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구 국세청 국장-임성균감사관 녹취록 대공개

정권최고실세 개입된 한상률 게이트 핵폭탄 터지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로비에서 비롯된 이른바 ‘한상률 게이트’가 현 정부 최대 측근비리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그림 강매 혐의로 구속된 국세청 안원구 국장과 국세청 관계자들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전격 공개했다. 민주당은 일단 안 국장측으로부터 입수한 녹취록 중 12개의 mp3파일과 1건의 한글파일을 우선 공개하고 나머지는 추가 사실확인작업을 거쳐 공개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녹취록의 내용은 한마디로 ‘충격’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치권 실세 개입설’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러 녹취록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임성균 감사관과 안 국장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이 통화에서 임 감사관은 “청와대의 최고위층은 이번 사건을 충분히 인지하고 조치를 지시했다”며 안 국장의 사퇴를 종용했다. 감사관은 뚜렷한 사유없이 국장에 사퇴를 강요하면서도 국세청장을 포함한 윗선에서 결정한 일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상률 게이트에 정치권 실세가 연루됐을 뿐 아니라 청와대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를 싣는 대목이다.
국세청 주변에서 들리는 소문을 종합해 보면 안 국장은 권력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 있는 희생양에 다름 아니다.
안 국장에 대해 잘 아는 모 언론사 기자에 따르면 안 국장이 받고 있는 그림 강매 혐의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안 국장은 자신이 권력의 오해를 받아 탄압받고 있으며 알 수 없는 세력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자신에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림로비의 진실을 아는 국세청 출입 기자들이 적지 않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고 이 기자는 안타까워했다.
또 일부 언론은 인터뷰 등을 통해 안 국장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녹취록 등 여러 증거들을 입수하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이들 언론사는 기자가 안 국장과 관련해 취재도 하고 기사까지 작성했음에도 보도를 하지 않았다”며 “이는 주요언론사에 특정 권력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과 이번 사건에 정치권 실세가 개입돼 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공개한 녹취록 등은 사실 일부 언론사가 먼저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 국장은 녹취록 제공과 더불어 많은 증언을 했다고 한다. 인터뷰 당시 안 국장은 만난 기자들에게 인터뷰와 녹취내용을 반드시 세상에 알려줄 것과 정확히 보도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안 국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종합편성채널 확보에 혈안이 된 보수언론을 믿은 것이 안 국장의 실수였다. 보수언론은 방송사업 진출 때문에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진실을 외면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권력의 음모 담긴 녹취록
안 국장의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 ‘그림로비’사건의 배후에는 정권 실세가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동시에 안 국장이 청와대 최고위층을 위협하는 비수를 쥐고 있기 때문에 제거대상으로 지목됐다는 믿기 힘든 말도 들렸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이 소문들은 상당부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안 국장은 과거 대구지방 국세청장 시절 서울 도곡동의 땅이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임을 입증할 수 있는 문건을 우연히 입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지금 안 국장이 곤경에 처한 진짜 이유라는 게 민주당과 안 국장 주변인들의 주장이다.
민주당이 공개한 안 국장의 녹취록 중에서 권력의 개입과 음모가 있었음을 잘 드러내는 것은 임 감사관과 안 국장의 전화통화를 담은 것이다. 내용을 들어보면 정부에서 안 국장을 회유해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화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여기서 녹취록의 주요 부분을 통해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살펴보자.
지난 7월 21일 녹음된 임 감사관과의 통화내용을 보면 임 감사관은 “안 국장님 관련해서 안국장님이 만약에 명퇴를 하시면 사실은 안 국장님 그동안 여러 가지 일도 많이 하셨으니까 저희 조직 쪽에서 만약에 나가시면 외부기관에 CEO자리를 저희가 드리고, 그렇게 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으냐 그런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명퇴를 이번에 하시면 00이라든지 이런 쪽에 자리를 드리는 걸로 이렇게 좀 의견이 집약이 되고 있거든요”라고 안 국장에 사퇴를 종용했다.
안 국장이 “안 나가면 어쩔겁니까”라고 되묻자 임 감사관은 “만약에 안 나가시면 제가 그 부분은 지금까지 해오던 그런 조치가 될 가능성이 많거든요”라고 말했다. 임 감사관이 말하는 ‘그런 조치’는 불명예퇴직 또는 ‘예우’없는 강제퇴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 국장이 “누구의 뜻이냐”고 묻자 임 감사관은 “윗분들 얘기다” “여러 사람 포함한 것이다”라며 직접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돌려 말하느라 진땀 빼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 국장이 계속 누구의 지시냐고 다그치자 국세청장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고 임 감사관은 밝혔다.
일그러진 국세청 영웅
또 청장이 안 국장을 만나 해명을 듣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부분도 눈에 띈다. 안 국장은 임 감사관에 청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하지만 임 감사관은 “제가 건의를 해도 그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안 국장을 통한 진실 확인이 아니라 안 국장을 퇴직시키는 쪽으로 이미 결론 났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이어 안 국장이 자신의 퇴직이 부당함을 따지자 임 감사관은 “우리 안 국장님에 대해서는 정부 전체에서 어느 정도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거든요. 정부 전체에서…”라고 말했다. 안 국장이 이에 대해 “지금 하신 말씀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정부 전체라는 이야기가?”라고 묻자 임 감사관은 “그럼요 책임질 수 있죠”라고 말했다.
안 국장이 계속 청장을 만나 진실을 전달하겠다고 밝히자 임 감사관은 “그런데 꼭 청장님 개인한테만 매달리지 마시고 크게 보셨으면 하는 생각인데. 정부 전체적으로도…”라며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임 감사관은 안 국장과 대화중에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청와대가 안 국장을위험인물로 규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임 감사관은 “이미 길을 너무 많이 온 것 같아요. 그니까 지금 청와대나 이쪽에서도 그렇고 저희가 듣기로는 최고위층에서 그거에 대해서 상당히 다 인지하시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국장이 “지금 하신 이 말씀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청와대 최고위층이라는 이야기를 감사관님 입으로 이야기 하셨어요. 그걸 책임지셔야 합니다. 감사관님께서 직접 확인하지도 않고…”라고 말하자 임 감사관은 “들은 겁니다”라고 말했다. 안 국장이 누구에게 들었냐고 묻자 “그거야 뭐 제가 말씀드릴 수는 없고…”라고 확인을 거부했다. 이 말에 안 국장은 “나중에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임 감사관은 “물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를 통해 임 감사관이 고위층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 국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임 감사관에 “나는 지금 국세청의 어떤 자리에도 관심이 없고 나는 이미 모든 결심이 선 사람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거는 내가 평생을 국세청을 위해서 살려고 했던 사람이고 국세청에 몸담아서 애정을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인데 국세청을 살리고 내가 죽겠다는 겁니다. 지금 감사관님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 작태들이 국세청이 죽는 길입니다. 이게 국세청을 죽이고 있는 길이라고 이게. 제대로 된 국세청이 될 수 있도록 내 몸을 던져가지고 하겠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진짜 청와대 개입했나
민주당 ‘한상률 게이트 및 안원구 국세청 국장 구속 진상조사단(단장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 녹취 내용을 근거로 ‘한상률 게이트’에는 이명박 대통령 소유로 알려진 도곡동 땅과 이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의 만남, 정두언 의원 등이 연관돼있다는 안 국장의 주장을 조사할 예정이다.
또 조사단은 이와 관련해 도곡동 땅이 이 대통령의 소유라는 문서가 실제 하는지, 일각에서 소각됐다고 알려진 문서의 복사본이 있는지와 함께 문서의 출처가 어디인지 등을 파악하는 동시에 문서가 존재한다면 이것을 입수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안 국장의 주장을 들어보면 검찰이 안 국장을 체포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사단이 밝힌 안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안 국장이 대구지방 국세청장 시절 포스코 건설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것이라는 사실이 적시된 ‘전표 형식’의 문서를 발견했고, 안 국장은 이를 정치적 사안이라 보완조치하라고 했다고 한다.
또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 실소유 논란이 일었던 도곡동 땅과 관련해 안 국장이 작성한 서면자료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 자료의 사실성 여부를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사실로 확인되면 공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안 국장은 대통령에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조치로 검찰이 안 국장을 긴급체포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검찰은 안 국장이 모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기 직전 연행됐다.
한편 민주당이 지금까지 공개한 녹취분량은 전체의 1/3에 해당하며, 아직 관련 녹취록 4기가바이트 분량 더 있다고 민주당은 밝혔다. 민주당은 녹취 내용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좀 더 확인한 뒤 공개할 예정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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