시는 2005년 12월 7일 도계위에 파이시티의 대규모 점포 용적률 400% 이하로 하는 안을 자문안건을 올렸다.
이에 대해 몇몇 도시계획위원들은 “대규모 점포의 연면적이 18만7300㎡로 화물터미널 면적(3만9800㎡)의 4배가 넘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교통문제가 우려된다”는 등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교통문제를 시 관련 부서가 보완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회의를 끝맺었다.
결국 서울시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임기 만료를 50일 앞둔 지난 2006년 5월 11일, 전체 연면적 77만5000㎡에 대규모 점포와 창고 터미널 등을 허용하는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을 고시했다.
이후 파이시티 사업은 오세훈 시장 시절인 2008년 8월 서울시가 이곳에 오피스텔 등 업무시설(연면적 20%인 15만5000㎡)을 ‘터미널 부대시설’로 허용하는 안을 밀어붙여 특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에 서울시는 당시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 대한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5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켜볼 것”이라며 “당시 행정적인 절차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시 공무원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보진 않는다”면서도 “당시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 대해선 간단하게 보고를 받았으며 (해당부서에서) 점검하고 있다. 다만 검찰이 수사 중인 사항이기 때문에 중복해서 감사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파이시티 인허가 특혜…2조원 이권다툼 아수라장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논란 이면에 지분과 사업권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개발사업을 추진하던 ㈜파이시티 측은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이 브로커 이씨를 통해 수십억 원을 상납받고 지분까지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파산신청과 법정관리를 통해 사업권을 강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이시티 측은 2008년 5월 이후 최 전 위원장 등에 대한 ‘상납’이 끊기자 사업권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 됐다고 언급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어려워 자금 상납을 중단하자 최 전 위원장이 고향 후배인 브로커 이씨를 시켜 여러 차례 이 전 대표를 불러내 지분을 요구하며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전 대표가 이를 거절하자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을 가해왔고 결국 이 전 대표가 2009년 5월 29일 지분대신 사업 이익금 800억 원을 준다는 약정서에 강제로 날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이시티 사업권 다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0년 ㈜파이시티가 자금난에 빠지자 우리은행 등의 채권단을 동원해 사업권 포기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파이시티 측 주장에 따르면 2010년 7월 2일 우리은행 담당 부장이 은행 앞 커피숍으로 이 전 대표를 불러 “사업에 필요한 모든 권리를 우리은행에 양도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라”며 “원하면 해외 계좌로 200억 원을 송금할 테니 외국에서 조용히 살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를 이 전 대표가 거절하자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자신들의 동의도 없이 시공 참여와 사업운영 방법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우리은행에서 고의로 파산신청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파이시티의 대출 만기일인 2010년 8월 12일 앞전인 8월 6일에 ㈜파이시티에 대한 파산 신청을 법원에 냈다.
파이시티 측은 “대출 만기일도 남아있는 데다 이자 연체도 없었고, 2010년 7월 30일 미래에셋과 1조5000억 원의 자금조달 계약까지 완료했다”며 “최 전 위원장 등이 사업권 강탈이 불발될까봐 미리 파산을 신청하고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자 우리은행과 법정관리인을 통해 사업을 강탈해 갔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해 11월 ㈜파이시티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진정서에도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불법적으로 사업권을 탈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은 파이시티가 사업권을 양도하면 해외계좌로 200억 원을 주겠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시공사였던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각각 100억 원 씩 총 200억 원을 조성해 사업권 양도에 관한 의견을 우리은행을 통해 전달해달라고 했던 것”이라며 “은행은 단순히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해명했다.
또 파산신청에 대해 “시행사인 파이시티를 교체해 사업을 효율적으로 재추진하기 위한 조치였다”면서 “파이시티가 사업권 포기 대가를 무리하게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포스코건설도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며 “시공사 선정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고 사전에 우리은행 등과 공모를 한 일은 없다”고 볼멘소리를 토로하고 있다.
검찰은 사업권 다툼과 관련해 아직 최 전 위원장 등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시중-박영준 자택 압수수색, 野 "정치검찰 불명예 벗어라"
한편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을 소환함과 동시에 박영준 전 차관의 자택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자택 외에 대구 사무실, 주민등록상 거주지(대구) 등에 검사와 수사관 등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박 차관을 소환할 방침이다. 또 최 전 위원장의 소환조사 후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상태다.
야당 측은 즉각 2007년 대선자금 수사에 나설 것을 검찰에 촉구하고 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대행은 25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은 돈이 들어오고 나간 과정과 2007년 대선자금 전체에 대해 낱낱이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 대행은 “검찰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검찰’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았는데 이를 스스로 벗어던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엄중한 수사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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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