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8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가 지난 주말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와 함께 축구팬들의 가슴도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이제 프리미어리그는 더 이상 머나먼 타국 얘기가 아니다. 그저 부러워하며 머릿속으로만 상상해온 꿈의 무대도 아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를 누벼온 4명의 전사들이 활약하면서 마치 한국 프로축구 K리그의 그것보다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최고의 무대라는 프리미어리그에 주전급 선수를 4명이나 배출한 아시아권 국가는 한국뿐이다. 허나 시작은 미약했다. 레딩FC 설기현과 미들스브러 이동국이 개막전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그리 인상적이진 못했고, 부상에서 회복중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과 토튼햄 핫스퍼의 이영표는 아예 엔트리에조차 포함되지 못했다. 과연 우리네 태극전사 4인방의 올시즌 기상도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 설기현 ‘양호’, 이동국은 ‘글쎄’
솔직히 좋은 상황은 아니다. 07~08시즌 개막 첫 판에 나란히 출격한 프리미어리그 데뷔 2년차 설기현(28·레딩)과 이동국(28·미들스브러)의 플레이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설기현과 이동국은 지난 주말 열린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 각각 선발 및 교체로 출전해 필드를 누볐으나 별다른 활약없이 경기를 마쳤다.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발 뒤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재활에 몰두해온 설기현은 지난 13일 자정(이하 한국시간)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 구장에서 열린 디펜딩 챔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리그 1차전 원정전(0-0)에 선발로 출격, 후반 12분 존 오스터와 교체될 때까지 57분을 뛰었다.
프리시즌 매치업으로 국내서 진행된 피스컵 코리아에 출전했으나 완벽한 몸놀림을 보여주지 못해 약간의 회복기가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던 설기현은
예상을 깨고, 이날 오른쪽 윙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주지 못했다.
출전은 갑작스레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BBC〉 〈스카이스포츠〉 등 외신에 따르면 당초 레딩의 스티브 코펠 감독은 다른 선수를 고려했으나 베테랑 미드필더 글렌 리틀의 부상 장기화로 어쩔 수 없이 설기현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시즌 훈련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매 특허인 중거리 슈팅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크로스도 부정확했다. 그저 짧은 패스로 동료들과 몇 번 볼 터치를 한 게 전부일 정도로 전체 플레이가 부진했다. 맨유 수비수와 볼 경합에서도 자주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눈에 띄는 실책이 없었다는 점. 레딩은 최대의 난적을 맞아 어려운 경기를 했지만 디펜스 플레이에 충실해 만족스런 결과를 올릴 수 있었다.
리그 매경기별로 출전 선수들에게 평점을 매기는 〈스카이스포츠〉는 그래도 설기현에게 ‘효력이 미약했다’는 짧은 촌평과 함께 평균대에 해당하는 6점을 부여했다.
이동국의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설기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올 여름 이적시장(8월31일 종료)에서 여전히 타 팀으로의 오퍼가 들어오고 있는데다 리틀의 부상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으로 판단돼 적어도 당분간은 입지가 좁아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이동국은 선수단내 경쟁이 지난 시즌보다 심화되면서
입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설기현보다 하루 앞선 12일 오전 블랙번 로버스와 홈경기에 나선 이동국은 후반 38분 교체투입, 인저리타임까지 13분을 뛰었지만 역시 활약은 없었다.
슈팅은커녕 볼터치 한번에도 황송해할 정도로 어려운 경기였다. 평점도 고작 4점. 현재로선 나이지리아 출신 포워드 아예그베니 야쿠부와 최근 영입한 제레미 알리아디에르의 백업 멤버에 만족해야하는 처지에 놓인 이동국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토튼햄 핫스퍼의 이집트 출신 스트라이커 호삼 미도의 영입설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만약 미들스브러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원대로 미도 영입에 성공할 경우, 이동국은 4번째 옵션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 걱정은 더욱 커진다.
전문가들은 컨디션 회복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중요한 휴식기에 풍토와 환경이 한국이나 영국과는 전혀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있은 아시안컵에 출전한 이동국은 베스트 컨디션이 아닌 상태.
이동국 본인은 아시안컵 이후 영국으로 출국하며 “경쟁은 어차피 각오했다. 기회가 왔을 때 강한 인상을 남겨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나란히 100퍼센트 몸상태로 끌어올려야 하는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팀 입지에서 살필 때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설기현과 이동국. 추이를 가늠하고 미래를 전망하기가 정말 어렵다.
◆ 부상회복이 우선
급할 것은 조금도 없다. 주전경쟁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이후에도 늦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맨유 박지성(26)과 토튼햄 핫스퍼 이영표(30)가 처한 상황이다.
설기현과 이동국이 새로운 시즌 개막전 무대를 밟았을 때, 박지성과 이영표는 씁쓸함을 곱씹으며 팀 동료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구장 VIP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지난 3월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을 완전히 접은 박지성은 최소 내년 1월까지는 복귀가 어려울 전망이다. 맨유 구단에서는 2월이 돼야 정상적인 플레이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지난 7월20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친선 아시아투어 매치업에 앞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국내 취재진들의 질문에 “2월에나 복귀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아직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미리 전망하자면 박지성의 올시즌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공격부터 미드필더까지 고른 활용이 가능한 멀티 요원이란 점을 감안해도 포지션에 겹치는 선수들이 대단히 많다. 라이언 긱스나 C.호날두만 상대했던 지난 시즌에 비해 한층 경쟁이 심화된다는 의미다.
일단 지난 시즌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기용할 때 주로 활용하는 위치인 좌우 측면 미드필더만 살피더라도 무조건 3대1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어야 한다. 기존 상대에도 벅찬데 ‘제2의 호날두’로 불리는 나니와 오언 하그리브스까지 있어 부담감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거의 기용의 가능성은 희박하나 미드필드진 중앙으로 눈을 돌려도 폴 스콜스라는 거대한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기사화되거나 구체화된 것은 아니나 타 클럽 임대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7월 맨유의 내한 당시, 선수단과 함께 입국했던 현지의 유명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팀 저메인은 “1월께 회복된다고 가정할 때 (박지성은)당장 주전으로 써도 지장이 없을만큼 능력치가 뛰어나 겨울 이적시장에서 타 클럽으로의 임대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토튼햄 핫스퍼의 이영표도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진 않았으나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돌아온 뒤 ‘말끔한’ 상황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지난 4월에 UEFA컵 경기 도중 당한 무릎 부상에서 거진 회복된 이영표는 이르면 2주 이내로 복귀할 예정이다. 토튼햄 구단도 시즌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자신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지난 시즌내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베느와 아소-에코토도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야심차게 영입한 웨일즈 출신 신예 풀백요원 가레스 베일도 역시 부상중에 있어 시즌 초반부 복귀가 어렵다.
일단 마틴 욜 감독은 12일 오후 선더랜드와 시즌 개막 원정전에서 이영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본래 오른쪽 측면이나 중앙을 담당하는 폴 스톨테리를 왼쪽 풀백으로 투입하는 자충수를 뒀다. 허나 작전은 완벽히 실패했다. 스톨테리는 비교적 활발한 몸놀림을 보였으나 로이 킨 감독이 이끄는 선더랜드의 화력을 막아내는데는 무리였다. 오버래핑 이후 수비 가담이 너무 늦었고, 자주 뒷공간을 허용했다. 결국 쉴새없이 왼쪽 사이드를 허용한 토튼햄은 0대1로 졌다.
당연히 이같은 정황으로 볼 때 이영표의 즉각 복귀가 가능한 상황. 다만 베일과 에코토의 복귀 이후가 문제다.
남장현 ypshike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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