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안 주도한 박관용 의장 저의 미스터리
대통령 탄핵안 주도한 박관용 의장 저의 미스터리
  • 엄광석 
  • 입력 2004-11-15 09:00
  • 승인 2004.11.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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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청와대가 박관용 의장을 탄핵 강행 처리의 주역이라고 보는 부분에 대해서 짚어보자. 이 부분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한 인사의 증언을 인용한다. “청와대는 박관용 의장이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경위권을 발동하면서까지 탄핵안을 가결시켰는지에 대해서 지금도 미스터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탄핵안 통과라는 역사적 실패는 박관용 의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그러면서 청와대는 박 의장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탄핵안 통과 주도라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이틀 전 자신의 중재 노력 (김우식 비서실장을 시켜 대통령이 각 당 대표들을 만나 대화하도록 제의한 것)이 대통령의 거부로 좌절되자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둘째, 전날 남덕우씨 등 전직 총리들과 오찬을 함께 했는데, 이들이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을 듣고 힘을 얻었을 것이다.셋째, 확인할 수는 없지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탄핵안을 밀어붙인 것은 한나라당으로부터 모종의 딜이 있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단지 이런 주장이 추측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명예와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제기된 게 아니니 박 의장으로 볼 때는 오해만 받을 뿐이다.

탄핵안을 가결시킨 뒤 박 의장은 의장실로 돌아가 탄핵안에 대한 의장 결재를 하려고 하는데, 서류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기다리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한다.“결재를 마치고 집으로 간다고 나섰는데, 영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때 고건 총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 총리가 ‘서류는 언제 보내느냐’고 묻길래 ‘3시쯤 보낸다’고 얘기하고 ‘이제부터는 당신이 직무 대행이니 잘해주기를 기대한다. 단 하나만 부탁하자. 공권력이 살아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손자를 보면 마음이 놓일까 싶어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들렀습니다.

손자를 보고 10분쯤 웃으면서 마음을 달래다가 공관으로 갔습니다. 가서 김우식 비서실장에게 전화해 ‘대통령이 출타중이라는데 몇 시에 오느냐’고 물었고 5시쯤 온다기에 대통령이 안 계시는데 서류를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려 5시 이후에 보내도록 조치했습니다.”박 의장은 탄핵안 통과의 당위성과 국민들의 동요를 자제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는데, 방송에서 한마디도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집에 와서 서류 보낸 것을 확인한 뒤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마침 공관에 동아일보 기자와 SBS TV팀이 와있기에 발표를 했는데, 지금까지 국내 방송에는 한마디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SBS팀에는 풀로 해달라고 해서 KBS와 MBC에도 화면이 제공됐는데 안 나간 것입니다.오히려 닷새가 지나서 NHK 팀이 일본에서 막 바로 공관으로 날아와 회견하면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자기들에게까지 배려해준 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길래,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나를 찾아온 TV기자는 NHK가 최초요 라고 말하니까 일본 기자들이 놀랐습니다.”필자가 박관용 의장을 의사당 집무실에서 만난 건 4월 16일 오후 4시 반이었다. 16대 의장으로서 임기를 두 달여 남긴 시점이다.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마감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역사의 고비 때마다 몸을 던졌던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오해받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2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에서 노기(怒氣)가 떠날 줄 몰랐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느껴지는 긴장감도 팽팽했다.박 의장은 지금도 다수 의사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한 탄핵안 처리에 대해 소신을 갖고 정당성을 주장한다. 의회 쿠데타니, 의회 폭거니 하는 말에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경위권 발동이라는 무리한 수단을 써가며 탄핵안 처리를 주도한 것처럼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렇게 기록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나중에 헌재의 판결에서 절차상의 하자가 없었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이를 반긴 것도 그 때문이다.

“탄핵안을 처리한 것은 일생을 살며 큰 파고를 넘은 사건입니다. 그러나 의장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탄핵안 처리 자체가 비판을 받는다면 나도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역사 심판을 볼 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을 마다한 정치권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대통령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여·야가 다함께 비판받아야 하지요.의정 생활 36년을 돌이켜 볼 때 과거 기록들이라는 것이 모두 자기 위주로, 자기 합리화한 것으로 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제대로 된 역사 기록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은 기본적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역사 기록이 강자 위주로 된다고는 하지만, 잘못 기록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그는 다수결에 의한 절차를 따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신봉자이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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