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확한 시계와 같았다. 언제나 아침 6시면 약수터로 떠나는 그를 가리켜 상계동의 한국 아파트 사람들은 ‘칸트’라 불렀다. 그의 인상도 항상 포커페이스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인사를 할라치면 그는 독특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것은 마치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 있던 사람이 발각되었을 때 쑥스러움을 가리려고 하는 행동 같았다.
그 때문에 칸트에게는 풍성한 뒷소문이 항상 있었다. 본래 암흑가의 행동책이었다가 발을 빼었다는 둥, 암흑가에서 도피해 숨어 사는 것이라는 둥, 비밀 임무를 맡은 경찰이라는 둥.
이런 소문은 어느 날 그를 찾아온 험상궂게 생긴 인물로 하여 더욱 증폭되었다. 칸트를 찾아온 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그를 두고 무성한 소문은 또 불길처럼 아파트 단지를 휩쓸었다. 그런 소문은 낫살이나 먹은 아줌마들에게 항상 떠도는 것이었고 그만큼 부정확한 것이기도 했다. 칸트는 독신이었다. 칸트는 40대 후반쯤 보였다. 키는 170 정도로 작아 보이는 편이었지만 다부진 체격이 그 점을 책임지고도 남았다.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로는 가슴과 옆구리에 큰 흉터가 있는데 아무래도 칼에 찔린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으로는 그 험악한 인상의 사내밖에 목격되지 않았지만 그를 찾는 이가 그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건 쉽사리 짐작되었다. 하루는 칸트가 사는 한국 아파트 1층 5호실에서 상당한 소란이 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에 욕설이며 비명이 1층을 휩쓸었다. 그날 아파트 주민들은 불안해 하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러나 칸트는 다음 날 아침 6시에 언제나처럼 같은 모습으로 창문을 뛰어넘어 약수터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러나 105호에서 나온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칸트가 그를 위협한 사내를 적당한 방법으로 처치했음을 의심치 않았다. 칸트는 분명 위험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파트 주민에게 위해를 끼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그 측면에서는 참으로 조용하고 아무 말썽도 일으키지 않는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당연히 이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좋은 이웃이기도 했다. 한국 아파트는 산을 끼고 지어진 아파트로 칸트가 있는 1단지는 바로 산자락에 지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현관을 통해서 나오는 것보다는 1층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마치 서부의 카우보이가 울타리를 뛰어넘어 목장으로 들어가듯이 한 손으로 가볍게 창턱을 짚고 훌쩍 창을 뛰어넘어 밖으로 나왔다. 아침 6시면 언제나. 그의 그런 행동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나 똑같았다. 어쩌면 그는 그렇게 뛰어넘어 다니는 자신의 버릇을 지키기 위해 1층의 아파트를 얻었는지 몰랐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를 무서워했고 그의 집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의 집 창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그곳을 들어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개구쟁이 꼬마들조차도 그곳에는 얼씬하지 않았다. 그 역시 그 사실을 아는지 자신의 집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것에 대해서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창문을 다시 내려놓고 가기는 했지만, 그의 습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침입이 가능한 형태였다. 그의 피살 후 강 형사가 주목했던 점도 그것이었다.
칸트는 아침 6시에 살해당했다. 틀림없이 그의 습관을 잘 아는 자의 소행이었다. 흉기는 끔찍한 것이었다. 어떤 종류였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강 형사는 해머와 같은 종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칸트의 직접적인 사인은 두개골 함몰이었다. 그의 머리는 거의 반쪽이 부서져 있었다. 그것은 최초의 일격이었던 것 같다. 범인은 창문 옆에 바싹 붙어 있다가 칸트가 창문을 뛰어넘어오자 그대로 좌측면을 해머로 후려갈긴 것 같았다. 그리고 칸트가 쓰러지자 그 몸에 두어 차례 해머를 더 내려쳤다. 아마도 확실한 죽음을 맛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칸트는 오른쪽 팔이 으스러졌고 엉덩이 뼈에 금이 갔으며 정강이뼈가 부러졌다. 그동안 숱한 시체를 보아왔던 강 형사지만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진 시체는 별로 본 적이 없었다. 대형 트럭과 충돌한 자가용 운전자의 경우 정도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 비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칸트의 본명은 임순식. 목포파의 행동대장으로 목포파가 영등포 일대의 유흥가를 장악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마다치 않았다. 그가 돌연 암흑가를 떠나 것은 정말 불가사의 한 일이었다. 그는 후한 대접을 받고 있었고 아직 후배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있지도 않았다. 일설에는 그가 한 룸살롱을 습격했을 때 실수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은 데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가 두목의 보물을 훔쳐 달아났다는 설도 있었다. 어느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두목이 그를 백방으로 찾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은폐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칸트는 두목이 자신을 기어코 찾아내리라는 것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도망치는 것보다는 정면 대결을 원했던 것 같다.
그를 찾아왔던 후배들은 때로는 설득을 당해서 때로는 주먹세례를 받아서 물러났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온 살인청부업자는 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칸트는 최초의 일격에 그대로 쓰러졌다. 강 형사는 수소문 끝에 사건 전날 칸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15층 5호실에 사는 박양호라는 사람이었다. 바로 칸트의 15층 위에 사는 셈이었다.
강 형사는 박양호가 목포파 두목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의 말마따나 발바닥의 개가였다. “발바닥의 개가가 무슨 소리야?”
추 경감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서 알아냈다 이겁니다” “그런데 박양호 그 친구는 그날 저녁에 칸트와 술 한잔을 하고 신길동에 있는 친구 집에 가서 잤단 말이야. 신길동에서 상계동이 얼마나 먼지는 알고 있겠지?”
따라서 박양호는 범인일 수가 없다. 그러나 강 형사는 도저히 다른 용의자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내가 힌트를 주지” 추 경감이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죽은 칸트에게는 소량의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어. 그러나 그는 수면제를 복용하는 버릇이 없었지. 그리고 그날 박양호와 마신 술에서도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단 말이야. 박양호는 점잖게 그에게 접근해 수면제를 먹인 거라네.” “그렇다면?”
강 형사의 머리에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칸트의 상처는 해머로 내려친 게 아니야. 그건 강력한 지구의 힘이 만들어낸 흔적이지. 칸트의 버릇이 그를 죽음으로 이끈 거야. 범인은 물론 자네 짐작대로 박양호라네.”
퀴즈. 박양호는 어떤 방법으로 칸트를 죽인 것일까요? |
[답변-3단] 박양호는 칸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자신의 아파트인 15층으로 데려갔다. 방을 칸트의 방과 똑같이 꾸며놓아 아침에 일어난 칸트는 자신의 방으로 착각하고는 평소 습관대로 창을 뛰어넘어 약수터로 향했던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