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군 여성 부사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군대 내 성범죄’가 다시 국민 심판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A씨 유족에 의하면 충남 서산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A씨는 성추행도 모자라 부대 측의 조직적 회유와 2차 가해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3월2일 선임 중사 B씨의 요구로 회식 자리에 불려 나갔다가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B씨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튿날 A씨는 부대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사과도 없이 “없던 일로 해달라”는 상관들의 말뿐이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B씨와의 합의를 종용했고 B씨는 “전역해서 회사 물려받으면 그만”, “죽어버리겠다”는 식의 협박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성폭력의 가장 기본적인 대응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도 즉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A씨가 청원휴가를 내고 성폭력 상담소에 수차례 상담을 받았고, 부대 전속(轉屬·소속 이동) 요청이 받아들여져 지난달 18일부터 경기도 성남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부대를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이동한 부대에서는 관심 병사 취급으로 압박을 주었고 A씨는 새 부대로 출근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1일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친 뒤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A씨의 휴대전화에는 ‘나의 몸이 더렵혀졌다’, ‘모두 가해자 때문이다’ 등의 메모와 함께 마지막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지면서 하루 만에 30만 명의 청원인을 돌파했고, 정치권과 여론도 사건에 집중했습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일 A씨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응접실에서 유족에게 “죄송하다”, “저도 같은 딸을 둔 아버지. 딸을 케어한다는 마음으로 낱낱이 수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공군은 군 검찰과 군사경찰로 합동전담팀을 구성해 국방부 검찰단을 꾸려 사건의 피의자 장 모 중사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한편, 공군 여중사 A씨 사건 외에도 공군 내 불법촬영까지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요. 여전히 군대 내 성범죄가 개선되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여론은 이번에도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게 아닌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방부나 군에 맡기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국방부나 군이 아닌 특검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대표는 지난 2019년 군인권센터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군의 특수성 중 하나는 집단주의 문화”라며 “성폭력 피해 여군들이 상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권력의 핵심은 ‘인사 권한’”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A씨 사건의 청원인은 “이런 문화의 뒷배경에는 군사 법원도 큰 역할을 한다”며 군사 법원 폐지를 주장했는데요.
청원인은 군사 법원 폐지 근거로 ▲군사 법원이 다루는 군 문제가 8%에 불과한 점 ▲군인이라는 이유로 보호관찰, 사회봉사, 수강 명령 면제 ▲성범죄 피해자와 증인의 실명·주소 공개 ▲재판 독립성 훼손 ▲일반 법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기소율·처벌률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 진술권 침해 ▲성범죄자들의 도피처로 이용되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군형법에 대한 사각지대도 지적됐습니다. 군형법 처벌 수위는 민간인들에게 적용되는 일반형법보다 수위가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군인이 군인을 상대로 일으키는 성추행 범죄는 군형법에서 ’군인 등 강제추행‘ 죄목으로 처벌이 이뤄집니다. 일반형법에서 징역형, 벌금형인데 군형법에선 1년 이상의 징역형만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군 성범죄의 실형 선고율은 민간 성범죄에 비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2015년부터 2020년 6월 말까지 각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약 1천700여 건 중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175건으로 10.2%의 비율에 불과합니다.
여군 대상 성폭력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고를 유예하는 것으로 전과도 남지 않는 ’선고 유예‘는 173건 중 약 20건이나 됩니다. 민간 성범죄 선고 유예 비율인 1.36%의 약 10배 수준입니다.
심지어 현역 군인에게 군형법이 아닌 ’일반형법‘을 적용하는 일종의 카르텔이 녹아든 정황도 나타납니다. 법적 처벌 대신 가해자나 피해자를 타부대로 전출시키는 경우도 20.2%입니다.
전문가들은 군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상명하복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군대문화, 상관이 부하 인사고과를 평가하는 시스템, 부실한 양성평등 교육, 군대 내 온정주의를 꼽았습니다.
국방부가 군대 내 성범죄를 근절할 의지가 있는지, 정말 군내 성범죄가 사라질 수 있을지, 가해자들은 엄정처벌에 처할지 끝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2021.06.03 일요서울TV 신수정 기자
신수정 기자 newcrysta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