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 갔다 우로 갔다 헷갈리네”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민주당의 정체성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뉴민주당 플랜’으로 새롭게 민주당을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은 조문정국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진보의 색깔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당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뉴민주당 플랜이 발표됐을 때 당내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비주류에서는 한나라당 2중대라는 말까지 거론될 만큼 보수적 색체가 강했다”고 말했다. 이런 정체성 논란이 자칫 민주당의 분열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지난해부터 준비해온 ‘뉴민주당 플랜’이 발표되자마자 민주당은 논란이 가중됐다. 뉴민주당 플랜의 내용이 현대화를 중시하며 성장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민주당의 노선과는 차이가 있는 내용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도개혁 성향을 지향해 왔던 당이 갑자기 성장과 현대화를 내걸면서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이는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성장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한나라당의 2중대라는 소리까지 나오면서 반발이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노선 변화는 정체돼 있던 당 지지율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 관계자는 “솔직히 지지부진한 지지율이 고착화되면서 존재감이 희석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서민과 중산층 지지만을 고집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고 더 많은 프레임을 담기 위해 ‘뉴민주당 플랜’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말은 결국 민주당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한나라당이 잘하고 있는 것은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마저 나왔다.
그러나 이는 원래의 지지자들까지도 등을 돌려 버릴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가운데 껴 있는 꼴이다. 왼쪽엔 진보신당, 오른쪽엔 한나라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당의 노선을 오른쪽으로 조금 선회하면서 기존의 지지 세력인 진보진영의 반발을 가져왔다. 특히 민주당내에 포함된 인사들 중에는 진보에 가까운 인사들과 중도 인사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정체성 논란은 민주당의 근간을 흔들 정도였다. 당내 비주류 인사들 중에는 민주당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재선의 한 의원 관계자는 “뉴민주당 플랜으로 당내 갈등이 상당했다. 이러다간 기존의 지지세력마저 떠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렇게 정체성 문제로 시끄럽던 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반전됐다”고 말했다.
당내 자성의 목소리 커져
갑작스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당의 정체성을 한방에 정리했다. 5백만 명의 추모 물결과 애통해하는 국민들을 바라보면서 민주당은 그토록 선을 그으려 했던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이 당을 장악했다. 논란이 일던 ‘뉴민주당 플랜’은 진보성향으로 급선회 했다. 정세균 대표도 지난 의원 워크숍에서 “진보적 색깔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며 진보 노선을 강조했다.
당 안팎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모습은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났고 한나라당을 역전하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으로선 조문정국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고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 정체성 논란은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 된다”고 말했다.
당 정체성 논란은 조문정국으로 하여금 대여 투쟁을 강화하는 민주당의 노선이 ‘진보’라고 공식선언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당 정체성 논란과 자성의 목소리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당 정체성 논란에 대해 홍재형 의원은 지난 의원 워크숍에서 “좌로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중도로 가는 게 맞다” 며 “우리가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대안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진보적 노선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제 와서 계승한다는 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겠느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자칫 여론에 편승된 인기를 노리는 정당으로 보여 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한때 노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가해자였다. 한나라당의 사과를 받기 전에 우리 먼저 자성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있어야만 국민들에게 진심이 전달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도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제야 계승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행동이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했어야 옳다. 돌아가신 다음에야 계승한다는 것은 인기를 얻기 위한 모습으로 보여 질 수 있고 이는 지지율 상승을 꺾는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국민적 여론에 떠밀려 참여정부의 재평가니 진보노선이니 하는 것들은 국민들을 분노케 할 소지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민주당은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당 정체성확립을 하루빨리 이뤄내야 하는 것이 민주당의 과제다. 자칫 이를 소홀히 하고 여론에 휩쓸려 정체성을 확립시키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믿음을 져 버릴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의견이다.
여기에 국회 개원을 하지 않은 체 대여투쟁만을 계속한다면 민생문제에 등 돌리는 정당으로 보여질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정국 주도권을 잡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지난 촛불정국처럼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확실한 대안정당으로 거듭나고 제1야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 총선과 대선 등에서 승리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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