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명기 편 | 제 28 회
■ 일본 명기 편 | 제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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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5-12 09:00
  • 승인 2006.05.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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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근은 괴한들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좋게 말할 때 여자를 놓아줘. 당장!”괴한은 가소로운 듯 대근을 힐끗 째려보더니 말했다.“어쭈구리,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까불어. 뒈지고 싶냐 짜샤!.”괴한이 주먹을 불끈 쥐고 대근에게 다가섰다. 대근은 물러서기는커녕 뱃심 좋게 맞받았다.“네 놈들이야말로 뒈지기 전에 썩 꺼져. 알겠나.”이때 릴리가 대근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잠깐만요 대근씨. 이 자들이 노리는 건 필시 돈일 거예요. 가진 거 몽땅 다 줘버리고 얼른 여길 떠요.” “돈? 내가 빚진 것도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놈들한테 돈을 왜 줘.”대근이 태평스럽게 대꾸하자, 릴리는 속이 타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이 자들은 야쿠자들이 분명해요. 신경 건드려봤자 좋을 것 하나도 없어요. 얼른요 대근씨.”

“이것봐 릴리. 야쿠자든 양아치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냐. 하지만 난 저런 불한당 같은 자는 꼭 응징을 해야 속이 풀리거든.”그러자 맨 뒤에 서 있던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가 말했다.“허어 저 놈이 뭘 믿고 저렇게 까부나. 이봐 야마토, 저 놈 주둥아리 다신 못놀리게 손 좀 봐줘.”“하이!”덩치가 집채만한 사내가, 절도있게 대답함과 동시에 대근의 면상을 향해 번개같이 주먹을 날렸다. “아이쿠!”비명을 지르고 나가 떨어진 자는 야마토였다. 남은 두 괴한은 기절초풍할 듯이 놀랐다. 대근이 야마토의 어디를 어떻게 가격했는지 눈을 뻔히 뜨고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근이 히죽 웃으며 내뱉었다.“왜 그렇게들 놀라나. 다리뼈 좀 부러뜨린 것밖에 없어. 한 놈씩 덤비지 말고 왕창 덤벼. 쪽발이들아.”괴한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대근이 틈을 주지 않고 일갈했다.“멈춰라! 나는 한국에서 온 택견 사범이다. 얼른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복창해.”이에 우두머리 사내가 눈알을 부라리며 앞으로 나섰다.

“흐흐. 지금 뭐라고 했나. 택견 사범이라구? 잘됐군. 내가 본토 가라데 맛을 보여주지. 이봐 나카노!”신호와 동시에 우두머리와 나카노가 동시에 적수공권을 휘두르며 맹렬하게 돌진했다. 대근은 상대방의 주먹이 코앞에 날아들 때까지 눈 하나 깜짝 않고 지켜봤다. 다음 순간, 대근의 몸이 학처럼 붕 솟구치더니 연타로 두 사내의 면상을 걷어찼다.윽! 캑! 비명조차 제대로 못 지르고 사내가 고꾸라졌다. 릴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사내 셋이 쭉 뻗은 걸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릴리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어머나 정말 멋져요 대근씨. 어쩌면 그렇게 홍콩무술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빼다 박았죠?“핫핫핫. 어떻게 알았어 릴리. 내 어릴 때 꿈이 이소룡처럼 되는 거였거든. 그나저나 저 놈들 진짜 야쿠자가 맞나?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동네 양아치 같은데 말이야.”“아니에요. 내 느낌엔 야쿠자들이 맞아요. 얼른 여기를 빠져나가요. 머뭇거렸다간 보복을 당할지 몰라요.”

“뭔 소리야 릴리. 한창 달아오르던 판에, 하던 거나 마저 하고 가야지. 안 그래?”“싫어요. 여기서 계속했다간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몰라요. 얼른 가요.”릴리는 재빨리 대근의 손을 잡고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 시각, 강쇠는 모텔 밖에서 히로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히로미는 호호백발 의사와 요란하게 접전 중이었다. 강쇠는 은근히 불안했다. 원래 히로미와 백발 의사와의 교접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히로미가, ‘치료를 끝내면 한번 주겠다’고 하자, 처음엔 감지덕지하던 의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나왔던 것이다.“히로미양.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먼저 하면 안될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수술대 위에서 지금 바로 하고 싶소만.”“수술대 위에서 하겠다구요? 싫어요. 소독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어떻게…”히로미가 난색을 표하자, 의사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강쇠를 붙들고 하소연했다.“젊은이. 두 손 모아 선처를 바라겠소. 히로미양이 용단을 내릴 수 있게 얘기 좀 해주시오.”애걸복걸하는 노인네가 딱해 보여 강쇠는 부득불 중재에 나섰다.

“이왕에 한번 주기로 약속한 거, 걍 화끈하게 줘.” 히로미에겐 그렇게 말했고, 의사에겐 장소를 수술대가 아닌 모텔로 권유했다. 그렇게 해서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접전이 이루어지게 된 거였다. 그런데 의사가 모텔로 들어가기 직전, 이상한 장구를 착용하는게 아닌가. 의사는 언제 준비했는지 방독면 비슷하게 생긴 마스크를 쓰고 귀에다 솜을 잔뜩 틀어막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모텔로 들어갔던 것이다. 강쇠가 불안감을 느낀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히로미는 모텔을 들어간 지 이십분이 채 안돼 나왔다. 히로미의 표정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강쇠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얼른 물었다.“의사는 어쩌고 혼자서만 나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말도 마세요. 아유 노인네가 정말…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히로미는 무슨 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강쇠가 차분하게 히로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음…그런데 말이야 히로미. 의사가 귀에 솜을 틀어막은 건 이해가 가는데, 방독면은 왜 썼지?”

“모르죠. 결벽증 때문인 것 같은데…어쨌거나 섹스하면서 마스크는 너무 심하지 않나요? 더 웃기는 건 막상 일을 시작하자마자 히로미! 히로미! 하며 마구 괴성을 지르는 거예요. 어찌나 흥분하는지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젊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갈 때가 다된 노인네가 그렇게 흥분하니 머릿속에서 퍼득 세 글자가 떠오르더라니깐요.”“세 글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복상사 말예요.”“흠…노인네가 용을 쓰다보면 졸지에 비명횡사를 당할 수도 있지. 그래서 어찌 되었어.”“어찌 되긴요. 도저히 일을 치를 기분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소리는 또 왜 그렇게 질러대는지. 참 나 기가 막혀서. 남자가 그렇게 소릴 지르는 건 처음 봤어요.”“설마. 히로미보다 더 소리를 지르진 않았겠지.”“아뇨. 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진 않았어요. 귀에다 대고 꽥꽥 고함을 질러대는데, 강쇠씨 고막 터질 때 심정을 알겠더라니까요. 그래서 후다닥 옷을 걸치고 뛰쳐나온 거예요.”

“흐흐흐. 그러니까 히로미도 소리 좀 작작 질러. 너무 고함을 치면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잖아.” “휴우. 하여간 빨리 가요. 노인네 쫓아오기 전에.”히로미는 말을 뱉자마자 서둘러 공원으로 내달렸다. 허겁지겁 공원에 도착해보니 릴리와 대근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 된 거죠. 둘이 어디로 간 걸까요?”“글세. 모텔 아니면 택견 도장 둘 중의 한 곳이겠지.”강쇠는 공원 주변 모텔을 돌다가 포기하고 도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근은 릴리를 상대로 택견 도장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강쇠가 그들 곁으로 다가서는데 누군가 도장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교오코가 불쑥 들어섰다. “아니 이 밤중에 어쩐 일이야 교오코.” 강쇠가 묻자, 교오코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강쇠씨 드디어 찾았어요. 일본 최고의 명기를 찾았다구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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