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광옥 전청와대 비서실장
한광옥(65)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또다시 시련의 계절을 겪고 있다. 삼주산업(옛 그레이스 백화점) 회장 김흥주(58·구속기소)씨 로비의혹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검은 10일 한 전실장이 김씨에게 사무실 보증금 등의 대납을 요구한 혐의를 잡고 한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 전실장은 11대, 13대, 14대,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인물로 99년 11월부터 2001년 9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대중 정부의 핵심 실세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는 이번 김흥주 로비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99~2000년 나라종금 퇴출저지 청탁과 함께 1억 1,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치권 실세였던 한 전실장은 2002년 ‘곧은 길에 미래가 있다’는 책을 저술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이처럼 김씨와 부적절한 청탁과 돈거래를 주고받았다는 혐의가 포착되자 그에게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광옥 어떤 인물
한 전실장은 1942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 중동고등학교,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했다.
5공 초기인 지난 81년 총선에서 민한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의원이 된 그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당시 내란음모죄로 구속돼 있던 ‘DJ 석방’과 ‘대통령 직선제 실시’ 등 금기시되었던 사항들을 거침없이 주장했다. 이뿐 아니라 광주사태 진상규명 등 민주화조치를 국회 본회의장에서 처음으로 주장하기도 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 DJ와 노선을 같이 하게 됐다.
85년 김 전대통령의 추천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을 지냈으며 그 뒤 민주당 사무총장, 최고위원, 국민회의 사무총장과 부총재 등을 지냈다.
이와 함께 그는 민추협 대변인, 국회의원, 국회 노동위원회 위원장, 통합 민주당 최고위원, 부총재, 15대 대통령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 위원장, 제1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한 전실장은 정치권에서 ‘DJ’의 해결사로 불렸다. 지난 97년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가능케 했던 DJP 후보단일화를 1년 5개월의 마라톤협상 끝에 성사시켜 DJ 오른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이어 DJ정권 출범이후 정리해고 등으로 노동계와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98년 1기 노사정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런 활약에 힘입어 김중권에 이어 99년 11월부터 2001년 9월까지 대통령 비서실장자리를 꿰찼다.
곧이어 DJ는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그를 새천년 민주당 대표로 보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당대표로 직행한 것을 두고 당시 민주당에서는 일부 반발이 일기도 했다.
그가 당대표로 있던 지난해 1월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했으며, 같은 해 4월 최고위원 선거에서 4등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어떤 혐의를 받고 있나
한 전실장은 김흥주(58ㆍ구속)씨의 로비의혹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되면서 가장 먼저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인사다. 김씨의 입에서 직접 호명된 인물인 까닭이다.
한씨는 김씨가 정·관계, 법조계 인사들을 모아서 만든 ‘45인회’(사랑을 실천하는 형제 모임) 멤버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여권 인사 ㄱ씨, 야당의 ㄱ·ㅁ씨, 구여권의 ㅂ씨 등 다수의 유력 정치인들도 참여해 김씨와 교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져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주로 금융감독원, 감사원, 국세청, 검찰 등 고위간부를 지낸 이들이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꼭 모임 멤버에 관련된 청탁만 있었겠느냐. 공소유지를 하려면 한 건만 갖고는 부족하다”면서 “45인회 소속 인사를 포함한 다수의 공직자들이 김씨를 통해 인사 청탁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수사 계획을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한 전실장은 1999년 정계에 복귀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사무실을 마련해주기 위해 김씨에게 마포구 도화동 모 빌딩 50평 규모 사무실에 대한 억대의 보증금과 사무실 임대료를 대납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 전고문은 일본 등에 머물다 99년 초 귀국, 정계에 복귀해 서울 마포구에 50평 규모의 개인 사무실을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권 전고문의 개인사무실의 경우 한 전 실장이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김씨를 통해 사실상 임차한 뒤 동교동계 소속 정
치인들이 공동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전실장은 “김흥주씨에게 사무실 임대료 대납을 요구한 적이 없고 청탁을 받은 적도 없다”며 “검찰에서 할 얘기는 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전실장은 김씨와 친분 관계를 묻는 질문에 “조금 있는데 할 얘기는 다 했다”고 답했다.
검찰 관계자는 “주제는 끝나고 부제는 있을 수 있다”고 말해 큰 수사 흐름이 거의 마무리됐음을 시사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당시 사무실 운영을 맡았던 박양수 전 의원을 조만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김씨가 권 전고문의 사무실 비
용을 대납한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라며 “그러나 박 전의원에 대해서는 개인 비리 혐의를 두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김씨의 부탁을 받고 이주성 전국세청장의 비위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무총리실 심의관 ㄴ씨가 김씨
가 발행한 20억원 짜리 어음에 배서를 해 줬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보강 수사할 방침”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순탄치 않았던 과거
한 전실장은 지난 1999~2000년 나라종금 퇴출저지 청탁과 함께 1억 1,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한씨의 변호인 측은 최후 변론에서 “한씨가 뇌물을 받았다는 물증이 없고 안상태씨와 김호준씨의 증언밖에 없다”면서 “한씨에 대한 계좌추적도 이뤄지지 않을 만큼 부실한 수사이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씨도 최후 진술에서 “지난날 민주화 운동으로 두번 투옥된 이후 세 번째 법정에 서서 선고를 기다리게 됐으며,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살아오면서 깨끗한 정치생활을 해왔으나 이렇게 뚜렷한 명분이나 증거도 없이 구속돼 통탄스런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면서 “진실은 흙을 아무리 덮어도 가릴 수 없을 것이며, 100마리 양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심정으로 진실을 찾아 달라”고 말했다.
한씨 측은 당시 재판부에 보석신청을 냈었으나, 재판부는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있고 신병도 수형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며, 보석을 허가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기각했다.
#한광옥 정치생명 최대 위기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12일 김흥주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와 관련, 한 전대통령비서실장이 김씨로부터 인사청탁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권노갑(77) 전 민주당 고문의 마포 사무실 임대비용을 대신 내 주고 대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 대가에는 인사청탁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 전실장을 제3자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 전실장의 정치생명은 이제 끝났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 한 전실장에 대한 동정론도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모 포털 사이트의 한 정치관련 카페에서 한 네티즌은 “지금 정치인들 가운데는 한 전실장 같은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며
“이와 같은 논리로 정치인들을 잡아들인다면 무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노 대통령의 칼날은 왜 안희정 같은 사람에게는 관대한지 모르겠다”며 “이와 같은 맥락이라면 현정권의 실세라고 버티고 있는 이들도 검찰이 모조리 잡아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이같은 동정론은 주로 DJ관련 카페나 과거 민주당 인사 관련 카페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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