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과 연예인의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끈끈해’진 것은 90년대 초반부터이다. 유흥가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은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소위 ‘약발이 받는’ 연예인들을 가까이 두었다. 특히 이들의 관계는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 방식을 철칙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테면 연예인들의 업소공연 대가로 조직은 방송이나 영화 출연 등을 보장해 주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 바닥에서 조폭이라는 말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다. 이들은 ‘기업인’으로 변신을 시도, ‘사업’을 배경으로 삼아 정계, 법조계 인사뿐만 아니라 연예계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 ‘벤처형’으로 이미지를 바꾸면서 ‘연예기획사’라는 간판을 달고 직접 연예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폭-연예인 커넥션’이란 용어가 자주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라고 연예계 동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말한다.
두 얼굴의 조폭 ‘연예계 장악’
이 바닥에 정통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뒤를 봐주는 조폭들은 ‘해결사’와 ‘투자자’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다. ‘해결사’는 소위 ‘깍두기’들을 동원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식이다. 지난 2000년 결혼을 하고 활동을 접겠다고 선언한 가수 C씨. 그는 은퇴 선언 바로 직후 소속사인 W연예기획사가 보낸 조폭 일당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폭력배 서너 명이 찾아와 “살고 싶으면 똑바로 하라”고 협박했다는 것. 이에 대해 W기획사의 실장은 “그 아이가 하도 뺀질거려서 약간 ‘손 본’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연예인들과 소속사 간의 계약문제로 인한 갈등 또한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말이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해 예의주시하는 수준이지만 ‘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소속사 측에서 조폭을 보내 연예인 기획사 사무실을 습격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집기가 박살나고 사무실이 난장판이 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일은 이제 예사라고 한다.
그들은 연예가를 소리 없이 장악하는 ‘투자자’의 모습으로 연예인에게 접근 한다. 지난 2001년 조폭 관련 영화로 히트를 친 S프로덕션 S대표가 대표적인 케이스. 그는 꾸준히 영화에 조폭 자금을 끌어들였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합작으로 연예사업 대박도
한 기획사 대표는 “S씨가 이익금을 투자자(조폭)와 나누는데 인색해 문제가 터졌다는 말을 관련자에게 직접 들었다”며 “처음엔 5대 5로 나누기로 했다가 투자자(조폭)측이 7대3을 요구해 갈등이 빚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상당수 연예인들은 조폭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과시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기 연예인 A씨는 조폭을 안전한 방패막이로 삼으며 연예계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서울 강남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폭 K씨와 중견 인기가수 S씨도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가수 K씨와 탤런트 O씨 등도 조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악어와 악어새’ 공생관계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은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밤무대가 생업의 수단인 연예인들과 조폭 사이에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며 “이들은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합법적인 사업에 있어서는 ‘공생’을 위한 동업자적인 면모까지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에는 조직의 검은 돈을 세탁하기 위해 연예계에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고수익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자 본격적으로 유흥업계에 연예인을 끌어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그들은 직접 자신이 운영하는 업소나 음식점에 연예인을 동원, 홍보를 부탁하기도 한다고. 연예인들이 조폭들이 운영하는 업소에 자주 왕래하면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고, 그 업소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들은 업소방문만으로도 대접 받고, 짭짤한 부수입도 벌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 전남 목포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폭 K씨와 가수 A씨는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한 친구 사이. 가수 A씨는 K씨의 처 명의로 운영되는 지방 모 유흥업소 개업행사 등에서 적극적인 도움으로 K씨에게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했다고 한다. 또한 전국 거대 폭력조직중 하나로 꼽히는 M파 행동대장 P씨가 자신이 임차해 운영하던 서울 강남 대형 고깃집을 주인인 유명 탤런트 L씨로부터 직접 인수했다고. 뿐만 아니라 국내 최대의 폭력조직 S파의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N씨가 지방 모 검찰청에 구속되자 연예인들을 동원해 해당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케 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아예 조직원으로 접수하기도
조폭들은 도박계, 사채업계까지 발을 뻗어 연예인들을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통 큰’ 연예인들은 도박을 해도 ‘뭔가 다른 판’을 원하고, 또 이를 즐기는 연예인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연예인들이 도박장에서 돈이 급해 조폭들로부터 사채를 끌어다 쓰면 회수율도 꽤 높다는 이유에서라고. 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가 약점인 연예인들에게 ‘언론에 폭로하겠다’는 협박은 그 어떤 강압적인 행동보다 주효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서로 간에 급전이 필요한 연예인이 누군지에 대한 정보가 절실, 이들을 연계하는 연예인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파문을 일으킨 ‘신촌이대식구파와 연예인이 손잡고 동료연예인을 상대로 고리사채를 썼다’는 보도는 이 같은 관계자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커넥션 입증 쉽지 않아
상황이 이런데도 ‘조폭-연예인 커넥션’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이 경찰의 얘기다. 경찰관계자는 “막상 조사에 들어가면 관련자들 모두 함구하기 일쑤”라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나 자백·진술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그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연예기획사와 조폭, 그 틈에서 ‘희생’을 무릅쓰고 ‘스타’가 되려는 연예지망생들 간에는 은밀한 커넥션이 존재해 그들 관계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얼마 전 발생한 ‘신촌이대식구파와 연예인 관련 보도’의 진상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그동안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경찰 조사결과 3년여 동안 막강한 세력을 키워 온 대규모 기업형 폭력조직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최근 신촌이대식구파 파문으로 두목 등 일당 수십 명이 검거됐지만 실제 조폭세력을 움직이는 배후인물은 절대 밖으로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법”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그는 “조폭은 틈만 나면 준동하기 때문에 계속 감시해야 한다”며 “만약 드러나지 않은 신흥조직 세력과 연예인들 간의 공생관계까지 따진다면 그 수는 엄청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조폭,가요계 가장 ‘선호’
조폭들에게 연예계는 고부가가치를 보장하면서 다른 사업 운영까지 도움을 주는 최고의 사업기반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라는 것. 조폭들은 연예계 중에서도 주로 가요계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유명 가수가 소속된 연예기획사와 손을 잡을 경우 합법적인 투자 명분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속 가수를 그들이 운영하는 야간업소에 쉽게 출연시킬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특히 조폭들은 자본력과 로비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연예기획사와 손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소형 연예기획사 지분을 확보한 조폭들은 언론 등에 전방위로비를 담당하고 고위 주요 인사들에게 뇌물 등을 제공함으로써 연예계 전반에 인맥을 넓혀 나갔다는 것. 연예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 거물이 ‘조폭 출신’이라는 얘기가 파다하게 나돌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조폭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연예인들이 영업사장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예계 핵심 관계자는 조폭’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조폭들은 영화계에도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금 조달과 전방위 로비뿐만 아니라 그들이 손잡은 기획사에 소속된 영화배우들을 출연시키고 가수들을 OST 음반 작업에 동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계에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고, 시사회장 등에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이들의 개입 여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수익 분배 문제로 마찰이 일었던 영화 <조폭마누라>나 <친구>는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 ‘조폭의 검은 돈이 유입된 것이 아니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과거 검찰에서는 연예계 비리수사에서 ‘조폭-연예계의 커넥션’에 대해 조사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몇몇 연예계 대표들은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이 사건은 마무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번 조폭과 연예계가 연루된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고 조용히 무마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커넥션의 끝은 어디일지, 실제 비리의 주인공은 누구일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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