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미륵은 하나인가-3
보는 자의 마음에 따라 미륵이 하나이기도 혹은 수없이 많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결국 차법사는 천문 도수를 두고 설전을 벌인 3사람들 모두 분별심에 사로잡혀 있음을 에둘러 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공방의 열기가 성성한 세 사람은 차법사의 의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미륵에 대한 갈증이 여전한 조기자는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분별심이라, 그럴싸하네. 근데 결국은 누가 미륵이란 말씀이오?”
“부처란 수천 년 전 인도의 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견성한 사람이라면 모두 부처라고 하지.”
조기자가 몸을 앞으로 당기며 물었다.
“그럼 미륵도 한 사람이 아니란 뜻이요?”
“대개들 미래에 올 부처를 미륵이라고들 생각하는데, 시간이 없으면 과거, 현재도 없으니 미래도 없지. 현재, 과거, 미래 삼세가 없는 눈으로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부처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예비 부처인 것이고. 다만 꽃피는 시기만 다른 게 아닐까? 대답이 잘 되었나 모르겠네만…. 아무튼 난 이 사람 말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사람 말 들으면 저 말이 옳은 것 같은데…….”
강력한 지침을 원하던 일행은 맥이 빠진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이 무슨 황희정승도 아니고 이 말 저 말 다 맞는다고 그라요. 정말 거시기하네. 영혼과 대화하고, 산 사람 생각도 훤히 읽는 분이 그 정도도 모르는 게요? 2012년에 병겁이 휩쓸어 인류가 종말에 처한다는데?”
차법사가 지나가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해에 선거가 있을라나 몰라…….”
너무 순식간에 스치는 작은 목소리였기에 조기자가 캐물었다.
“시방, 뭐라셨소? 뭐라 그란 것 같은데.”
차법사는 재빨리 화제를 되돌렸다.
“미륵이란 말의 유래도 그렇더라구요. 부처의 제자가 부처에게 ‘부처님은 미래에 어떻게 오십니까’ 묻자, 부처는 질문자의 대중속의 평범한 수행자 청년을 가리키며 ‘미륵으로 온다’고 했어요. 이 말은 특정한 성인이 우상이 되는 시대에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시대가 왔을 때를 말하는 게아닐까요. 다시 말해 미래에 미륵이 오는 게 아니라, 모두가 미륵 부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미래’가 온다는 뜻이 아닐까합니다.”
조기자는 못을 박으려했다.
“그럼 결론적으론 부처가 하나가 아니니 미륵도 하나가 아니다?”
“성인은 특정시대, 특정 지역, 특정 인물이 아니라 늘상 우리 주위에 있는데 혹시 우리가 제대로 못 알아보는 게 아닐까?”
차법사는 자기 주장을 세우지 않고 각자의 판단에 맡겨 버렸다. 스스로 깨면 저절로 훤히 보이는 것을, 괜스레 강요해서 지식을 주입한들 자칫 자신의 깨달음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천태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미래의 미륵을 주장하던 용화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차법사는 던지듯 이야기했다.
“사람인 자가 나를 사람이라고 하면 나는 사람이요, 사람이 아닌 자가 나를 사람이라고 하면 나는 사람이 아니죠. 부처의 눈에는 온통 부처만 보이고 중생의 눈에는 온통 중생만 보이는 거지요.”
한 가지 물에도 네 개의 눈이 있다(一水四見)-1
차법사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나저나 여러분들은 영혼이 객관적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시죠?”
“당연하죠. 그러니 형님이 구명시식으로 판결을 내리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현상계야 눈속임이 있을 수 있지만, 영혼의 세계엔 속임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들 하죠. 사실 구명시식에서 영가들이 숨겨진 현실을 종종 증언하니까요. 허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아니라구요?”
좌중은 깜짝 놀랐다. 구명시식에 속임수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구명시식을 올리다 보면 진실이 무엇인가, 아니 어디까지인가, 자주 실감하게 됩니다. 한 가지 물에도 네 개의 눈이 있다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 들어보셨나 몰라요.”
“일수사견? 난 무식해서 금시초문인디.”
“물고기는 물을 보고 집이라 생각하고, 인간은 갈증을 달래는 음료로, 천상에서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지옥에서는 피고름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동서남북은 자기가 서 있는 지점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라면 변하는 것도 진리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천문해석도 모두 일수사견이라 말이지라?”
차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기자가 미간을 찡그리며 꿀떡 침을 삼켰다.
“좋소. 일수사견. 형님 말이 백 번 옳다고 칩시다. 그럼 형님의 일견은 뭐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지 마시고.”
조기자는 집요했다. 차법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겁게 입을 뗐다.
“제가 증산 선생에게 궁금한 점은 좀 다릅니다.”
“이제 본론이 나오는구먼.”
조기자가 추임새를 넣었다.
“천지풍우를 다스리는 절대능력을 가진 분이 왜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냐는 겁니다.”
“…….”
“종교 조직도, 경전도, 법통을 이을 제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 있는 문제제기였다.
“굳이 무지한 민초들 사이에서 매 맞고, 아프고, 죽고 했느냐는 겁니다. 너무도 인간적으로 최후를 마치셨습니다. 정녕 그 분이 짧은 생을 이승에 살면서 글자 한라까지 남기지 않으려 했는데, 도대체 후손들에게 남기려 했던게 뭐였을까 하는 점이 저는 가장 궁금합니다.”
지천태가 자못 심각하게 손으로 턱을 고이며 잠시 상념에 들었다.
“음, 그걸 놓쳤네. 만약 용화선생 말씀대로 증산이 절대자였다면 기적을 바탕으로 엄청난 종교조직을 거느릴 만도 했을 텐데…….”
한참을 지켜만 보던 용화가 말문을 열었다.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상제님께서 병겁(病劫)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천지공사를 보시기 위해서지요.”
차법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요? 그럼 왜 친필 유언이라는 천문에는 개벽, 후천, 병겁, 미륵 출세같은 이런 직접 언급이 빠져 있을까요? 그런 게 중요하다면 반드시 언급을 했을 터인데요?”
조기자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사람들이 갈망하는 게 그건데, 정작 유훈에는 그런 게 빠져 있네.”
뭔가 궁리하던 지천태가 나름대로의 답을 던졌다.
“결국 종교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아닐까요?”
조기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종교, 욕망이라구요?”
“종교 탄생의 기원을 공부하다 보면 재미난 사실이 많습니다. 당대에는 성인들은 주류인 종교에 대해 이단과 사이비 취급을 당했지요. 당대의 당신들은 그런 집단지성의 일종인 종교조직과는 상반된 입장이었거든요. 종교가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속박한다고 저항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면한 뒤에는 성인으로 추앙됐죠. 그리곤 당신은 속박했던 종교와 같은 구조를 띤 종교의 교주로 추앙받게 되지요.”
“거참 기이하고마.”
“거대 종단의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는 공통적인 코드가 있습니다.”
조 기자의 눈은 먹이를 찾는 들짐승 같았다.
“그런 게 있습니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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