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참여정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할려다 검찰의 반발로 무산된 이후 이명박 정권의 ‘넘버 2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재차 팔을 걷고 나섰다. 이 위원장은 검찰 비리가 있으면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자기 사람들을 수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수사가 될 수 없다며 별도로 독립된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검경을 비롯해 국세청, 감사원, 국정원 등 ‘5대사정기관 연석회의’를 만들겠다는 주장에 검찰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형님’ ‘아우’하는 이 위원장의 발언 배경에 대통령의 복심이 담긴 게 아니냐는 시각과 ‘국민권익위원장 자리가 사정기관 수장자리인 줄 안다’며 검찰 내부의 의견이 맞붙고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 그리고 명실상부한 MB 정권의 실세인 이 위원장의 맞대결에 정치권과 검찰은 숨죽이며 주시하고 있다.
‘당 대표 출마’, ‘재보선 출마’, ‘장관행’, ‘비서실장’ 등 무성하게 하마평에 올랐던 이재오 전 의원이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국민권익위원장 자리는 총리실 직속기구로 지난해 2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기능을 통합해 출범했다. 설치근거인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도 보여주듯이 권익위의 주요 역할이 부패와 전쟁을 치루는 기구임을 알 수 있다.
이 위원장 역시 취임과 함께 ‘부패와의 전쟁’을 암시했고 이후 공직자의 청렴도 평가, 고위공수처 신설, 5대 사정기관 연석회의 등 연일 광폭행보를 보여왔다. 무엇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그동안 무소불위 권력을 누렸던 검찰의 반응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고비처) 신설 및 검경 수사권 분리를 추진했으나 검찰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재차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여겨지는 이 위원장이 ‘공수처’와 ‘연석회의’ 추진의사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에 힘을 빼는 것으로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발언 뒤에 청와대의 ‘의중’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곤혹스럽다는 입장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위원장인 지난달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공수처 신설 추진을 밝히며 “지금은 검찰 비리가 있으면 검찰에 고발을 해야한다. 자기네들이 저지른 비리를 자기들에게 고발하는 꼴”이라며 “권력형·공직자·토착 비리를 수사하는 전담기구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재오 ‘공수처’ 검찰 압박… 성공여부 미지수
또한 이 위원장은 “공수처는 검찰에 두든 법무부에 두든 대통령 직속으로 하든 중요하지 않다”면서도 “검찰에 둘 경우 독립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공직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는 고위공직자 청렴도 평가에 대해서 그는 “장·차관, 군 장성, 경찰 경무관 이상, 광역자치단체장, 판·검사, 국회의원이 고위공직자다”면서 “공기업, 공공기관, 정부부처, 단체장 등 몇 개로 나눠 그룹내 청렴도를 평가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최근에는 그 범위를 하급직인 9급 공무원에게도 확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사정기관뿐만 아니라 공직사회에 대한 전방위 압박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검찰이 앞장서 반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장 지난 10월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박선숙 의원은 ‘5대 사정기관 연속회의 추진은 월권이다’고 지적했다. 무소속 신건 의원은 ‘고위 공직자의 청렴도 평가는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감을 표출했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공수처 신설관련 ‘권익위기 궁극적으로 공수처를 만들어 관할할려 한다’는 세간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검찰의 반응은 냉담했다. 최근 ‘기자 촌지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김준규 검찰 총장은 지난 19일 국정감사장에서 “이재오 위원장이 공직자비리수사처와 비슷한 기구를 만들어 어렵게 가느니 저희 조직을 통해 해나가는 게 낫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한 검·경이 포함된 ‘5대 사정기관 연석회의’ 협의체 구성에 대해서도 김 총장은 “제안을 통보받은 바 없다”고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검찰, ‘이재오 반격 카드’ 만지작 만지작
김 총장이 이 위원장의 광폭행보에 대한 싸늘한 분위기는 검찰내부에서도 감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서초동내에서는 ‘권익위원장 자리가 사정기관 수장자리로 인식하는 것 같다’, ‘민중당 출신 아니냐’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흘리고 있다. 나아가 서초동 일각에서는 ‘골프게이트’로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친이재오계인 공성진 최고위원과 엮어서 연말내 이 위원장의 위상에 흠집을 낼 것이라는 악소문마저 나오고 있다.
공 최고는 검찰로부터 자신과 친분이 깊은 서울시당 부위원장이이었던 공모씨 스테이트월셔 컨트리클럽회장으로부터 골프장 인허가 과정 및 대출과정에 압력 의혹과 함께 불법적인 정치 자금 수수 혐의를 받고 있다.
공 최고가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위기관리포럼’ 사무실 임대료와 운영비를 대납한 L사 관련 의혹 사건의 경우 이 사무실이 과거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사무실로 이 위원장이 관련된 연구 단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이런 분위기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위원장이 살아있는 권력의 핵심 실세라는 점에서 자칫 정면대결은 양측의 상처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위원장 역시 당초 ‘강경한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몸을 낮추고 있어 소강상태다. 그러나 공 최고의 검찰 소환 여부에 따른 친이계의 수사가 본격화 될 경우 재차 검찰과 친이계의 파워 게임은 불거질 공산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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