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은 안 되고 꿔준 돈 못 받고…”

KBS <1박 2일>에 출연해 발군의 ‘예능감’을 뽐낸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번시즌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었음에도 새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도무지 들리지 않는 가운데 박찬호가 지난 17일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시즌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돌아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일각에서는 옛 동료와의 송사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시절 동료에게 46만 달러(약 5억2000만원)를 빌려주고 이를 받지 못해 지난달 그를 고소했다. 팀 동료들이 줄줄이 ‘헐값’에 계약서 사인을 마친 가운데 박찬호의 2010년 명운은 어떻게 풀릴까. 베일에 싸인 그의 미국행 내막과 계약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국내에서 훈련 중이던 박찬호가 지난 17일 조용히 출국했다. 잠실구장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하던 중 돌연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에이전트사도 몰랐다. 출국 이유가 뚜렷하지 않지만 계약 문제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짓기 위해 돌아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대부분이다. 일각에서는 그의 미국행이 옛 동료와의 송사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원금에 이자 붙여 갚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찬호의 지인은 “(박)찬호가 지난 일요일(17일) 미국으로 갔다. 이런저런 처리할 일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훈련장소를 제공한 LG측도 “잠실구장에서 15일까지만 훈련하고 주말에 출국할 예정이라고 말했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박찬호는 두산 관계자에게도 “계약하려면 일단 미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찬호는 국내에 머문 최근 몇 주간 잠실구장과 LG 웨이트 트레이닝룸에서 개인 훈련을 해왔다. FA 신분인 그가 돌연 미국으로 떠난 것은 시기상 계약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지 구단들이 FA 시장에 남아 있는 선수들을 상대로 막판 저울질을 할 시기인 까닭이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그의 계약 시기가 지나치게 늦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08년 LA다저스에서 필라델피아로 둥지를 옮긴 박찬호는 그 해 12월 중순 1년짜리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미 1월 말에 접어든 상황에서 새 계약이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박찬호의 이번 미국행이 다음시즌 계약을 위해서라면 우려는 안도감으로 바뀔 수 있다. 문제는 그가 계약이 아닌 다른 문제로 짐을 쌌을 경우다. 바로 옛 동료와의 채무관계로 빚어진 송사다.
지난해 12월 미국 현지 언론은 박찬호가 과거 팀 동료였던 채드 크루터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박찬호와 함께 LA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동고동락하며 전담 포수로 활약한 ‘절친’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크루터는 지난 2005년 박찬호에게 46만 달러(약 5억2000만원)를 빌렸는데 29만 달러(약 3억3000만원)만 갚고 나머지 17만 달러(약 1억9000만원)를 주지 않았다 것이다. 박찬호는 남은 원금 17만 달러에 이자 및 수수료를 더해 22만6358달러76센트를 돌려받길 원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이 송사를 해결하기 위해 박찬호가 조용히 미국으로 건너간 게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계약과 송사, 모두를 처리하기 위해 출국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 박찬호가 시즌 전 국내로 돌아올 가능성은 적다.
그의 지인은 “박찬호가 출국 전 ‘이번엔 나가면 그냥 계속 있게 될 것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만약 소속팀 혹은 새 팀과의 계약이 불발되면 국내 구단인 두산이나 한화의 전지훈련 캠프로 합류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박찬호는 협상의 달인?
박찬호는 지난 해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구원투수로 뛰어난 활약을 보인데다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아 재계약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박찬호 본인도 소속팀과의 재계약, 혹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으로의 이적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필리스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필리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막상 FA 시장이 열리자 이런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박찬호는 다년 계약과 선발출장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팀을 원했지만 현지 구단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마무리로는 훌륭하지만 선발투수로서는 별 볼일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던 것. 박찬호가 연봉 300만 달러(약 34억원) 1년 계약 조건을 거부하자 필라델피아는 미련 없이 그와 결별은 선언했다.
쓸만한 FA 구원투수들이 속속 새 팀을 찾는 바람에 박찬호의 선택권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박찬호가 ‘선발출장’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계약 성사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폭스스포츠’는 지난 19일 미계약 선수 가운데 주목할 선수들을 모아 가상의 팀을 만들었다. 박찬호는 그 중 구원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도 박찬호를 “FA시장에 남아있는 쓸만한 구원투수”로 꼽았다.
일각에서는 박찬호가 선발 기회를 잡기 위해 팀들과 고도의 협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스프링캠프 동안 선발로테이션을 확정 짓는데 스프링캠프를 임박한 상황에서 선발투수가 부족한 구단과 협상을 벌여 경쟁 기회를 따낼 계산이라는 얘기다.
선발 경쟁에서 밀리더라도 구원투수로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인 만큼 박찬호는 우승을 노리는 팀들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삼킬 만한 선수다. 느긋한 ‘줄다리기’ 중인 박찬호가 어떤 모습으로 새 시즌을 맞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