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공로명 편] 외무부장관 시기 비하인드 스토리-⑳
[외교관 오럴 히스토리-공로명 편] 외무부장관 시기 비하인드 스토리-⑳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1-04-23 20:42
  • 승인 2021.04.23 22:44
  • 호수 1308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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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기 [뉴시스]
전용기 [뉴시스]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방문

“오스트리아는 4자회담에 전폭적인 지지 표명해”

- 1996년 5월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방문하셔서 오스트리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 오고 갔나? 
▲ 3월 초 ASEM 정상회담 끝나고 돌아온 후에 얼마 안 되어서 4월26일에 다시 출국했다. 지금 말씀하신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드란드에서 열리는 제9차 UNCTAD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갔고, 거기서 비엔나·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방문하게 됐다. UNCTAD 총회는 지난 과거 8번 총회 중에서 6번을 외무부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을 했다. 77그룹에 대한 중요성 때문에 그랬다. 특히 77그룹에 대한 유대와 관심을 표명할 필요가 있었고, 또 OECD 가입이 눈앞에 와 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회원국 자격으로 참가한다는 의미였다. 77그룹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외무부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총회 참석 중에 사정이 허락하면 넬슨 만델라 대통령에 대한 예방, 알프레드 니조 외상과의 면담. 만델라 대통령은 1995년에 방한했고, 1996년 2월에 니조 외상이 한국을 방문했다. 

각각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예방을 하려고 했는데 만델라 대통령에 대한 예방이 성사가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만델라 대통령이 1995년 한국에 왔을 때 제가 외무부장관으로서 비행장에 나가서 영접도 했다. 국가 원수가 왔을 때 외무부장관이 공항 영접을 하는 것이 우리 의전으로 정해져 있다. 각별히 만델라 대통령과는 그러한 관계가 있었기에 예방을 희망했다. 그리고 희의가 끝난 후에 오스트리아를 방문하게 되는데 오스트리아에 국제기구로 원자력기구가 있기도 하고, 또 외교 다변화라는 견제에서 그곳에 갔다. 이상옥 외무부장관이 1992년에 방문한 후에는 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4년 만에 방문한 것이다. 우리 대통령의 방한 초청장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브라니츠키 수상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가지고 오스트리아에 가게 됐다. 4자회담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이해와 지지를 구한다는 의도도 있었다. 

4자회담이라는 것은 4월16일에, 바로 이 방문 전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평화 증진을 위해서 4자 회담을 제의하게 됐다. 그것은 북한이 평화 정전 협정을 사문화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에 4자회담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평화 협정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는 정전 협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와 미국의 입장이었다. 항구적인 평화의 확립은 남북한의 국민만이 이루어야 할 과제라는 기본 원칙과 이러한 제제는 남북 간이 주도적으로 달성해야 할 문제이며 미국과의 별도 협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한·미 간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북한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버리도록, 미국과 북한 간의 별도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잘라서 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북한에게 전제 없이 대화를 재개할 것, 중국의 협력과 도움을 받아 긴장완화 조치를 기하고, 남북한·미·중 4자가 테이블에서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를 대체할 수 잇는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논의하자는 것을 모토로 했다. 소련 방문 회의 때 이를 자세히 논하겠지만, 북한이 이를 거의 철저하게 거부했다. 

- 처음에는 그렇다. 
▲ 그래서 4자회담에 나왔을 때 일본과 중국, 중국은 상당히 신중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자국이 배제되었기 때문에 부정적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EU의 KEDO 참여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EU 전체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로서도 참여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탈리아에 가서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개별국가들도 KEDO에 참여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오스트리아 측에서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원전 건설이라는 의제로는 KEDO에 가입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그때 우리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롤 모델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였다. 한국은 OSCE에 옵서버로 초청받아 한 번 참여했었는데, 상시적으로 OSCE 활동에 한국도 관여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OECD 가입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지지도 요청했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한국 가입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1997~1998년 UN 경제이사회(ECOSOC) 이사국에 이때 입후보했다. 1995~1996년 UN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가 끝난 후에 1997~1998년에는 ESOSOC의 이사국이 되려고 출마를 하면서지지 요청을 했고, 오스트리아는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브라니츠키 수상과의 면담도 5월2일 목요일이었어서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고 4자회담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지지에 대해 감사하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브라니츠키 수상은 1985년에 재무상으로 있을 때 한국에서 열린 IMF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었다고 하면서, 한국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 번 방콕 ASEM 정상회담이 본인에게 있어서는 브레인스토밍 같은 역할을 했고,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제 없이 정상들이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대단히 좋았다고 하면서, 다만 그러한 경우에는 후속조치가 단단해야 의미가 있고 생산적인 회합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ASEM 정상회담을 한국이 유치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오스트리아에 지지를 요청했다. 외상과 이야기할 때에도 지지를 이야기했었기에, 오스트리아 지지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제게 방콕 ASEM 정상회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보느냐고 묻기에, 저는 한국 입장에서는 유럽·아시아와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며, 서로 친분관계를 구축하면 양자간의 발전에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라고, 일반론이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또 우리의 OECD 진정 상황에 대해서 물어서 이야기 해주었다. 자본 이동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 대부분 잘 되어가고 있고, 노동 문제에 있어서 역시 우리 법령에 개정이 필요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OECD 측과 타협이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브라니츠키 수상이 “외무부장관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해서 고위인사들의 방문이 자주 있기를 바란다. 양국 기업 간에 많은 협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햇다. 좋은 사례로 오스알파인과 포스코의 협력이 유명하다. 포스코 초창기 일본은 협력을 상당히 꺼렸는데, 오스트리아의 오스알파인이 우리에게 기술을 제공하고 대단히 양호한 관계에 있었다. 브라니츠키 수상은 그런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가 상시적 OSCE 참여에 관심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는 북한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하는데, 경제적인 난관이 남북관계, 한반도 긴장 완화 측면에서 위험요소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과 에너지 부족을 겪을 때다. 중국·소련에서 원유 100만 톤씩 받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1992년 이후에는 경화가 아니면 기름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북한에 1990년부터 경화 결제를 하기 위해서 멈추었기 때문에 4만 7,000톤밖에 안 들어갔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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