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가 볼만한 곳 <3> - 전북 남원시

전북 남원시 인월면의 인월 5일장(3·8일)은 봄날이면 지리산 정기가 가득 담긴 것들로 가득하다. 각종 산나물을 비롯해 묘목, 씨앗, 메주, 장류, 농기구, 골동품, 남해안에서 올라온 해산물들로 인기가 높다. 이 지역 특산물인 남원목기와 흑돼지, 인월막걸리, 고로쇠약수도 장터를 풍성하게 해 준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쪽에 하동군 화개장터가 있다면 지리산 북쪽엔 인월장이 그에 버금간다. 봄날을 맞아 남원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매달 3일과 8일에 서는 ‘인월 5일장’은 전라도사람과 경상도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물건을 사고파는 영·호남화합의 장터다.
장날마다 장터를 찾아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구성만 봐도 그렇다. 상인의 약 50%는 전북 남원시 인월면과 어깨를 맞댄 경상남도 함양군 사람들이다.
남원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상인들이 약 30%, 구례나 곡성 등지서 온 상인들이 20%쯤 된다.
인월 5일장은 인월버스터미널 서쪽의 70여 장옥과 마을금고로 이어지는 좁은 2차선 도로변(일명 흥부로)에 새벽부터 들어선다.
장터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면 전라도사투리와 경상도사투리가 한데 섞여 들려와 인월장이 영·호남 일심동체의 시장임을 실감할 수 있다.
풍성한 지리산 산나물
봄날의 인월장엔 지리산 줄기에서 자란 산나물과 싱그러운 녹색의 채소들이 풍성하게 쏟아진다. 고로쇠 물도 인기품목이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나물과 채소를 다듬던 노인들은 손님이 다가오면 구수한 사투리로 물건을 자랑하고 후한 인심으로 덤까지 얹어준다. 손님이 뜸하면 서로들의 안부를 묻고 군것질거리를 나눠먹기도 한다.
장터에 선보이는 특산물들은 그것만이 아니다. 겨우내 갈무리됐던 녹두, 동부, 서리태, 기장 등의 곡식이며 메주, 묵나물, 장아찌 같은 밑반찬거리가 가득하다.
더덕, 버섯, 곶감, 말린 대추, 새 봄에 파종할 씨앗, 호미며 낫 같은 농기구 등도 자리를 잡아 손님들을 기다린다.
정육점주인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이 지방특산물인 토종흑돼지는 외지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한 푸줏간주인은 “면 단위 중 정육점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인월면”이라고 말했다. 남원의 토종흑돼지는 친환경발효사료로 키우므로 잔병이 거의 없고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
해발 500m 고지대에서 자라는 데다 무게가 120~130kg 정도로 어릴 때 도축해 육질이 부드럽고 지방질도 적다.
지나는 길에 인월장을 구경한 외지여행객들은 장터구경으로 다리가 아파지면 옛날식 다방에 들어가 차를 마시기도 하고, 순대국 집이나 칼국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도 한다.
파출소 맞은편의 인월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반주로 마셔도 좋다.
8월부터 ‘토요상설시장’
이처럼 옛날정취가 물씬 풍기는 인월장은 지금까지 3번쯤 장소가 옮겨졌다. 오는 8월엔 새롭게 탈바꿈할 예정이다.
인월면발전협의회 이동식 회장에 따르면 그가 처음 기억하는 인월장터는 아영면에서 흘러내리는 풍천모래밭에 있었다. 그 때 이름은 ‘아랫 장터’.
일제강점기 때 큰 물난리가 나서 장터가 떠내려 가버렸다. 그래서 두 번째로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인월파출소 뒤편 하천변 모래밭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의 자리로 장터가 옮겨졌다.
오래 써온 70여 건물들이 함석으로 지어져 낡고 주차공간이 좁아 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어 새로운 장터가 필요하게 됐다.
상인들은 인월시장 환경개선사업을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 오는 8월 중 새 모습의 장터건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상인들과 손님들은 쾌적하고 위생적인 시설에서 상거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올 추석 무렵부터 5일장 대신 토요상설시장이 생기는 것. 종합센터 앞에선 국악공연, 추억의 약장수, 엿장수 공연, 마술쇼, 장기자랑 등 흥겨운 볼거리가 펼쳐질 예정이다.
웅대한 기운 서린 ‘실상사’
인월장터 기행을 마친 뒤 가볼만한 곳도 주위에 즐비하다. 인월면의 실상사, 운봉읍의 송흥록 생가, 황산대첩비, 남원시내의 광한루원, 춘향테마파크, 사매면의 혼불문학관 등이 대표적이다.
산내면에서 달궁계곡과 정령치를 지나 주천면으로 이어지는 산중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다.
먼저 실상사부터 답사해보자.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증각대사가 지었다는 실상사는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평지가람이다. 백장암, 약수암, 서진암 등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고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이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마주 보는 전각은 실상사의 큰 법당인 보광전. 그 앞엔 2기의 삼층석탑(보물 제37호)과 장중하면서도 아름다운 석등(보물 제35호) 하나가 서 있다.
보광전 동편엔 약사전, 서편엔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 보광전은 지리산 천왕봉 능선을 마주하고 있어 웅대한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일제에 파괴된 ‘황산대첩비’
인월면과 남원시내 중간의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동편제의 탯자리다. 판소리의 대명사인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이 살았던 생가가 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판소리를 들으며 초가를 얹은 집 2채와 송흥록이 소리를 하는 동상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송흥록(1780~1863년)은 조선 후기 순조, 헌종, 철종 대에 걸친 명창으로 ‘가왕’이란 칭호를 받았다.
박초월(1916~1983년)은 송흥록의 집안후손인 송만갑에게서 판소리를 배운 중요무형문화재였다.
송흥록 생가 부근의 황산대첩비는 고려 말 이성계의 황산대첩(138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청일전쟁 때 일제에 의해 파손되는 비운을 겪었다.
깨어진 원래 비석은 파비각 안에 모셔놓고 오석에 새로 새긴 비석이 사적지중심을 지키고 있다. 대첩비지 옆의 어휘각에 가도 일제의 만행을 만나게 된다.
사랑학 교육장 ‘춘향테마파크’
이성계는 이곳 석벽에 황산대첩에 여러 사람들의 공이 컸다고 새겼다. 일제는 1945년 이를 폭파한 것으로 모자라 정으로 쪼아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잔영 위에 보호전각을 세운 게 어휘각이다.
춘향의 고장인 남원시내에선 광한루원을 산책하고 춘향테마파크를 방문하는 게 필수코스다.
광한루원은 하늘나라의 월궁을 상징하는 누원으로 광한루, 삼신섬, 은하호수, 오작교 등이 있다.
춘향전의 줄거리를 상상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산책하며 한복을 빌려 입고 광한루에 오를 수도 있다.
춘향관엔 박남재 화가가 그린 춘향의 일대기 9점이 전시돼 있어 소설책 한 권을 단숨에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을 주제로 한 공원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세트장도 남아있고 춘향을 소재로 한 시비들도 많이 세워져 있다.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사랑과 이별의 장, 시련의 장, 축제의 장 등 다섯 마당으로 이뤄져 있어 젊은 연인들은 물론 결혼한 신혼부부들도 찾아와 ‘사랑학 개론’을 배운다.
작고한 소설가 최명희가 남긴 대하소설 ‘혼불’의 향기에 젖어보고 싶다면 사내면 서도리의 혼불문학관을 찾으면 된다.
‘혼불’은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종부 3대가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룬다. 청상과부의 몸으로 이씨집안을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허약하고 무책임한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주인공들이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면 취재수첩, 육필원고, 만년필 등 작가의 유품과 재현된 집필실, 작가의 생애, 혼불 사건연보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소설내용을 모형으로 재현한 10개 장면의 디오라마(효원의 혼례식, 강모와 강실의 소꿉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강수 영혼식, 청암부인 장례식 등)도 소설의 이해를 돕는다.
혼불문학관으로 가는 길목엔 강모가 전주로 유학할 때 기차를 탔던 구 서도역이 있다. 1932년에 지어진 목조건물로 지금은 전라선 개량사업으로 새로운 서도역이 들어섰다. 구 서도역은 영상촬영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남원시청
남석진 기자 nsj@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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