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여도, 저리하여도 옳지 아니하다-3

남도 사투리를 섞어 넋두리처럼 창을 부르는 처녀는 어느 새 장고 위에 왕방울 만한 눈물을 뚝, 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차법사는 모든 감각의 문을 열어젖혔다. 우주에 가득 찬 세상의 모든 영기(靈氣)의 진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차법사의 귀에는 동참자들의 작은 손가락 움직임도 아름드리 거목이 쓰러지는 듯한 굉음을 울렸다. 밀폐된 물탱크에 퍼지는 파동처럼 모든 오감이 하나로 통합되어 한 가지 초감각으로 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는 점점 최고의 기(氣) 집중상태에 도달하고 있었다. 동참자들의 가는 숨소리조차 깊은 동굴 속 천장의 낙수 한 방울의 파문처럼 그의 온몸에 공명되었다. 초점을 잃은 차법사의 눈동자는 허공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다.
“번쩍!”
강열한 섬광이 조명탄처럼 폭발했다. 무대 위의 검은 장막이 걷히듯, 순간 앞이 훤해졌다. 차법사의 영안(靈眼)이 열린 것이다.
하늘하늘 흔들리던 촛불이 둔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불꽃은 밀랍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느리게 움직이던 벽시계의 초침도 멈췄다. 동참자들은 방석에 가부좌한 채 혹은 기도하는 자세로 나한이 되었다.
대학로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들은 신호 대기에 걸린 듯 정지해있고, 장터처럼 붐비던 주말의 대학로 인파들은 거리의 청동 군상으로 변해 있었다. 보름달빛은 고드름처럼 얼어 창창했다.
선원에 하나 둘 낯선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가였다. 이승과 저승의 문이 열리자 어디선가 영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차법사 옆에는 시중을 드는 신장 영들이 버티고 있었다. 제례를 담당하는 영가가 제단 명부의 영가들을 제단 앞으로 안내했다.
영단 밖에는 처참한 몰골을 한 영가들이 아우성쳤다. 지옥이 있다면 이 장면이 지옥이었다. 차법사를 본 저승의 영가들은 자신들도 구명시식을 통해 후손들에게 알릴 것이 있다며 앞 다투어 구명시식을 올리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사천왕상을 연상시키는 건장한 신장 영들이 무서운 얼굴로 살기를 뿜으며 순식간에 질서를 잡았다.
가무단의 예악에 흥이 난 영가 몇은 가운데로 나와 몸짓을 같이 하며 춤꾼과 함께 춤사위를 즐겼다. 오직 차법사의 눈에만 보이는 광경이었다. 다만 촛불이 간간이 흔들릴 뿐이었다.
무신론(無神論) 영가의 등장-1
차법사는 초혼한 영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국혼을 불어넣는 100일간의 구명시식 중간에 올리는 구명시식이어서 그런지 국가적인 사건에 얽힌 영가들이 많았다. 영가들의 마음이 시차 없이 그대로 차법사에게 전달되었다.
점검을 마친 차법사의 유체가 다시 몸속으로 스르륵 깃들었다. 차법사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순간 촛불이 출렁거렸다.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고, 동참자들의 윤곽도 움직댔다. 차법사의 눈에 영계와 육계가 동시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육계와 영계를 찰나에 넘나드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이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이 과정에 걸린 시간은 불과 수백분의 1초에 불과했다. 그는 이제 머리로 판단하지 않고, 눈으로 보지 않고, 촉감으로 느끼지 않고, 오직 알 수 없는 직감의 파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었다.
차법사는 제주의 명단 중 한명을 호명했다.
“조박사님.”
“네. 접니다.”
반 대머리의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대기업 의학회사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자생물학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이전 해 퇴직한 상태였다.
영단 앞에 한 영가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남루한 군복차림의 사내는 6·25때 전사한 빨치산임을 추측케 했다. 빨치산 영가는 몸을 낮추어 수색병처럼 선원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그는 여전히 전쟁 중이었다.
차법사가 차분하게 영가를 불렀다.
‘영가시여, 어서 오시오.’
‘넌 누구냐? 여긴 어디냐? 저 자들은 누구냐?’
빨치산 영가는 차법사를 향해 심문하듯 다그쳤다. 염력으로 나누는 대화는 산 사람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전쟁은 60년 전에 끝났소. 남북은 휴전하고, 지리산 남부군들은 모두 평정되었소.’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지금 나를 우롱하는 거냐? 그 말을 믿으라고?’
분노에 찬 영가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당신은 산 몸이 아니오. 생각 안 나시오? 군경과 전투 중에 총탄 맞은 일을.’
불현듯 그때가 떠오르는 듯 영가는 복부를 움켜잡았다. 갑자기 영가의 복부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영가는 옷을 찢어 허둥지둥 지혈을 했다.
‘부상당했을 뿐이야. 나는 죽지 않았어. 우리 동지들이 나를 구하러 올 거야.’
‘그때 당신은 죽었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말라우. 이렇게 멀쩡한 나는 뭐냐!’
참으로 기가 막혔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자기 보고 귀신이 아니라니! 하지만 죽은 자가 죽지 않았다고 우기는 일은 흔한 장면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최후나 장례식을 상기시켜 주기도 하지만, 이 빨치산 영가처럼 살아생전 영혼의 세계를 부정하는 생각을 가진 영가들은 사후를 이해시키데 애를 먹는다.
‘아가리 닥치라우! 그럼 지금 나는 뭐야. 이렇게 고통이 생생한데. 인민을 현혹하는 무당짓거리는 걷어 치라우!’
‘당신의 아들 영우가 와 있소.’
아들이란 말에 빨치산 영가의 태도가 돌변했다.
‘영우가?’
차법사는 영단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머리가 반도 안 남은 늙다리 중년부부가 영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가 사이의 대화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조박사에겐 지루한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조박사 눈에는 그저 빈 허공뿐이었다. 하지만 영가에게는 조박사의 생각이 똑똑히 들려왔다.
‘영가가 어디 있다고 그러지? 마누라가 오자고 해서 왔지만, 이건 사이비야.’
조박사를 바라보는 영가는 믿기지 않았다. 세 살 때 헤어진 어린애가 저런 늙은이가 되어 있다니. 영가와 대화가 지속되었다.
‘영가시여. 저 남자를 잘 보시오. 당신이 구천을 헤매고 있는 사이, 아이는 저렇게 늙어버렸소.’
순간 조박사의 모습이 진흙처럼 일그러지더니 변하기 시작했다. 중년, 청년, 소년, 그리고 3살 아이로. 영가는 털썩 힘없이 주저앉았다. 영가는 손을 뻗어 조박사를 어루만졌다.
‘영우야, 니가 영우란 말인가. 이 자석,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하지만 홀로그램처럼 빈 허공을 휘저을 뿐 영우는 만져지지 않았다. 산 자가 영혼을 만질 수 없듯, 영가도 산 자를 마음대로 만질 수 없었다. 영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완강하던 영가의 태도는 완연히 수그러져 있었다.
‘이보시오, 법사. 내가 죽었으면서도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토록 까맣게 모를 수 있단 말이오?’
‘살아 있을 때 생각이 그대로 가는 겁니다. 생전에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죽어서도 그대로였던 거지요.’
영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제사상을 발로 걷어차고, 마을 성황당, 사찰을 불태운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니……. 후회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영가시여. 어머니, 그러니까 당신의 부인은 작년에 유명을 달리했소. 조박사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가 정년퇴직을 했소. 내일이 부인의 기일이니 가시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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