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수 의견을 밝히는 것이 역사에 책임을 지는 태도라는 주장에 대해서 헌재가 이번 결정에서 소수 의견을 달지 않은 것은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한 국회의 입법 취지를 따른 것이다. 헌재법 34조 1항에 평의는 공개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다만 36조 3항에서 일부 심판에 대해 소수 의견을 공개할 수 있다고 예외를 인정했지만 탄핵 심판은 빠져 있다. 합의의 비밀은 대륙법계 국가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독일 연방 헌재에서 70년도에 소수 의견 공표를 인정했지만, 세계적 추세는 아니다. 역사적 판결이라는 이유로 소수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판결에 있어서 재판관 개인의 명예감을 충족시키거나 책임 추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고, 재판관이 보다 강한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재판에 임하여야 한다는 당위적 요청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탄핵 심판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성격이 매우 강한 사건이라 할 수 있으므로, 재판관들이 각자의 견해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및 향후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신뢰성 확보에 장애가 될 수 있다.예컨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형 선고 등 형사 처벌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판결에서도 법률이 합의의 공개를 허용하지 않는 사실심에서는 소수 의견의 존부에 관하여 밝히지 않았던 전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 의견의 비공개는 우리 법조 실무의 확고한 업무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다고 사료된다.
소수 의견의 공개를 주장하는 입장은, 역사적 판결이라는 점 외에도 소수자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기도 한다.민주주의 원칙 아래에서 소수자 보호라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의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수자의 의견 개진이 억압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청과 다수결에 의해서도 일정한 소수자의 지위 예컨대 기본적 인권은 침해할 수 없다는 요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평의 과정에서 재판관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충실히 보장되고 있음은 우리 헌법재판소의 이념과 그간의 평의 방식에 비추어 의문의 여지가 없고, 탄핵 심판 사건에 있어서는 재판관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져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소수자의 의견 개진과 충실한 토론에 관하여는 크게 우려할 것이 없다.
또, 법정 의견에 반대하는 재판관의 수가 소수라고 하더라도, 재판관이 심판 사건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야 하는 것이므로, 소수 의견의 공표를 소수자 보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재판의 전 과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기여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알 권리의 관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평의 과정의 투명성으로 각 재판관들이 공정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충실히 심리가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는 점인데, 평의 과정의 공개는 법관의 독립이라는 다른 헌법적 가치와 충돌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양쪽 가치의 비교형량 결과 평의 과정의 비공개는 각 국에서 예외 없이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알 권리 및 재판의 공정성의 측면에서 볼 때, 소수 의견의 공표를 통한 평의 결과의 공개는 평의 과정의 공개보다는 그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에 대한 입법자의 결단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2. 판결문이 다수의 논리를 전개하고 그에 따른 결론을 내리는 게 상식일 텐데, 이번 헌재의 결정은 앞에서는 대통령의 위헌을 얘기해 놓고 뒤에서 탄핵의 사유가 안 된다고 한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느냐 하는 견해에 대해서 이번 탄핵 심판 사건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었지만, 그 심판의 논리적 구조는 형사 재판에서의 선고형을 정하는 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형사 재판에서는 먼저 공소 제기된 위법한 행위가 인정되는지를 먼저 결정하고, 위법한 행위가 인정되면, 나아가 그 행위에 합당한 형의 종류와 형량을 정하게 된다.징계 절차에서도 먼저 위법한 혐의 사실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고, 나아가 적정한 제재의 종류와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공무원징계령, 법관징계법 참조)이 사건 탄핵 심판 절차에서도 먼저 소추 사실에 포함된 대통령의 행위가 위헌·위법한지를 먼저 결정하고, 위헌·위법하다고 인정된 행위에 대하여 어떠한 제재를 선택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므로 그 판단 과정에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파면 외에도 정직, 감봉 등과 같은 중간적 제재 조치가 인정되는 일반의 징계 절차와는 달리 탄핵 심판 절차에서는 위헌·위법한 행위에 대한 제재 조치로서 파면만을 규정하고 있어, 헌법재판소는 파면이거나 부제재(면책)라는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파면이라는 극단적인 제재 수단은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앞서 인정한 위헌·위법 행위는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이를 형사 절차에서 형량을 정하는 절차에 비유하자면, 형량, 즉 제재 수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장 무거운 형량, 즉 파면을 과할 만한 구체적 사정이 인정되지 않아 위법성의 정도에 따라 다음 단계의 조치를 선택하였는데 그 다음 단계로는 부제재(면책)밖에 없었다는 것과 같은 결과다.
만일, 헌법재판소가 소추된 행위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하지 아니한 채 중대한 법 위반이 없어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만 판단하였다면, 이러한 판단방식이야말로 논리적 비약을 범한 것으로, 법리에 자신이 없거나 정치적 고려가 지나친 불합리한 결정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은 법률가에게는 일상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법적 판단 과정이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이와 덧붙여 일부 언론에서는 결정 이유 중 앞에서는 위법이라고 인정하고서는 뒤에서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모순이라는 재야 법조인의 지적이 보도되었다고 전해들은 바 있으나, 앞서 위법이라고 한 것은 단순한 위법성이 인정된 것이고 뒤에서 위법이 아니라는 것은 중대한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므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3. 소추위가 요구한 증인 출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증거 제출도 검찰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의혹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소환한 증인(신동인)은 심판 기일 직전까지도 출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재판 당일 돌연 신병을 이유로 출석이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하여 왔었다. 헌법재판소로서는 증인이 실제 건강상 이유로 불출석하는 것인지가 확인되지 아니한 상태여서 구인장을 발부하여 검찰 등 집행기관을 통한 강제 출석을 시도하였으나, 담당 의사의 소견이 증인의 건강 상태가 출석함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피 청구인이 증거에 동의한다면 재판 기록상 나타난 증인의 진술에 의하여 입증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증거 결정을 취소한 것이지 검찰의 의견에 의하여 증거 결정이 좌우된 것은 아니다.
만일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고 하여 심판 기일을 연기하여 탄핵 심판 절차가 1, 2개월 지연되었다면 과연 그러한 조치가 적절한 것이었을지는 의문이다.검찰에 대한 기록인증등본 송부 촉탁은 헌법재판소법 제 32조 단서가 원본만의 송부 촉탁을 금하고 수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등본의 송부 촉탁은 금하고 있지 않다는 해석에 기초한 것이다.그러나 해당 기록의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사 기록의 내용에 따라서는 수사 기록의 공개로 수사 기밀의 누설, 관련자의 명예훼손 등 다른 정당한 법익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침해할 위험성이 없지 않았던 상황에서, 검찰이 기록인증등본의 송부 촉탁에 불응함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위와 같은 상황 및 재판의 신속을 고려하여 어쩔 수 없이 증거 결정을 취소한 것이다.
4. 헌재에서는 스스로 ‘규범적 판단’만 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일반 여론은 정치적 판단으로 보는 시각이 높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번 헌재의 결정은 규범적 판단으로 일관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법 위반의 중대성 판단 부분을 보고 정치적 판단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지만 ‘중대성’이라는 요건의 설정은 헌법 해석에 의해 충분히 수용 가능한 범위에 속하는 것이고, ‘중대성’이 있는지에 관한 판단 역시, 법률상 자주 등장하는 ‘상당성’, ‘적정성’, ‘정당성’과 같은 불확정 가치 개념에 관한 판단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그 해석과 판단은 규범적 판단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불확정 개념은 사회 일반인의 정의감, 법 의식 등이 고려되어야 하고 그 범위에서 정치적 판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와 같은 판단 과정은 정의 실현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으로서, 시시각각 변동하는 여론과 정치 정세의 반영과는 구별되는 것이다.이상이 헌재의 답변이다.이렇게 질문의 핵심을 비켜가지 않으면서 또박또박 조리 있게 답변한 그는 법관들에게서 보이는 치밀함과 명석함이 돋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법리에만 매달린 그의 논리가, 헌재의 공식(?) 답변이, 100% 수긍되지는 않는다고 말하자, 그는 다소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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