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장편소설 제 36 회
김영수 장편소설 제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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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5-16 16:43
  • 승인 2011.05.16 16:43
  • 호수 889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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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일수사견(一水四見)
도수(度數)가 획수(劃數)일까-3

“성장공사도의 위패도 그렇습니다. 천지사풍이제원이라 쓰인 비석 또한 귀신들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법사님의 구명시식과 일치합니다. 구명시식이란 게 바로 귀신들을 제도하는 해원공사잖아요. 21년간 최초 불교 전래지에서 21년간 해원공사를 보신 겁니다. 단주수명서가 인류의 원한을 푸는 해원상생을 골자로 하는 증산 선생의 유언이었다면, 당연히 출세할 미륵은 원한을 달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거기다 후천의 세계 단일종교는 불교 외형이라고 했으니 더욱 부합하는 것입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용화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천태는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단주수명서도 펼쳐보였다.

“생각난 김에 단주수명서(丹朱受命書)의 마지막 구절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병(天屛)사(巳)정해 4월 8일 병오(丁亥 四月 八日 丙午)』
이 해석은 ‘하늘의 병풍으로 가려진 이 단주수명서는 천문에 의해 걷히는데 정해년 4월 8일생에게 전달된다.’

“…….”
“제가 알기로 법사님 생일이 47년 정해년 4월 8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정해년 4월 8일생인 법사님 앞에서 천문이 전달되고 드러났다고 봅니다. 증산의 예언이 맞은 거지요.”

조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하려 했다.

“그러니까 지금 지도인 말씀인즉,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법사님께서 단주수명서를 받는다’ 그런 뜻 아닙니까?”
“그렇게 되는 셈이네요.”
“거참 신기하네. 증산 선생이 용하긴 용하네. 105년 뒤에 천문이 전달되는 날을 이미 점지하시다니. 아참, 천지사풍이제원의 획수도 106이 아니라 105년 105도수가 맞는 거 아닌가? 천문이 쓰인 지 105년 만인 2009년에 개봉을 하니 딱 105년인데…….”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용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막아섰다.

“난생 처음 듣는 풀이군요. 천문이 그렇게 식은 죽 먹기일 리가 있나요. 하늘의 병풍을 치고 소만부는 때가 되어야만 벗겨지도록 설계되어 있지요. 수십 년간 연구해도 다 못 푼 것을…….”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럼 용화 선생께선 누가 미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사님을 전생에 차천자라고 하셨잖아요?”

용화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몇 번 잔기침을 하였다. 긴 해설을 예고하는 그만의 습관이었다.

“법사님께서 9월부터 시작되는 중국대륙의 분열과 동아시아의 변화를 말씀하시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차법사님은 분명 전생에 차천자셨으니까요.”
“용화 선생께선 전생도 보실 줄 아십니까?”

조기자가 왕성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도수가 그것을 말하지요.”
“아, 도수…….”

용화는 심드렁해하는 조기자 반응에 아랑곳 않고 도수 풀이를 했다.

“얼마 전 법사님 책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었습니다. 즉, 법사님 전생의 이름은 '차경석(車京石)’이고, 현재는 ‘차진길(車辰吉)’인데, 한자획수를 비교해보니 ‘車(7), 京(8), 石(5)’은 모두 20수리(數理)이고, ‘車(7), 辰(7),吉(6)’도 합하여 20획이 되었습니다.”
“정말 두 이름이 모두 20획이네.”

신기한 듯 지천태가 획수를 세었다.

“그런데 획수를 합리적으로 계산하면 20수리가 21수리가 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차(車)는 7획이지만 절문(節文)으로 파자하면 8획이 되지요.”
“…….”
“제가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이름자인 ‘京(8), 石(5)’과 ‘辰(7), 吉(6)’이 합하여 각각 13수리인데, 13자는 곧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가 13자이어서, 여기에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8자를 더한 21자와 같은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
“21수리가 중요한 이유는 천문인 시천주(侍天呪)의 주문이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21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건 곧 상제님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뜻입니다. 상제께서는 현무경의 24개 그림을 모두 시천주(侍天呪) 21자의 법문(法文)으로 문리(文理)가 접속하고 혈맥(血脈)이 관통하도록 설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글자 숫자, 획수까지 어떻게 일일이 맞출 생각을 했을까…….”

조기자는 그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럴수록 용화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그리고 ‘경석(京石)’의 뜻은 ‘아주 크고 좋은 돌[별]’을 뜻하고, ‘진길(辰吉)’은 ‘아름다운 행운의 별[돌]’이므로, 역시 전생과 현생의 이름자의 성과 획수와 뜻이 모두 일치해서 신비했습니다.”
“…….”
“차경석의 행적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단주는 대동세계인 대중화국을 만들려 했고, 상제님께서 단주가 대시국(大時國)으로 해원한다 하셨는데, 보천교를 세운 차경석은 시국(時國)이라는 국호를 내걸고 경남 황석산에서 나라를 세우려 했습니다. 딱히 이름은 붙이지 않았지만 법사님께선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 연방 혹은 연합국가를 천명하셨습니다. 해원의 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거지요.”
“듣고 보니 묘하게 일맥상통하네.”

경신년(庚申年) 주인공은 누구-1

천문을 해석하는 용화의 눈빛은 샛별처럼 빛났다.
“저는 특히 차혁일 총경님과 차법사님의 관계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차총경과 차법사는 부자지간 아닙니까?”

조기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차총경은 증산 상제님과 똑같은 연령인 39세에 돌아가셨고, 특히 돌아가신 날짜도 양력 8월 9일과 음력 6월 24일이 같아 상제님 화천일과 일치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 아닐 수 없지요.”

조기자와 지천태는 도수의 기묘한 일치에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그럴수록 용화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물론 증조부이신 차치구 동학접주를 비롯하여 법사님 가계인물들이 모두 상제님과 인연이 깊기는 하지만요.”
“차혁일 총경님의 전생(前生)은 누굽니까?”
“최근 차혁일 총경님의 전생이 누구일까 궁금해 하다가 책을 다시 살펴보니, 차경석의 부친이 차치구 동학접주인 것을 알고 차총경의 전생과 현생의 관계에 놀랐습니다. 차치구 동학접주께서는 전생에서는 동학혁명에 참전하여 붙잡혀 공주 우금치에서 화형당하셨는데, 이번에는 공주에서 물에 빠져 돌아가신 것을 보고 그 인과관계가 신비했지요.”
“차치구의 후신을 차총경이라고 보시는 군요. 전생까지 도수로 점지하는 건가요?”
“아주 오래전에 《빨치산 토벌대장 차혁일 수기》라는 책을 읽고 그 책의 저자를 만나 증산사상을 포교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지요. 그래서 이리저리 수소문했더니 법사님은 당시 미국 가서 언제 오신지 모른다고 해서 까마득히 잊고, 저는 오로지 도수공부에만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는 최근에 이렇게 만나게 되었지요. 천문에서 중요한 것은 도수 곳곳에 경신년이 들어 있다는 겁니다.”
“혹시 현세의 미륵이 경신년생입니까?”

조기자의 넘겨짚는 추측에 흐름이 끊기자 용화는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몇 번 헛기침을 하고 해설을 이었다.

“조사해보니 1920년 경신년(庚申年)생 중엔 큰 인물이 많이 나왔지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 굴지의 기업인, 윤총재 같은 종교인, 그 중에 나라를 구한 차총경도 있습니다. 제 스승님도 경신년 출생이셨지요.”

스승 이야기가 나오자 용화는 잠시 눈을 감고 감회에 젖었다.

“저희 도반들은 스승님을 출세한 미륵으로 믿었습니다. 허나 너무 허망하게 가시니 도반들은 뿔뿔이 흩어졌지요. 저도 한때 방황하다가 다시 천문공부를 하고는 경신년은 1920년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세상이 훤해지더군요.”
“현무경에도 경신년이 몇 번 나오고 증산 유서 도수 풀이에도 나오는 것 같던데......”
“물론 성장공사도에도 있지만 상제님께서 평소에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책에 보면,
칠월칠석삼오야 동지한식백오여
(七月七夕三五夜 冬至寒食百五除)
삼인동행 칠십리 오로봉전 이십일
(三人同行七十里 五老峰前二十一)
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 숨겨진 도수를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도수란 말에 조기자와 지천태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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