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태도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말을 아끼는 게 아니라 말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나라당과 함께 할 수 없는 정치세력에는 대안이 없다. 고 전총리 앞으로 헤쳐 모이는 길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고 전총리는 이미 이 같은 판세를 꿰뚫고 있다. 따라서 고 전총리는 본격적으로 신당 띄우기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이미 TF팀이 풀가동중이다.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고 전총리의 광화문 사무실은 분주하다. 이곳을 사랑방으로 이용하는 고 전총리에게 귀엣말을 넣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신당창당 TF팀 5~6명도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 전총리측의 한 핵심인사는 “밑그림은 이미 완성됐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이제 대문만 열어 놓으면 된다”고 단언한다. 지방선거 이후 고 전총리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벌써부터 요란하다. 한나라당 인사를 제외한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은밀히 접촉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적 진군 ‘자신만만’
고 전총리 자신도 신당 창당 의지를 확고하게 밝히고 있다. 7월중 가칭 ‘국민희망연대’를 발족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치는 중도세력의 대통합이다. 정치인 참여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의중도 내비쳤다. 한마디로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처럼 고 전총리 쪽으로 쏠리는 무게중심은 실체가 분명한 팩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방선거 직후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고 전총리의 위상제고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달 31일 실시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고 전총리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1% 포인트 앞선 25%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이날 조사결과는 박대표의 힘이 한창 발휘되던 시점에 나온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따라서 고 전총리 진영은 우리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통합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호남을 발판으로 재기를 노리는 민주당의 목소리에도 별무 반응이다. 이처럼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 전총리 진영은 한마디로 ‘우리당과 민주당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전총리 진영은 지금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 통합이라는 단어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주도권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도권은 판세가 팽팽할 때 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이제 대세는 기울어져 있다. 한나라당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이미 고 전총리로 굳어진 탓이다.
우리당은 ‘잡탕밥’
우리당의 분열조짐에 대해서도 말을 보태지 않고 있다. 이미 예고된 수순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고 전총리 진영은 오래전부터 우리당의 수명을 길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말에도 걸맞지 않는 잡탕밥 수준이라는 게 고 전총리 진영의 판단이다. 이념적 성향이 판이한 인사들이 권력의 우산하에서 잠시 동거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때문에 분열이 구체화되면 한쪽이 왕창 떨어져 나와 고 전총리 진영으로 옮겨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조짐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도 있다.
지방선거 전후로 우리당의 중진급 인사들이 구애의 뜻을 전하면서 얼굴도장 찍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는 참여정부 정권창출의 핵심공신으로 알려진 인사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이 같은 분위기와 관련해 우리당의 한 핵심인사는 “보따리를 쌀 준비를 하자는 말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선거 두달 전부터 이미 털고 일어설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라고 귀띔한다. 다시 말해 지방선거 참패가 확실하게 예견되기 이전부터 우리당 일각에서는 벌써 들썩거렸다는 얘기다.실제로 지난 4월 중순경 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보좌진을 불러 “향후 진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여권중진 “두달전부터 진로 고민”
당시 직접 지시를 받은 이 중진의원의 참모는 “판세 읽기는 그때 이미 끝났다”면서 “대책을 마련해 보고했지만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이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중진급 의원들은 향후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중진의원의 한 참모 역시 “운신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 보라는 지시를 받고 보고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 참모들은 대부분 “진로를 고민하지 않은 의원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정계개편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드러내 놓고 떠벌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의원과 보좌진 사이에서 비밀리에 이뤄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수읽기에 능한 중진급 의원들은 그때 이미 지방선거결과를 내다본 셈이다. 고 전총리 중심으로 판이 짜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지했다는 얘기다.민주당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결과 상당히 고무된 민주당이지만 고 전총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각기 다르다. 한화갑 대표가 “우리당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돌아오면 받아 주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현역의원은 “우리당 의원들이 왜 민주당으로 오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오버도 한참 오버하는 것”이라는 말로 한 대표의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마디로 판이 뒤집혀진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호남출신 우리당 의원들은 고 전총리 쪽을 향해 가기 위해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들썩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고 전총리 영입을 적극 주장해온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박차고 나가 고 전총리 쪽으로 몸을 맡길 태세이다. 이런 분위기가 일자 한 대표는 한발 물러서고 있다. 그는 “한국 정치의 틀을 다시 짜기 위해 민주당 중심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판세상 한 대표의 바람은 바람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한편 신당 창당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고 전총리 진영은 한나라당의 구도변화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권 경선이 과열돼 혹시라도 당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고 전총리 진영은 2002년 대선을 벤치마킹하는 전략도 세워 놓고 있다. 물론 결과는 깨졌지만 노무현 후보가 막판 정몽준 후보와 연대를 이끌어낸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상황변화에 따른 돌출변수 출현에 대한 대비도 빈틈없이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충교 kck196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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