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조폭 ‘몰려온다’
신세대 조폭 ‘몰려온다’
  • 정은혜 
  • 입력 2006-02-22 09:00
  • 승인 2006.02.2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조폭 문화가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거나 사시미(생선회)칼 따위로 설치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각자 ‘미니홈피’를 만들어 ‘일촌’을 맺은 뒤 친목을 도모하는 ‘신세대 조폭’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일촌’이란 개개인의 미니홈피끼리 쉽게 연결되도록 일종의 ‘친구등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인맥관리기능’으로 불리는 ‘일촌 맺기’는 인터넷의 확산이 낳은 조폭 문화의 신풍속도이기도 하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보스와 조직원들 사이에 관리체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해 세력을 키워나가던 신세대 폭력조직 일당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인터넷으로 조직관리

이들의 존재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열풍을 일으키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신세대 조폭들이 미니홈피에 사진과 글을 올리며 윤곽을 드러내자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때부터 이들이 조직을 관리하는 대규모 폭력집단인 것이 집중 부각되기 시작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한 관계자는 “최근 추세는 대규모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실제 조폭 동향을 파악한 결과 서울 지역을 비롯, 지방 세력까지 미니홈피를 통해 영향력을 넓히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직원들은 보통 조직원들의 친구, 인척 등이 모여 구성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백수 혹은 실형 전과범들이 자원해 조폭의 세계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마땅히 할 일이 없고 먹고 살길이 막막한 이들이 PC방 등지에서 전전하다가 영화나 언론을 통해 조폭을 동경,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 이렇게 조폭의 세계에 들어서면 그것으로 ‘상황 종료’. 절대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이 조폭계의 ‘룰’이다.

메신저로 명령 지시받아

현재 경찰에서 파악하고 있는 ‘신세대 조폭’의 내부 조직은 4계급의 수직형 피라미드 구조. 보스와 중간보스, 행동대장, 그리고 행동대원들이다. 흔히 김태촌, 조양은 등을 떠올리게 되는 보스는 조직을 직접 통솔하고 모든 활동을 지휘하는 자를 말한다. 그 아래의 중간보스는 보스의 지휘를 받아 부하들을 통솔하고 관리한다. 이들은 일체 활동을 지시·지휘할 뿐 직접적으로 미니홈피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미니홈피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은 행동대장의 역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각자 행동대원들을 거느리고 미니홈피에 보스 또는 중간보스의 명령을 하달한다.

소위 ‘똘마니’라 불리는 행동대원들은 각자의 미니홈피를 만들어 보스 및 선배 조직원들의 명령을 받고 그대로 이행한다. ‘오늘 OO에서 OO로 쳐들어가 한판 할거니까 다 준비하고 있어라’ 등의 글을 올리면 행동대원들은 1시간도 채 안돼서 일렬로 집합한다는 것이 경찰의 전언이다. 이들은 살인 연습 동영상까지 제작해 미니홈피에 올려 행동대원들을 훈련시켰다. 또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위치와 상황을 보고하고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방명록에는 ‘죽는 날까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등의 글들이 수두룩하고, 보스와 선배 조직원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도토리(사이버머니), 스킨(전체배경), 미니룸(테마방) 등을 상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드러난 조직은 ‘빙산의 일각’

신세대 조폭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경찰은 “이제는 조폭도 사이버시대”라며 “조직이 거대해지다 보니 일일이 지휘하고 관리하기가 힘들어 인터넷을 이용하는 조폭들이 늘고 있다”고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경찰은 “조직원들이 대거 이동하거나 한 장소에 모일 경우 목격자들의 눈에 띄어 신고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최근 모든 사전 계획과 명령 지시는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중요한 통보는 미니홈피 비밀 방명록에 글을 올리거나 쪽지 기능을 통해 보내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드러난 신세대 폭력조직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미니홈피를 통해 일촌을 맺고 연계돼 있는 지방 세력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날 전망”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 ‘신촌이대식구파’ 인터넷 사용사이버 수사에 ‘덜미’

유흥업소 갈취, 재건축·재개발 이권 개입, 교통사고 보험사기 등 각종 불법행위를 일삼아 온 기업형 폭력조직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1990년 중반부터 서울 신촌 일대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신촌이대식구파’가 그들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3일 이 조직을 결성한 두목 김모(44)씨 등 11명을 범죄단체조직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달아난 부두목 최모(39)씨 등 조직원 54명은 지명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신촌 등지에 ‘Y유통’과 ‘N유통’ 등 주류와 식자재 공급업체 2곳을 차려 30여개 유흥업소에 독점 납품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N토건’이라는 건설업체까지 차려 재개발지역의 철거 및 고철 유통에 관여하기도 했다. 또 재개발 현장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수억 원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02년 2월부터 서울 마포구, 은평구 일대에 4개의 합숙소를 운영하며 1년에 3~4번씩 옮겨 다녔다. 인근 주민들의 눈과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다. 합숙소는 주로 다세대 주택 1층이나 반지하층에 위치했다. 혹시라도 경찰에게 적발될 것을 우려, 도로인접 지역 등을 고려해 도망가기 쉬운 곳에 얻은 것이다. 이들은 몸집을 불려 ‘조폭답게’ 만들기 위해 개사료를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단백질이 많아 빨리 살이 찐다며 조직원들끼리 나눠먹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또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아침부터 의무적으로 밥 2~4그릇, 30분 후 라면 3~4개, 수시로 소시지를 간식으로 먹었던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실제로 60kg까지 불린 조직원도 있다”고 경찰은 귀띔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넷을 통해 조직을 관리했다는 것. 경찰은 “대규모 조직을 관리하는데 수월할 뿐만 아니라 신세대 조직원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서로 ‘일촌’을 맺은 뒤 선배 조직원의 방명록에 ‘쉬셨습니까 형님’ ‘그간 별일 없으십니까 형님’ 등의 안부글을 주기적으로 남기며 결속을 강화했다.

또 미니홈피를 통해 흉기로 살인하는 방법을 찍어 동영상으로 올렸고 사시미 칼 잡는 법, 칼의 반동으로 손을 다칠 것을 우려해 붕대 감는 법까지 교육시켰다. 조직의 보스인 김씨는 명령 시 ‘재껴라’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즉사시키라’는 뜻으로 사시미 칼로 몸을 찌른 후 비트는 것을 말한다. 경찰은 “찌른 칼을 비틀게 되면 몸에 공기가 주입돼 ‘억’소리도 못하고 즉사한다”며 “이들은 낫으로 아킬레스건을 파열시키는 등 잔혹한 방법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이들은 ‘수사기관에 검거되면 조직의 비밀을 절대 누설하지 않는다’ 등 행동강령을 미니홈피에 올려 신입 조직원 교육용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경찰의 수사를 진척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미니홈피에 올려진 글과 사진으로 인해 덜미가 잡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통상적으로 폭력조직은 식구들 얘기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는데 인터넷에 올려진 글과 사진들을 통해 경찰 수사가 진척을 볼 수 있었다”며 “결국 인터넷을 통해 영역을 넓히다 인터넷으로 꼬리를 잡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