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테크닉은 워낙 변화무쌍해서 측량하기조차 어려운 경지에 오른 분이에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으세요? 요즘 그 방면으로 입으로만 잘난 척하는 남자들이 원체 많아서 말이죠.” “음… 예를 들면, 대략 수백 가지 종류의 테크닉을 구사하는데, 제 아무리 색을 밝히는 여자라도 그 기술을 다 구사하기 전에 항복하고 말죠. 또 있어요. 아무리 나무토막 같은 불감증 여자라도 교접 후 한 시간 내에 반드시 절정에 오르게끔 만들죠. 하지만 그분은 그것을 뻐기지 않고 늘 겸손해요. 그분 스스로 남녀의 운우지정 행위를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 규정하는데, 이는 어떤 테크닉을 구사하든 결국 하나의 오르가슴으로 귀결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거든요.” “말만 들어도 황홀해져요. 변강쇤가 하는 그분 정말 대단한 분이신 것 같아요. 꼭 한번 만나뵐 수 있을까요.”
“물론 만나뵐 수 있어요. 그렇다고 이분은 아무 여자나 만나서 성은을 베풀지 않아요. 스스로 명기라고 느끼는 여자이거나, 옹녀의 자질을 두루 갖춘 여자라면 기꺼이 도전을 받아주시죠.” 이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던 강쇠가 곤혹스럽다는 듯 말을 자르고 나섰다. “허허 성은이라! 이렇게 황망할 데가 있나. 그 말을 들으니 내가 꼭 섹스교 교주라도 된 기분이군. 그래서 어찌됐어 교오코.” “어떻게 되긴요. 그 많은 여자를 몽땅 성은을 입게 할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누가 명기인지, 허당인지 알 수도 없고. 그래서 고심 끝에 내가 직접 지원자를 만나 면접시험을 치렀죠. 근데 그게 또 골 때리더라구요.” “골 때리다니 뭐가.” “지원자들마다 하나같이 자기가 명기라는 거예요. 여자는 여자를 알아본다고, 내가 보기엔 분명 허당같아 보이는데도 진짜 명기가 맞다고 빡빡 우기는데, 정말 어쩌면 좋을지 대책이 안서더라구요.”
“음, 과연 그랬겠군. 교오코가 직접 테스트를 해볼 수도 없었을 테니.” “물론이죠. 하지만 직접 할 수는 없어도 교접시 남자들의 반응이 어땠는가를 물어보면 대충 감을 잡잖아요. 그래서 일일이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다들 어찌나 자신만만한지 면접관인 내가 기가 팍 죽더라구요. 그중 돌림배지기가 특기라는 한 여자는 이랬어요. ‘나한테 걸리면 어떤 남자라도 단 삼초도 못 견딘다. 한국의 변강쇠라는 자가 과연 몇 초나 버틸지 걱정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여자는 ‘겨우 그 정도예요? 난 일단 시작하면 맷돌처럼 갈아버려요. 그 때문에 상대가 초죽음이 돼 일어서질 못한다구요.’ 그러자 딴 여자가 조용히 말했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남자들이 절더러 진공청소기래요. 변강쇠씨는 저를 어떻게 부를지 궁금해요. 그래서 지원해봤어요.’ 그런데 수줍은 표정으로 듣던 앳된 얼굴의 아가씨가 후우,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저는요. 여지껏 그 어떤 물건도 뚫고 들어오질 못했어요. 그래서 아쉽게도 아직까지 처녀의 몸이어요. 저는 오르가슴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요. 변강쇠 그분이 와서, 절 뚫어주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람이 없겠어요.’ 그 말에 깜짝 놀라 그 아가씨의 얼굴을 자세하게 쳐다봤죠.”뚫어주기만 해도 좋다는 그 아가씨 얼굴을 보니 몹시 비장해보이더군요. 언뜻 제 증조모님 생각이 나서 동정심마저 일었죠. 하여튼 후보군이 저마다 명기임을 자임하니, 누굴 적임자로 추천해야 좋을지 난감했어요. 강쇠씨, 그 네 명 중에 고르라면 누굴 선택하겠어요?”
“흠. 다들 만만찮아 보이는군. 하지만 꼭 고른다치면, 돌림배지기보다는 맷돌이 낫지 않을까. 또 맷돌보다는 진공청소기가 낫고. 그렇지만 최고 명기로서 자질은 철옹성이 가장 나아보이는데, 대야는 어때?” “대야라니요?”“세숫대야 말이야. 그게 폭탄이라면 일부러 뚫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잖아.”그 말에 교오코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호호호. 강쇠씨는 유머 감각도 탁월하셔. 얼굴은 기차게 예뻐요. 여자가 봐도 샘이 날 만큼. 그래서 속으로 점 찍었죠. 강쇠씨가 바라는 여자가 바로 이 아가씨일 거라고.”“그런데 잠깐만, 어째 이상하군. 교오코는 최고 명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었잖아. 그렇담 도대체 누구야.”“기억력이 비상하시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최고 명기로 점찍은 여자는 그 아가씨의 언니예요.”“언니라고? 아니 그럼 그 언니도 지원했었나?”“아니에요. 언니는 지원하지 않았어요. 또 유게신궁에 나타나지도 않았어요.”“허참 수수께끼같은 이야기로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궁금하면 직접 그 아가씨를 만나서 물어보세요.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예요.”“그 아가씬 지금 어딨어.”“지금 강쇠씨를 만나려고 가고시마에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에요.”그 말에 대근이 깜짝 놀라 물었다.“아니 가고시마라면, 도쿄까지 비행기로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온단 말이야?”“물론이죠. 내가 ‘도쿄에 올 수 있냐’고 물으니까 아가씨가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어쩌면 평생을 처녀로 늙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소원을 풀 수 있다면 어디든 못 가겠냐’고. 아마 오늘밤 안으로 만날 수 있을 텐데, 과연 강쇠씨가 아가씨 소원대로 거길 뚫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으음…. 집념이 대단한 여인이군. 여기까지 찾아왔다가 실망을 안겨주면 어떡하지.”“왜요. 자신이 없으세요?”“솔직히 말하면 장담을 못하겠어. 뭇 사내들도 어쩌지 못한 그런 기묘한 법기를 비록 변강쇠라 한들 뚫을 재간이 있을까.”
“벌써부터 기가 죽으면 어떡해요. 최고 명기를 만나는 건 그 다음이에요. 그 아가씨 소원을 못 풀어주면 국물도 없을걸요.”그 말에 강쇠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 자세는 마치 무공의 절대 고수가 중대한 결전을 앞두고 운기조식에 들어간 자세와 흡사했다. 운명의 시간은 시시각각 앞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시계가 밤 9시를 가리키자, 교오코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하이 사사코. 지금 어디예요? 아, 신주쿠역이라구요. 알았어요. 곧 나갈게요.”통화를 끝내자마자 교오코는 부리나케 나갔다. 십분 후, 키가 모델처럼 늘씬한 여자가 교오코와 함께 들어섰다. 여자는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사사코라고 해요. 한국에서 오신 변강쇠씨가 어느 분이신가요?” “아 저예요. 그리고 제 이름은 변강쇠가 아니라 오강쇠라고 합니다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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