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당 통합력 상실에 따른 리더십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외형상으로는 잇따른 공천파동으로 불거지고 있다. 강현욱 전북지사 탈당 파동으로부터 시작해 권선택 의원 탈당, 김태환 제주지사 영입무산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내부적으로 당내 계파 통합 실패와 사학법으로 인한 청와대와의 불편한 관계까지 정 의장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당 일각에선 정 의장의 정치생명을 건 지방선거 올린 전략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정 의장의 연이은 무리수로 꼽는 것은 공천 문제이다. 특히 여당이 희망을 걸고 있는 지역인 수도권, 전북과 대전 그리고 제주도 광역단체장 후보자 선출에 잡음과 한탄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김태환 제주지사 영입 무산 해프닝은 가장 대표적인 정 의장의 악수로 지적되고 있다. 한나라당 김 지사는 중앙당에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을 제주도지사에 전략공천하자 이에 반발,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인물이다.
여당은 진작부터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진철훈 이사장을 전략공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론조사 가상대결에서 진 후보가 현 후보에 비해 눈에 띄게 뒤떨어지자 여당은 김 지사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화근이었다. 이에 김 지사는 지난 4일 열린우리당 입당 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제주도민을 우롱한 처사’, ‘철새 정치인’이라는 진 후보의 역공을 받자 다음날인 5일 열린우리당은 영입을 취소하고 원점으로 되돌려야 했다.열린우리당은 ‘개인 신상의 문제’라고만 발표하고 영입이 취소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여당이 선거결과에만 매몰돼 제대로 검증도 안하고 성급하게 영입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당내서도 쓴 소리
당내 개혁진영쪽에서도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보냈다. 바로 김 지사의 ‘국민회의->무소속->한나라당->여당입당 발표->무소속으로 이어지는 철새 경력 때문이었다.이런 공천 파동은 당내 다수가 정 의장의 지방선거 올인 전략과 무관하지 않게 봤다. 그동안은 정치생명을 건 정 의장의 공천 전략 때문에 침묵했던 것뿐이었다.가깝게는 정 의장의 전주고 선배인 김완주 전주시장을 전북지사 후보로 무리하게 공천하려고 시도하다 현 강현욱 지사의 탈당 소동도 있었다.
강 지사가 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그 배경에는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는 형편이다.또 한나라당 출신인 염홍철 대전시장을 열린우리당 후보로 영입하고 권선택 의원의 탈당을 초래한 것도 정 의장의 ‘올인 전략’에 기인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인천시장 후보인 최기선 후보의 영입과 관련해서도 신한국당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일부 당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외로운 몽골기마병 DY
전북, 대전, 제주도지사에 이어 공천 잡음이 수도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양상이다. 서울시장 후보와 경기도지사 후보 공천을 잘못한 게 아니냐는 때늦은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강금실-진대제 카드보다 진대제-김진표까드가 더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이는 강 전장관이 뜨지 않는데다 인물면에서 상대후보보다 우세한 진대제 후보까지 맥을 못추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 푸념섞인 말들이다. 문제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지적들이 캠프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자체가 정 의장의 리더십 부재를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정 의장은 지난 2월 당 의장 취임과 동시에 ‘힘 있는 여당, 힘 있는 의장’을 모토로 강한 여당을 주창했었다.
이에 ‘선자강론’과 ‘신몽골기마병’을 구체적 실행목표로 삼았다. 선자강론의 핵심은 ‘여당이 여당답게 서야 한다’는 것으로 고건 전총리를 비롯, 민주당과 연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 전총리와 첫 번째 만남에서 이렇다할 연대 약속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선자강론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잠재적 경쟁자인 김근태 최고위원이 고건 전총리와 물밑접촉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정 의장으로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 전총리와 연대 실패, 그리고 당내 친노.재야파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함으로써 정 의장에게는 ‘몽골벌판에 독야청청 서 있는 외로운 몽골기마병’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당-청 관계도 한랭전선
김근태 최고위원의 지방선거에서 한 발 빼고 있는 모습이나 이해찬 전총리의 정중동 태도도 정 의장에겐 부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 의장으로서는 청와대와 관계 소원이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2월 당의장 취임 이후 첫 당·청갈등은 유시민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 당시 드러났다. 정동영 계보 의원들의 ‘반대 성명서 발표’ 파문으로 당·청은 내재적 갈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이해찬 총리가 사퇴압박을 받을 당시 정 의장은 ‘이해찬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밝히면서 각을 세웠다.
이후 정 의장은 복수로 김혁규-문희상-한명숙순으로 후임 총리를 추천했다. 반면 물러나는 이해찬 전총리는 정 의장과는 달리 대통령에게 단수로 한명숙 의원을 추천했다. 노 대통령은 1순위인 김혁규나 2순위인 문희상 의원이 아닌 한 의원을 낙점함으로써 사실상 이 전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급기야 대통령이 여당에 사학법 양보 발언을 하면서 당·청갈등은 극점에 이르렀다.
정 의장이 대통령의 양보 발언을 공개적으로 일언지하에 거부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한 친노 진영의 인사는 “정 의장의 사학법 개정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이해한다”면서도 “대통령의 양보 발언을 완곡하게 거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 DY 국회의장 선거도 ‘참패’적극 민 김덕규 2표차로 ‘낙선’
열린우리당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방식으로 진행된 국회의장 후보 결정투표에서 4선의 임채정 의원이 5선의 김덕규 현 국회 부의장을 2표차이로 제치고 선출됐다.이번 선출 방식은 우리당 소속 의원 142명에게 국회의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 1명을 써내도록 한뒤 이를 집계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했다.
교황 선출방식의 도입은 하반기 국회의장직을 원하는 여당내 경쟁력이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선거결과에서도 이런 점은 나타났다. 임 의원이 71표를 얻고 김 부의장이 69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단 한 의원이라도 김 부의장에게 넘어갔을 경우 가부동수로 다선인 김 부의장이 선출될 수 있었다. 한편 국회의장 선거 결과를 두고 GT계의 승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선거가 교황선출식 방식으로 독특하게 치러졌지만 정동영 의장측과 김근태 최고위원측의 대리전 양상도 보였기 때문이다.
정 의장측은 김 부의장을 지원하고 임 의원은 재야파인 김근태 측이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작년부터 돌고 있었다. 하지만 각 계파들은 한결같이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여당 의원들은 당에 헌신한 임 의원과 국회의장 감으로 손색이 없는 김 부의장 사이의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못박았다.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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