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강증산의 유언

북두칠성의 기운-2
보이차 때문이었을까. 용화의 기분은 약간 들떠 있었다.
“여러 모로 오늘은 뜻 깊은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음력 칠월칠석이지요. 북두칠성의 기운이 내려오는 날이지요. 이런 날 간도 출정식을 했으니 북두칠성의 가호 아래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신기한 건 제가 법사님 처음 뵌 날도 양력 7월 7일이라는 겁니다. 양력 칠월칠석에 천문을 처음 보여드렸고, 음력 칠월칠석에 천문을 해설하게 되었으니 이는 알게 모르게 천지도수에 이끌려 하는 일일 겁니다.”
차법사가 거들었다.
“북두칠성은 우리 백두민족과 인연이 깊죠. 특히 자미성은 북두칠성 동북쪽에 위치한 가장 강력한 기운의 별인데, 우리 백두민족이 자미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자미성을 중국 천자의 별이라고 하지만, 실은 우리가 그 기운을 가장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북두칠성의 신령들을 모시는 칠성각이 있고, 심지어 사찰에도 토착신으로서 가장 높은 곳에 칠성각이 모셔져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외래종교와 문화가 융합되었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근본신앙입니다”
용화는 감격스러운 듯 오늘의 감회를 털어놓았다.
“천문을 붙여놓고 제를 올리는 구명시식을 보니 감개무량했습니다. 상제님 말씀인 ‘모사재천 성사재인(謀事在天 成事在人)’ 이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들어가면 일이 크게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법사님 말씀대로 간도와 연해주, 내몽골 지역이 우리나라 땅으로 되돌아온다면,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의 시에서 말한 것처럼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의 영광스런 시대가 재현될 것입니다. 아니 그 당시보다 더욱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여 세계 1등국의 천손민족 국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길이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일부이기도 하구요. 참으로 법사님의 노고와 선견지명에 감탄과 경의를 표합니다.”
훈훈한 덕담이 오갔다. 용화는 가방 꾸러미에서 비단으로 싼 뭉치를 소중하게 꺼냈다. 제단에 붙어 있었던 다섯 장의 천문(天文) 복사본이었다. 조기자와 지천태는 숨을 죽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기자가 먼저 감상을 말했다.
“혁필(革筆)이로군요?”
혁필이란 오색물감으로 한자에 사군자나 꽃, 곤충의 그림을 더한 그림이었다. 사군자에 비해 보다 서민적인 조선말기의 그림 기법이었다.
용화는 천문이 적힌 종이의 귀퉁이가 접히지 않게 소중하게 펼쳤다.
지천태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보통 혁필은 오색이지만 여긴 색이 없네요. 검은 먹만을 사용했군요. 그래서 검을 ‘현(玄)’자 현무경인가 보죠?”
용화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성물(聖物)을 대하듯 매우 경건한 자세였다.
“이것이 천문입니다. 그림 석 점은 현무경(玄武經)이라 합니다. 고구려 벽화에도 그려져 있는 동이족 고유의 우주관이 사신도(四神圖)인데, 현무란 좌청룡(靑龍), 우백호(白虎), 남주작(朱雀), 북현무(玄武)에서 북방의 ‘현무’를 이릅니다. 나침반을 볼 때 북방을 중심으로 하듯 천지공사의 중심 되는 경(經)이란 뜻이지요. 상제님이 남기신 현무경이 삼십여 점 있지만 이 석장과 두 장의 유훈이 가장 핵심 되는 장입니다. 과거, 현재 뿐 아니라 미래의 천지공사 도수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일종의 핵심 요약본이란 거죠?”
조기자의 궁금증에 아랑곳 않고 용화는 설명을 이었다.
“지난번에 제가 법사님께 드린 큰 그림 3장은 원본은 아니지만, 상제께서 직접 그리신 것을 제가 천신만고 끝에 추적하여 복사한 자료입니다. 그림은 본래 이름이 없지만, 성장공사도, 예장공사도, 신장공사도라 붙였습니다. 천간지지(天干地支)의 도수가 성경신(誠敬信) 세 글자 그림에 들어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혁필에는 경(敬)자는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지천태가 예리하게 지적했다.
“잘 보셨습니다. 경은 예(禮)와 같으므로 경 대신 예로 바꾸시어, 천지공사의 아주 중요한 도수를 음양도참법으로 그림에 설계하신 것입니다. 본래 다른 현무경과 같이 있어야 하지만, 그림 원도(原圖)가 커서 상제께서 현무경에는 ‘천지 성경신(天地 誠敬信)’이란 글씨만 쓰시고 그림은 부록으로 남기신 것입니다. 그림에는 천지공사의 아주 핵심적인 기밀이 들어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법사님과 아주 중요한 도담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반드시 오리라 기다리고 있습니다. 칠월칠석 오늘이 그 날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과 달리 분위기는 점점 진지하게 변하고 있었다.
“증산은 동학의 인물 중 한 분 아닙니까? 동학의 정수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 설파하지 않았나요?”
조기자의 질문에 용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보통 증산 상제를 동학의 한 지류라고 아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정말 잘못 알고 계시는 거지요. 증산은 절대 하나님, 즉 상제님이십니다.”
세 사람은 말없이 눈만 끔뻑였다. 지천태가 차를 따르며 의심을 드러냈다.
“하느님이라고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도 하지만, 하느님이 사람으로 직접 왔다는 말씀인가요?”
용화는 단호했다.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것은 해와 달, 별과 같은 우주 천지의 운행질서를 개조하여 바꾼다는 뜻입니다. 몇 가지 예언이나 이적을 행한 인물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요.”
용화는 증산의 이적 몇 가지를 줄줄 늘어놓았다.
1908년 겨울 어느 날, 증산의 약방에 종도들이 모여 있을 때다. 증산은 이른 아침에 해가 앞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는 것을 보고는 종도들에게 말했다.
“이제 계절이 바뀌는 난국이 도래하였다. 이를 제도하는데 해를 멈추는 권능을 갖지 못한다면 어찌 세태를 안정시킬 뜻을 품겠느냐. 내 이제 시험하여 보겠노라.”
증산은 긴 담뱃대를 물에 축여서 연달아 세 대를 피웠다.
“와-”
여기저기서 종도들이 탄성이 터졌다. 떠오르던 해가 산머리를 솟지 못하고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증산은 웃으며 담뱃대를 마당에 던졌다. 그제야 멈췄던 해가 움직이며 잃었던 시간까지 훌쩍 산머리를 넘어 달아났다.
한번은 증산이 청도원(淸道院)에서 동곡으로 돌아와 있을 때다. 종도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풍·운·우·로·상·설·뇌·전(風雲雨露霜雪雷電)을 이루기는 쉬우나 오직 눈이 내린 뒤에 비를 내리고, 비를 내린 뒤에 서리를 오게 하기는 천지의 조화로써도 어려운 법이다.”
종도들은 눈을 끔뻑이며 증산을 바라보았다.
“돌아가거든 오늘 밤 문을 열고 잘들 살펴보도록 해라. 내가 오늘밤에 이와 같이 행할 것이다.”
그리고는 먹으로 글을 써서 불살랐다. 과연 그날 밤 눈이 내린 뒤에 번개가 치며 비가 오고, 비가 개이자 서리가 내리는 기이한 일기가 연속되었다.
한번은 증산이 종도인 김형렬의 집에 머물 때다.
“강감찬은 벼락 칼을 잇느라 욕보는구나. 어디 시험하여 보리라.”
증산이 좌우 손으로 좌우 무릎을 번갈아 쳤다. 갑자기 제비봉(帝妃峰)에서 번개가 일더니 수리개봉(水利開峰)에 떨어지고 또 수리개봉에서 번개가 일어나 제비봉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흥이 난 증산은 ‘좋다, 좋다’를 연발했다.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 된 후, ‘그만하면 쓰겠다’ 하고 좌우 손을 멈추니 신기하게도 번개도 따라 그쳤다.
이튿날 종도들이 김형렬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진짜인지 제령봉과 수리개봉에 올라가서 살펴보았다. 두 눈을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 있었다. 번개가 떨어진 곳곳에 초목들이 껍질이 벗겨진 채로 검게 그을려 타 재가 되어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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