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공로명 편] 외무부장관 시기 비하인드 스토리-⑧
[외교관 오럴 히스토리-공로명 편] 외무부장관 시기 비하인드 스토리-⑧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1-01-29 15:29
  • 승인 2021.01.29 19:03
  • 호수 1396
  • 5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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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전용기 [뉴시스]
대통령 전용기 [뉴시스]

 

[일요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7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김영삼 대통령 유럽 순방

하벨 대통령 “北, 국민 뜻 외면, 국제사회 고립 오래 견딜 수 없어”

-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어려웠던 난제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나. 
▲ 그에 대해서 프랑스 정부 내에서 이견이 많고, 그렇게 약속을 이행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의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미테랑 대통령 측에서 최종적으로 합의가 안 되면 국제 중재에 회부하는 것은 어떤가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됐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우리 쪽의 입장은 “이미 합의가 된 테두리에 의해서 해결되기를 바란다. 반환 그대로 했으면 좋겠고 등가라 해도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도 복잡한 이야기이고 현실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가 있겠느냐” 물으면서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우리 입장을 표명했다. 그 후에는 우리가 빌려오는 식으로,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어디까지 법적인 소유권은 프랑스에 남아 있는 형식으로 해결이 됩니다만. 그러한 당시의 사정이 있었다. 

그 후에 프랑스 총리와 우리 대통령의 회담이 별도로 있었는데 이때 우리 쪽은 프랑스가 특파원, 주재원들에게 부과하는 사회보장세를 감면해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선처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왜냐하면 특파원이나 상사원들이 2~3년이면 돌아오는데 기여만 하고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 그 문제가 EU국가들 내에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문제였는데, 이 문제를 프랑스 측에 제기했다. 그게 프랑스 방문 가운데에서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일인데, 이때 미테랑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을 영접했다. 미테랑 대통령이 다음 해 정월에 돌아가셨다. 그때 제가 마침 유럽을 여행하던 때여서 정부 조문 사절로 가게 됩니다만, 그 다음에 프랑스에서 체코로 넘어가게 됐다. 

- 체코에서는 하벨 대통령을 만나게 됐나.
▲ 그렇다. 하벨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데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체코 땅을 밟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하벨 대통령이 자기가 1991년 방한 했을 때 기억을 대단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두 대통령이 다 같이 체코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처지라 서로 일종의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신 듯,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친숙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하벨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먼저 언급하면서 “어떤 나라도 이렇게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하면 오래 견딜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 아니냐”고 하면서 북한 정권의 금후의 향배에 대한 하벨 대통령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 다음에 “한국의 UN 안보리 진출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체코는 아시다시피 EU·OECD·NATO 가입을 한창 추진하고 있을 당시였으니,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고 물론 우리도 우리대로 “서로 긴밀히 협조를 해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외상회담이 별도로 있었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실무 이야기도 포함해서 UN 안보리 진출과 체코의 KEDO 참여를 요청했다. 또 기술정보협정·이중과제반대협정·투자보장협정이 준비되어 있어서 정부를 대표해서 외상 간 서명을 했다. 이렇게 양국 경제협력의 토대가 마련이 됐다. 

당시 특히 대한항공 등의 체코 진출이 유망하기 때문에 항공협정이 이미 양국 사이에 있었으므로 서로 상호 취항을 하자고, 체코는 체코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체코에 유럽노선 연장을 해가는 상호 취항을 우리 측이 제의했다. 체코가 EU에 가입할 경우에는 ASEAN하고 APEC과의 연관 등에서 양국과의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저희들은 체코의 EU 가입을 적극적으로 축복했다. 이후 대통령과 바츨라프 클라우스 수상의 별도 회담이 3월5일에 있었는데 클라우스 수상도 1994년 10월에 방한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방한담을 가지고 양 지도자의 이야기를 했고, 특히 우리나라 OECD 가입을 신청하고 있고 체코도 같은 처지였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부분이 많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체코가 우리의 안보리 진출에 여러 가지 협조해준 데 대해서 사의를 표했다. 

특히 체코의 통신공사를 민영화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거기에 “우리 기업의 참가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참가하는 데 협력을 해주면 고맙겠다”고 클라우스 총리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그다음에 체코 쪽에서 체코에 진출한 삼성·대우 등 한국 기업의 활동에 만족을 표명하고 있었고, 한국 시장에 진출한 사무기기 관련 체코 업체에 대해서 한국의 협업에 대해서 만족을 표명했다. 그다음에 체코 측에서 제3국 시장에 대한 진출을 표명했다. 아시다시피 체코는 오랫동안 공산권 국가였지만 공산권 안에서는 제일 공업화가 앞선 나라 아니겠나. 그다음에 한반도 정세, 특히 북핵 문제와 통일 관련해서 관심을 갖고 우리 측의 사정과 입장을 물어봤다. 

- 체코 가음으로는 어느 국가를 방문하셨나.
▲ 독일로 들어갔다. 독일 방문은 3월6일부터 8일까지인데, 독일이 그때 수도를 옮기는 과정에 있어서 본에 먼저 갔다. 아마 본에 마지막으로 간 국가원수들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그러한 임계점에 우리가 본을 찾아 갔다. 특히 헬무트 콜 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 콜 수상이 북한 정세, 통일 문제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콜 수상은 “독일 통일은 당시 국제정세를 정확히 포착하고, 동독의 악화된 경제 사정에 힘입은 것이 크다”며 통일이 성취된 요인을 이야기했다. 

서독이 경제지원을 한 대가로 동독 국민의 서독 방문을 끌어내지 않았나. 그래서 동독 시민들이 서독의 이산가족을 찾아오는 서독 방문을 확대한 것, 결국 그런 조치가 동독 붕괴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콜 수상의 인식을 이야기하고 “국민의 자유이동이 통일 실현의 핵심이자 결정타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 양국의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어서 우리가 KEDO 참여를 요청했다. “비재정적인 참여라도 좋으니까 KEDO에 참여해달라. 그리고 우리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하는 데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더니 독일 측에서 콜 수상의 이야기가 “아시아그룹의 합의가 되어 있느냐. 아시아그룹에서 한국을 비상임이사국으로 추천한다면 지지에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 우리도 아시아그룹의 컨센서스가 전제였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다음에 월드컵 유치에도 독일의 협조를 요청을 했다. “독일 프란츠 베켄바워 FIFA위원을 만나서 지지를 하도록 옆에서 조언을 하겠다”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특히 88서울올림픽을 한국이 성공리에 훌륭하게 마친 것을 높게 평가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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