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완‘용팔이 사건’ 배후 지명자 구속은 명백한 표적수사”
“이승완‘용팔이 사건’ 배후 지명자 구속은 명백한 표적수사”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9-22 14:08
  • 승인 2009.09.22 14:08
  • 호수 804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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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대한태권도협회장 사퇴, 국기원 내 ‘막전막후’
홍준표 전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photolbh@dailysun.co.kr

지난 9일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국기원 이사 이승완(69)씨에 대해 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국내 조직폭력사에 손꼽히는 원로 ‘주먹’으로 지난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일명 ‘용팔이 사건’) 배후로 지목돼 유명세를 탔다.

경찰청은 같은 날 이씨 뿐 아니라 협회 공금 3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서울시태권도협회 임윤택(56) 회장과 협회 간부 3명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언론 브리핑을 통해 공개했고 이날 상당수 매체가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서 이씨는 ‘국기원장 후임을 놓고 반대파 인사를 지지하는 국기원 직원을 폭행한 왕년의 조폭’으로 묘사됐고 승단 심사비 부당 징수와 협회 간부들의 횡령 사실이 드러난 서울시태권도협회는 ‘파렴치한 체육단체’로 지목됐다.

그러나 1년 넘게 이어진 국기원의 내홍을 알고 있는 인사들은 일련의 사태가 ‘국기원 정상화’를 놓고 대립했던 두 계파 싸움의 일부라는 데 공감을 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번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국기원 내 ‘특정인물 밀어내기’를 위한 표적수사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우연의 일치일까. 후임 국기원장 후보로 엄운규 전 원장과 함께 유력하게 꼽히던 홍준표 대한태권도협회(KTA) 회장이 돌연 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6월 당시 여당 대표로 협회장직에 오른 홍 회장은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국기원 개혁에 앞장서겠다’며 의지를 불태웠었다.

그랬던 그가 태권도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씨와 임 회장이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자 KTA 회장 간판을 내던진 것이다. 홍 회장은 지난 10일 특급우편으로 국기원에 사표를 냈다. 이씨와 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 사실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이다.

이씨와 임 회장은 홍준표 회장을 국기원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최 일선에서 뛰었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추종세력이 줄줄이 구속위기에 처하자 홍 회장이 한 발 물러선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보신 사퇴’ 의혹에 당혹스런 홍준표

홍 회장의 사퇴 소식이 알려지자 일선 태권도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체념하면서도 내심 ‘괘씸하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모 인사는 “한 마디로 더러운 꼴 당하지 않으려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며 “측근들이 경찰 수사선상에 줄줄이 오르면서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당 대표까지 지낸 홍준표 회장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란 얘기다.

또 다른 인사는 “이씨와 임 회장이 범죄자로 전락하자 홍 회장이 바로 꼬리를 잘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인사는 “정치인들은 상황이 불리하면 아무리 측근이라도 당장 돌아선다. 두 사람 모두 홍 회장을 KTA 회장으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는데 이번 상황을 보니 정치인 출신들에 대한 불신만 더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취임 1주년을 맞은 홍 회장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국기원 운영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었다. 당시 그는 “전권을 달라. 빠르면 3개월, 길게 6개월이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성질 같아서는 한 달이면 족하다”고 토로했다.

또 지난달 19일 코리아오픈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태권도는 세계 7000만 태권도인들의 것이다. 국기원과 각종 태권도 단체들을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와 임 회장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방침이 알려지기 불과 열흘 전인 지난달 31일만 해도 ‘친 홍중표’ 계열 인사들은 그에게 국기원 운영 권한을 쥐어주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홍준표 회장의 국기원 이사장직을 보장하라”며 사실상 ‘홍준표 체제’ 지지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홍 회장의 사퇴는 충격과 논란의 여지가 상당하다. 측근들의 범법행위가 언론에 오르내린데다 실제 구속 가능성도 점쳐지자 ‘이미지 관리’를 위해 슬그머니 발을 뺐을 것이란 얘기다. 홍 회장이 정치인으로서 ‘보신(保身)’을 위해 사표를 던졌다는 분석도 있다.


기각된 구속영장, 석연찮은 수사

일각에서는 홍 회장의 사퇴가 예정된 수순이라는 얘기도 돈다. 이번 경찰 수사가 홍 회장은 물론 ‘친 홍준표’ 계열을 몰아내기 위한 공작 중 일부라는 것이다. 몇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먼저 경찰이 이씨의 혐의로 확정한 폭행 및 업무방해와 관련,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8개월이나 흐른 상황에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점이다. 또 <일요서울> 취재결과 경찰이 신청한 이씨의 사전구속영장은 최근 기각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월 국기원 임직원들이 지난해 6월 사퇴한 엄운규 전 원장의 복귀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려하자 서울시태권도협회 관계자 15명을 이끌고 난입, 직원 민 모씨 등 5명을 폭행해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히고 행사를 무산시켰다.

문제는 경찰이 이씨와 당시 회견장에 난입한 협회 관계자들에 대해 입건조치를 확정한 것은 난동이 벌어진지 무려 8개월이 흐른 이달 초였다는 점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실제 이씨가 현장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주먹을 휘두른 것은 아니다”며 “그는 자리만 지키고 있었을 뿐 실제 폭력행위는 이씨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주도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럼에도 언론들은 마치 이승완씨가 주도적으로 주먹질을 한 것처럼 사실을 부풀렸다. 대중들은 ‘왕년의 건달’인 이씨가 국기원장 자리를 노리고 반대파 추종세력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려 했다는, 사건의 ‘껍데기’만 받아들인 셈이다.


반대파 제거 작전 성공?

국기원은 지난 16일 원장실에서 긴급임시이사회를 열고 자진 사퇴했던 이사 13명 전원을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다. 당초 자리를 지킨 6명의 이사를 포함해 이들의 복귀가 확정되면 이사 정족수인 19명 이사진 구성이 마무리 돼 국기원은 외형상 정상화된다. 이들은 대부분 엄운규 이사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국기원 이근창 사무처장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압박으로 13명의 이사가 자진 사표를 내야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했다. 현재 임기까지 소임을 다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퇴했던 이사들의 바람이다. 이분들의 명예를 찾아주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16일 엄 이사장은 ‘보선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이사회 결의 무효소송’을 낸 바 있다. 홍준표 회장을 필두로 국기원에 입성한 ‘보선이사’ 7명에 대한 직무와 이들이 참여한 이사회 결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법정분쟁을 벌인 것이다.

무려 8차례에 걸친 심문과 조정 과정을 거친 국기원 내 이전투구는 싱겁게 일단락됐다. 경찰청 수사발표 직후 홍준표 회장을 포함한 보선 이사들이 한꺼번에 사표를 내면서 이들 모두 이사회에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수개월 간 소송까지 불사하며 이들을 무력화 시키려했던 엄 이사장 측으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국기원의 고질적인 계파싸움은 지난해 국기원의 법정 법인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사들 간 세력다툼으로 변질돼 빈축을 사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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