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시기와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남북 당국간 대화를 제의해왔지만 정부는 진정성이 없다고 보고 향후 북한의 태도변화를 지켜보며 대화 여부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10일 브리핑에서 "분명 이번 담화에 구체적인 대화 제의가 포함돼 있다고 보지만 담화의 내용에는 천안함·연평도 문제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아 형식이나 내용을 볼 때 진정성 있는 대화제의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며 "향후 북한의 태도를 보아가며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핵문제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남북대화에서 다루자고 역제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천 대변인은 "현재 역제의를 포함한 구체적인 대응방향이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핵폐기를 보여줘야 된다"며 "남북관계 역시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진정성'을 이유로 북한의 무조건적인 대화요구를 사실상 거부함에 따라 북한의 제의대로 1월말에서 2월 상순께 분야별 회담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북한이 추후 공식적으로 회담 제의를 해오며 천안함 문제 등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전향적 입장을 취할 경우 분위기의 급반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대화 제의를 섣불리 수용할 경우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덮고 갈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지만 북한이 천안함 의제화를 약속하다면 정부도 회담을 계속 거부할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조평통 담화 뿐만 아니라 지난 1일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남북관계 진전을 강조했다. 또 5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에서는 남북대화를 촉구했다. 조평통 담화는 그 연장선상에서 회담 제의를 더욱 구체화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평통 담화가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선언적 제시가 아닌, 새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보자는 적극적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담화에서 적십자회담,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회담, 개성공업지구회담 등 분야별 회담 장소와 시기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특히 "대화 제의에는 아무런 조건부도 없으며 그 진의를 의심할 것도 없다"며 자신들의 진정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남측 정부에 대해서는 "만나보지도 않고 진정성을 운운하며 여러가지 조건부터 앞세우는 자체가 진정성 있는 태도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렇듯 회담에 공세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6자회담을 재개하기 전 남북관계부터 개선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화답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면서 남북대화 재개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평통 담화형식을 빌려 대화 제의를 한 것은 '이만큼 남북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선전하기 위한 의도도 있어 보인다. 정부가 북한의 회담 제의 '형식'을 문제삼아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까지 조평통 담화 외에 전통문이나 다른 공식 채널을 통한 대화제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현정 기자 hj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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