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도부 전원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개각 대상자에 대해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 만장일치로 부적격 판단을 내리고 이를 공개적으로 언론에 밝힌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권이 일제히 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해온데다 여당인 한나라당까지 이같은 결정을 내림에 따라 정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낙마 수순을 밟을 공산이 커졌다.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은 국회 재적의원(현 297명) 중 과반이 출석해 이 중 과반이 찬성할 경우 의결된다. 171석의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이 부적격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정 후보자의 인준은 국회 청문회 여부와 관계없이 불가능해졌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현 정권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이 청와대와의 물밑조율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부적격' 입장을 전달, 대통령 지명 철회나 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지 않고 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부적격 입장을 밝혔다는 점은 심상찮은 당내 분위기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한나라당이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BBK', '민간인 사찰', '전관예우' 논란에 폭 넓게 연관된 정 후보자를 지원하면 할수록 사회 일각의 '반MB정서'를 더욱 자극, 민심 이반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야권이 속속 정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선언을 한데 이어 홍준표 최고위원과 당내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친박(박근혜)계 등에서 잇달아 부정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당 지도부가 정 후보자를 지원해봤자 인준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원희룡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부적격 결정의 배경에 대해 "최고위원 9명 전원이 (이번 사안에 대한) 국민적인 비판에는 우리가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대통령의) 레임덕을 의식,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 사무총장은 "감사원장의 경우 인준 투표를 해야 하는데 최고위원 전원이 임명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할 정도면 우리 당 소속 의원들의 의견 분포는 어떻겠는가"라며 "(당 지도부의 결정이)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더 큰 악영향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또 "인사청문회를 연 뒤 사퇴를 촉구해도 되는데 청문회 전에 이렇게까지 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최고위원들은 나름대로 최고의 정치적인 감각과 종합적인 판단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판단을 한 것이지, 다른 세세한 것들을 다 따져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박주연 기자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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