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효제 사진작가 [제공=현효제 작가]](/news/photo/202105/451476_368745_313.jpg)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현효제 사진작가는 국내외를 막론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전문으로 촬영한다. 정부의 지원이 아닌 자비와 후원에 의지해서다. 한 영상에서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는 현 작가에게 “사진 값이 얼마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선생님은 이미 70년 전에 사진값을 지불하셨습니다”이다. 그 영상은 국내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왜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는 한국전 참전용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일요서울이 지난 12일 성수역 모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전쟁 때 팔다리 잃은 美 웨버 대령... “내 희생 하나도 아깝지 않아”
-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 2016년 군복 사진전에서 우연히 미국 해병대 출신 6.25 참전용사인 살바토르 스칼라토를 만났다. 그는 눈빛과 한국전 참전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근데 저 사람은 왜 남의나라 전쟁에 왔는데 저런 자부심이 있을까?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 저의 호기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프로젝트 솔저’(Project Soldier)라는 명칭의 작업이다.
-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참전용사는.
▲ 너무 많지만 윌리엄 빌 웨버 대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하셨다. 그분 말씀이 전쟁에서 민간인 한명을 살리기 위해 군인 세 명이 희생돼야 한다고 했다. 그럼 손해 아니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 한사람이 살아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 아니냐고 했다. 미군 3만6천명이 전사한 것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의 희생 때문에 이 땅에 생명과 자유가 지켜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기 때문에 한국이 나에게 빚진 것은 없다고 했다.
-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
▲ 미국 애리조나에 사는 에릭 호프라는 6.25 참전용사가 계시다. 제가 그를 만났을 때 주변에서 그가 한국전쟁에서 최악의 경험을 한 용사라고 했다. 근데 총 한번 쏘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왜 최악일까?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어느 섬에 있는 미군 비밀기지에서 통신병으로 일하며 약 1년2개월가량을 한국군과 한식을 먹으며 살았다고 했다. 근데 메뉴는 밥과 반찬인 짠무가 전부였다. 맛이 어땠냐고 물어보니 다신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분은 행사에 한식이 나오면 안 간신다고 했다.
- 코로나19로 해외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 원래 계획은 캠핑카를 후원받아 2년 동안 참전용사를 찾아 미 전역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코로나19와 허리 디스크 문제 등이 생겨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국군참전용사 분들을 촬영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 대학 전공이 사학이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사진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나.
▲ 군대에 있을 때 CBT(Computer-Based Training)병으로 복무했다. 처음에는 웹디자이너를 계획하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하러 2004년 미국 유학을 갔다. 수업 과목 중 사진이 필수 클래스라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빠져들었다.
- 참전용사 분들이 어르신들이라 상대하기 어렵지 않았나.
▲ 국내 와 해외 참전용사 분들의 상황이 좀 다르다. 해외 참전용사 분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옆집 할아버지처럼 익숙하고 친숙한 교감을 느끼게 해주신다. 근데 국군 참전용사 분들은 상대하기 좀 힘들다. 이 분들은 한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 유공자로서 나라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셨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오해도 있으셔서 설득하는 과정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서로 소통하고 진정성을 나누면 그제야 마음의 문을 여신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참전용사를 소홀하게 대해왔던 건 아닌가 싶다.
- 대표님은 참전용사 사진 촬영을 할 때 항상 인사를 90도로 하고 허그를 하시던데.
▲ 그분들과 교감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그분들에게 필요한 건 진심어린 경청이다. 근데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허그를 하지 못한다.
- 대한민국은 분단으로 인해 군인이 가장 필요한 국가임에도 처우 문제가 항상 논란이 됐다.
▲ 국가가 국군참전용사 대우를 전쟁이 끝날 때부터 했어야 하는데 전쟁 이후라 너무 가난했다. 그리고 경제발전이 있었지만 참정용사를 대우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본다. 아직 참전용사 7만 명이 살아계신다.
- 6.25를 잊혀진 전쟁이라 부른다. 남북이 아직 분단중인데 왜 그런 이야기 나온다고 보나.
▲ 사실 우리가 나서서 기록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중요한건 교육이다. 참전용사들이 공통으로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잊지 말아다오 내가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이다. 그래서 제가 가진 능력인 사진과 영상으로 그분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우리는 볼 수 있지만 다음세대는 보지 못하니 참전용사들이 지켰던 가치와 희생을 알려줘야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촬영과 교육을 같이 하고 있다.
- 그동안 한국전쟁 참전용사 사진을 촬영을 자비나 소정의 후원으로 진행하셨다고 들었다. 정부 차원에서 따로 지원은 없었나.
▲ 없었다. 최근 기부금 관련한 법이 까다로워져 정부나 기업에서 정식으로 기부금을 받으려면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야한다. 그렇게 해야 지정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비영리 재단을 준비 중에 있다.
- 참전용사 촬영으로 오해를 받는다든지 힘든 점은 없었나.
▲ 처음 참전용사 촬영을 시작했을 때 사기꾼으로 오해도 받았다. 참전용사 한 명당 얼마씩 받느냐로 시작해 사진을 팔면 안 된다고 했다. 근데 방송에 나간 이후로 많은 분들의 시각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
- 앞으로 계획은.
▲ 2023년까지 한국전쟁 참전국을 전부 돌며 참전용사 분들을 촬영하고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한국전쟁을 정확히 알리고 교육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올해가 6.25전쟁 70주년이다. 아직도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살아계시고 활동하신다. 참전용사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많은 국민들이 그분들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느끼게 하고 싶다. 그분들을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고맙습니다’라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면 좋겠다.
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