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임태희 싱가포르 ‘비밀 회동’ 막후조율
2009년 임태희 싱가포르 ‘비밀 회동’ 막후조율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0-08-10 10:46
  • 승인 2010.08.10 10:46
  • 호수 850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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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보도-MB 정권 대북 비선 밀사 Y씨 정체 공개
이명박 정권 대북 비선 밀사로 활약한 국내 대북 사업가 Y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싱가포르에서 대북 고위인사와 비밀회동이 공개된 이후 막후 역할을 한 인사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Y씨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동안 대북 사업을 해온 인사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활로 모색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인사는 MB 정권이 박근혜 전 대표나 임태희 실장 등 대북 특사를 파견할 경우 대북 경협관련 막후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져 MB 정권의 비공식적인 대북 밀사가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또한 이 인사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대북 창구 역할까지 하고 있어 정치권 뿐만아니라 재계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북 사업가 Y씨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소위 잘 나가던 대북 사업가로서 동 사업가들 사이에 유명했다. 특히 친화력이 좋고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대북 사업에 열정을 쏟으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혀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평양에 LCD 공장을 세우고 개성 온천개발에 투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 여의도연구소 시절 ‘인연’

이에 모니터 시장에서 99년 50여억 원에 달하던 I사가 2002년말 수출 실적이 44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매출 신장을 보였다. 특히 Y씨는 98년 평양 모니터 공장을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열정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남북 IT 교육을 위한 사단법인 남북IT협력본부 창립멤버로 활약하고 IT 도서를 북측에 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이밖에 국내 굴지의 C 기업에 대북 컨설팅까지 맡아서 대북 창구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이런 Y씨가 한나라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6년 중반에서다.

한나라당 여의도 소장으로 있던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대북 경제 정책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Y씨를 한나라당 자문역 지위를 부여하면서부터 인연은 시작된다. 임 실장은 Y씨를 통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인사들과 접촉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임 실장과 인연을 맺어온 Y씨가 재차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임 실장이 이명박 정부를 대신해 대북 특사 자격으로 싱가포르 비밀회동을 갖은 직후였다. ‘임태희 비선 라인’인 Y씨가 북한 고위급 인사와 임 실장이 남북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 비밀 회동을 성사시킨 주인공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임 의원은 북한과의 10월 싱가포르 회담에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정상회담 후 이명박 대통령 귀한 때 1명 정도의 국군포로 또는 납북자 동행 등 개략적인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해 11월 개성공단에서 열린 비밀접촉에서 쌀·비료 선 지원에 대한 이면합의서를 요구하는 북측과 정상회담은 별개의 별개의 문제라는 남측의 입장이 맞서면서 당국 차원의 정상회담 논의는 결렬됐다. 이후 6·2지방선거직전 터진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남북 관계는 현재까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Y씨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향후 이 대통령이 대북특사로 임 실장이건 박근혜 전 대표를 임명하건 Y씨가 막후 역할을 할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북 관계자들을 전언에 보면 Y씨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뤘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협력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 대표 김덕룡) 한 관계자는 “Y씨가 싱가포르 회담에 막후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박모 사장과 함께 역할론이 나오는데 정부 공식 대표를 대신해 하는 밀사는 한계를 지닌다”고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Y씨, ‘제2의 흑금성’? ‘대북 브로커’? 논란

또한 그는 “대북 사업을 하는 기업인들 중에 대북 밀사를 자청하는 분이 많다. 그러나 성사를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오히려 사업가로 이해관계때문에 정부와의 관계를 이용, 대북 사업보다는 ‘브로커’역할을 더 많이 해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대북 사업 경험이 있는 박모씨 역시 본지와 통화에서 “내가 평양에 머무를 당시 Y씨와 접촉하기도 하고 만나보기도 했다”며 “우리들 사이에는 (사기)‘꾼’으로 통하고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그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많아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Y씨와 함께 IT관련 법인을 설립하는 데 공동으로 참여한 한 김모씨는 그에 대해 다소 소상하게 전했다. Y씨와 함께 2000년말 북측 방문단에 함께 다녀올 정도로 친분이 있는 인사다. 그는 “함께 북한에 방문할 당시 Y씨가 북측에 공장을 짓고 이런저런 도움을 주니깐 북측 인사들이 굉장한 ‘줄’로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며 “하지만 임 실장 비밀 회동 당시 처럼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게 하기 보단 실무자급 인사들과 친분이 깊은 인사”라고 전했다.

또한 Y씨는 최근엔 IT 부품 사업이 망하고 북측에 투자한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회사는 명패를 달고 있지만 현상 유지만 근근히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선 Y씨가 ‘제 2의 흑금성이 아니냐’, ‘대북 브로커다’라며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흑금성 사건은 안기부 대북사업가로 위장취업 첩보활동

‘흑금성(黑金星)’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대북 공작원이었던 박채서씨의 암호명이다. 3사 출신인 그는 국군 정보사 등을 거쳐 1993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1994년부터 안기부에서 공작원으로 일해왔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남북을 오가며 북한의 실력자들을 접촉해온 손꼽히는 북한전문 첩보요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5년 대북 광고기획사인 아자커뮤니케이션에 전무로 위장취업해 1997년부터 북한의 금강산, 백두산 등을 배경으로 남한 기업의 TV광고를 찍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자신의 신분(흑금성 공작원)을 밝히지 않은 채 북한측과 접촉하면서 프로젝트 성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신분이 들통난 것은 1998년 당시 북풍사건(안기부가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사건)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자, 안기부 간부였던 이대성(68)씨가 수사확대를 막기 위해 국내 정치인과 북한 고위층 인사간의 접촉내용을 담은 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언론에 폭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흑금성이 안기부 대북 공작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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