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정계은퇴를 번복, 정치권에 복귀하기가 무섭게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터다. 서울시장에 무사히 안착한다면 차차기 대선 도전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유 장관이 제2의 ‘오세훈’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니냐는 풀이다. 또 다시 정치권과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유 장관의 진정성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지난 2월 입각이 결정된 이후 유 장관은 “정치부 기자들이 관심 가질 일 없이 업무에만 전념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정치인 유시민의 모습은 잊어 달라”고도 했다. 국회 입성 직후 노타이에 면바지를 입고 나타다 야당 중진의원들을 ‘발끈’하게 만들었던 사건, 튀는 발언으로 정치권 안팎에 파문을 일으키며 논란과 쟁점의 중심에 서곤 했던 지난날을 잊어 달라는 주문이다.
이름 박은 ‘시계’ 돌려 구설수
이를 입증하듯 유 장관은 7;3 가르마에 딱 떨어지는 정장 차림을 선보였고, 독설을 퍼붓던 야당 의원들에게 몸을 한껏 낮췄다. 취임 3개월, 그가 바랐던 대로 ‘정치인 유시민’은 여의도 정가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언론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다시 등장했다. 보건복지부 예산으로 본인 이름이 새겨진 시계를 제작, 장관실 방문객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권주자로 거론돼 온 역대 정치인 장관 중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긴 기념품을 돌린 사례가 없었기에, 유 장관의 ‘실수’는 부각됐다.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유시민 시계’ 파문이 가시기도 전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낸 게 화근이다. 유 장관은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국립서울병원 이전 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을 듣고자 했다.야당은 물론 여당의 비난이 쏟아졌다. 한 마디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야당은 언론으로부터 멀어진 유 장관의 ‘초조감의 발로’라고 혹평했다.
선거 국면, 열린우리당의 낮은 지지도가 개입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관심을 끌려고 한다는 해석도 있었다. 강금실 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측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정치권의 비난이 이어진 데는 방법론적 문제도 있었다. 보도자료의 형태로 질의, 언론의 관심을 빌리려 한 것이다. 장관으로서 현안에 대해 묻는 것인지,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등장했다.
차차기 유풍(柳風) 예약
그럼에도 유 장관은 숨쉴 틈을 주지 않았다.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정계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이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유 장관은 누가 뭐래도 대권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입각 과정에서 여당내 반대를 물리치고 청와대가 그의 임명을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유 장관이 스스로 제시한 그의 정치적 플랜이 그대로 정치권에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정치 스타일상 어떠한 계산 없이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일단 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08년 2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맡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또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남기겠다는 각오도 숨어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선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 장관의 발언 중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여당 내에서 유 장관을 잘 아는 사람들은 왜 취임 100일 즈음에 정계은퇴를 운운하는가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지방선거 국면이다.
유 장관의 정계은퇴와 지방선거라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또 다른 사람이 떠오른다는 견해도 있다. 바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다. 정치관계법 개정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그는 16대 국회가 끝나갈 무렵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차기 서울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전략적 후퇴를 선택했다는 소문이 정치권에 파다했으나, 야인으로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그는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부류로 각인됐던 게 사실이다. 또 서울시장 후보로 화려하게 복귀한 그는 ‘오세훈 효과’도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시작된 바람이 한나라당에 변화의 가능성을 심어주고 있으며,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도 정치권의 관심은 집중되고 있다. 더 나아가 오 후보는 유력한 차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중이다.
정치권 “의도된 발언” 한목소리
즉, 유 장관이 ‘제2의 오세훈’이 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최근 유 장관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과 관련 “차차기 주자! 여기도 있소이다”라며, 우회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고 촌평했을 정도다. 친유시민이냐 반유시민이냐의 논란을 스스로 제공했던 정치인 유시민으로의 깜짝 변신이라는 얘기다.
유 의원에겐 세칭 ‘유빠’라고 불리는 개인 지지자들도 많다. 이들은 유 장관의 시대정신, 정치적 지향점, 그리고 파격 변신에도 맹목적이다. 물론 유 장관이 불러일으킨 앞서의 사건들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유 장관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유 장관은 시계와 관련해, “규정에 따라 일반홍보비로 책정해 문제될 것이 없다”, “지역주민에게는 한 개도 주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공개질의서와 관련해선 “주무 장관으로서 시장 후보들에게 관심을 촉구한 것일 뿐”이라는 해명이다. 그렇다 해도 취임 100일에 맞춰 시사한 유 장관의 정계은퇴 발언은 선례가 보여주듯, 튀는 정치인의 일상적인 파격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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