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캠페인-기부편]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정치인 부조금…주지 말자” 청원
[정치개혁 캠페인-기부편]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정치인 부조금…주지 말자” 청원
  • 조주형 기자
  • 입력 2020-02-07 19:27
  • 승인 2020.02.07 19:37
  • 호수 134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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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이상한 정치인 부조금 제도개선’이라는 제목의 청원이 지난달 26일 등장했다. 청원자는 “정치인의 길흉 대소사는 재산 증식의 기회냐”면서 “관내 사업자, 공직자 등 청첩 및 부고가 없어도 눈도장 찍고 부조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청원자는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정치인 부조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청원자는 “법이 만든 반칙”이라는 지적과 함께 현행법을 게시했다. 현재 해당 청원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 규정인 100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공개되지 않고 있어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대선 출정식 방불케 한 ‘김부겸 출판기념회’…불법은 아냐

현재 공직선거법 제113조 등에 따르면 국회의원ㆍ지방의회의원ㆍ지방자치단체의 장ㆍ정당 대표자ㆍ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 포함)와 그 배우자는 당해 선거구 안에 있는 자나 기관ㆍ단체ㆍ시설 또는 해당 선거구 밖에 있더라도 그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ㆍ단체ㆍ시설에 기부행위(결혼식 주례 포함)를 할 수 없도록 명시한 상태다. 청원자는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정치인 부조금은 “법이 만든 반칙”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정치인들의 부조금 문제를 지적해 왔다. 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회 또한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내포한다고 선거철마다 고발성 기사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선관위 '입법' 미비

정세균(現 국무총리) 전 국회의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이낙연 당시 총리의 후임자로 지명됐다. 그로부터 3주 후인 지난달 6일, 당시 정 후보자는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서 ‘장남 결혼식 장소, 부담 소요 비용 축의금 수령액 및 지출내역’에 대한 질의를 받았다. 당시 정 후보자는 “장남 결혼식 축의금 수령액은 약 1억5000여만 원”이라며 “축의금 지출은 결혼식 준비 비용 및 하객 식대 등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녀 결혼식 비용 및 축의금 질의에도 동일하게 답변했다. 두 자녀 축의금은 무려 3억 원에 달한다. 이어 “결혼식 소요비용 내역 등은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있지 않아 답변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부조금 관련 청원인은 “정치인의 길흉 대소사는 재산 증식의 기회”라고 꼬집으면서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정치인 부조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 총리가 이를 역으로 할 수는 없다. 기부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기부행위는 곧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정치생명을 잃게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정 총리 입장에서는 받는 데 제한은 없어도 그 반대 상황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서 청원인이 지적한 “법이 만든 반칙”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선거관리위원회 또한 어떤 규제도 할 수 없다. 지난 6일 선관위에서 근무한 바 있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결국 입법 미비 때문에 발생하는 규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해당 관계자는 이날 기자에게 “항상 선거철이 다가오면 언론과 정계에서 언급되는 주제로, 언급은 되지만 그뿐인 소재”라고 지적하면서 “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행정기관이 나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라고 속삭였다.

계자는 “만약 부조금 문제를 불법으로 규정해 법에 명시할 경우, 이를 피할 수 있는 각종 우회 방법은 많기 때문에 사실 규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의심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당초 불가능한 데다 법적 근거마저 부실한 상황이라 규제 명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부조금만이 문제가 될까.
 

사진제공=김부겸 의원실
사진제공=김부겸 의원실

부조금 이어 출판기념회…연이은 지적에도 ‘강행’

부조금 문제는 당연히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문제와도 연결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서울을 포함한 전국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정치 분야에는 정치인 관련 신간 서적으로 가득하다. 대부분 하나같이 무엇을 꿈꾼다는 등의 자전적인 내용이 대세다. 물론 그 중에는 해당 분야에 능통한 정치인이 전문성을 발휘해 집필한 전문 서적이 있는가 하면, 과거 자신의 후광이 됐던 거물급 정치인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이른바 ‘재탕’ 서적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런 대세에 따라 너 나 할 것 없이 책을 낸다. 기본적인 문장력을 논하기에 앞서 지면을 글씨보다 사진 등으로 대체한 책들도 허다하다. 당연히 선거가 끝나면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정치인들의 책, 그리고 그에 따른 수익금 등은 정말 문제가 없는 걸까.

앞서 언급한 공직선거법 등에 따르면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선거일로부터 90일 이전에만 열면 무방하다. 또한 해당 기념회에서 책값을 지불하더라도 이는 정치자금법이나 부정청탁금지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기부행위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준 비용 자체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값으로 얼마를 낼 것인지 참석자 입장에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고, 주최 측인 정치인 입장에서는 누가 얼마나 더 많이 낼 것인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책값이 정치인에겐 차기 선거운동의 자금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권력을 재창출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낙선했을 경우 일종의 ‘정계 퇴직금’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책을 낸 정치인이 기념회에서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은 기부행위로 간주돼 오히려 처벌 받을 수도 있다. 정치인이 ‘명목상 책값’을 받을 수는 있어도 무료 배부는 오히려 불법이 되는 것이다. 앞서 청원인이 언급한 “법이 만든 반칙”이 다시금 부각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사권을 쥔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차기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인 등의 출판기념회는 유관 기관 관계자들로 하여금 문전성시를 이루게 만든다. 누구도 선뜻 초대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눈치껏 가야만 하는 ‘갑의 초대’가 시작된 모양새가 됐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한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책 <정치야, 일하자> 출판기념회가 이번 4.15 총선을 90여 일 앞둔 시점인 지난달 11일 대구의 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됐다. 주최 측은 이날 참석자가 무려 3천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총선 출정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김 의원 지지자 모임, 홍의락, 김현권 의원, 남칠우 대구시당 위원장, 허대만 경북도당 위원장 등 민주당 소속 인사들은 물론 문희갑 전 대구시장,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장세용 구미시장,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 이권희 한국폴리텍6대학 총장, 김선순 수성대 총장 등 지역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주최 측이 준비한 김 의원의 저서 1000권은 행사 시작 20분 전 동났고, 책을 구매하지 못한 참석자에게는 우편 배송을 위해 주소를 적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출판기념회를 비롯한 부조금 문제는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결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풀이된다. 물론 정치인들의 이 같은 행태가 모조리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당초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법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정치인들이 곧 있을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쉽게 얻을 수 있을까.
 

서울 어느 서점의 정치 코너 서적들.
서울 어느 서점의 정치 코너 서적들.

 

조주형 기자 chamsae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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