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소송낸 것 아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때 잠을 못자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요. 그 일은 제게 치명적 아픔입니다.”인터뷰에 응한 한씨의 첫마디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비록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았지만 그의 얼굴 한 켠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기를 갖게 해주겠다’는 노씨의 제의에 그만 난소를 적출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나팔관까지 잃게 되었다는 한씨의 주장은 본지의 보도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져 있다.하지만 한씨는 그동안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적잖은 가슴앓이를 해왔다고 하소연했다.
한씨는 건강상태에 대한 질문에 “무척 안 좋아요. 프라이버시상 말할 순 없지만 지금도 많은 약을 복용하며 간신히 견디고 있어요”라고 답했다.인터뷰 도중 한씨는 노씨와의 일을 드러내는 것이 ‘여자로서’ 무척 힘든 일이었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너무 창피합니다. 저도 여자니까요. 여자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제 입으로 밝히기까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수천번 생각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한씨는 노씨를 상대로 5억원의 손배소를 냈고, 소송은 여전히 진행중으로 진위는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한씨가 ‘돈’을 목적으로 소송을 걸었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 이에 대해 한씨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나를 두 번 죽이는거나 다름없어요. 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고급 자동차를 5대나 굴릴 정도로 돈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갖고 있어요. 돈에 대해서는 미련없는 사람입니다.”한씨에 따르면 아이를 갖게 해주겠다는 노씨의 말에 속아 그간 날린 돈만 무려 7~8억원에 달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들인 경비 및 진료비 일체가 포함된 금액이다. 그러나 노씨를 무작정 믿은 자신의 잘못을 감안해 5억 소송을 걸었다는 것. 지난해 11월에야 소송을 낸 이유에 대해서 한씨는 “노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지난해 9월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98년 난소를 떼낸 이후, 저는 그를 줄곧 믿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말과는 달리 그는 어떤 시술도 행하지 않았어요. 바보같이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그를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던 거죠.”한씨의 말대로라면 그는 노씨를 만난 이후 무려 7년 이상을 속아왔고, 8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야 그의 ‘거짓’을 알게 되어 소송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진상규명 이뤄져야 할 것”
그렇다면 한씨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씨는 “진상이 밝혀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노씨가 자신에게 왜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아야겠다는 것.“수없이 생각하고 생각해봤어요. 내게 왜 그랬는지… 도대체 무슨 목적이었는지… 일부러 일본에서 온 내게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러나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 반드시 알아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어도 눈을 못 감습니다.”한씨는 난소를 적출당한 것보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간 노씨가 한씨에게 해왔던 거짓말과 그의 태도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씨에 따르면 노씨는 임신가능성을 묻는 한씨에게 “난소를 절제해 그 속에 있는 난소 세포를 이용, 정자와 수정시켜 임신하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막상 난소를 적출해놓고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절 연락조차 없었다. 노씨의 병원을 찾아가기라도 하면 노씨의 반응은 마치 빚독촉을 하러 온 사람 대하듯 냉담했다고 한다. “아예 제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더라구요. 무조건 시선을 피했어요. ‘빨리 이 병원에서 나가달라’는 표정이었죠. 연구 진행에 대해 묻자 안절부절못하며 얼굴색이 완전 보랏빛으로 변하더군요. 태어나서 그런 얼굴빛은 처음 봤습니다.”2005년 9월 7일, 기다리다 못해 노씨의 병원을 다시 찾은 한씨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고 한다.
“선생님, 제 난소떼서 연구한다는 거 말이에요. 너무 오래 지나지 않았나요?”라는 한씨의 질문에 노씨는 “어허… 이봐요. 그런 연구는 있을 수 없어요. 난소를 떼서 연구하는건 불법이에요”라고 하더라는 것.한씨는 “나는 의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노씨는 자신이 불임치료 분야에 있어서는 일인자라고 자신했어요. 환자가 의사의 말을 신뢰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노씨가 제게 그런 방법이 있다고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아무 문제없는 멀쩡한 난소를 떼어낼 이유가 있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노성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한씨는 인터뷰 도중 “노씨가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해줬더라면, 자신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 고통스러운 난소적출 및 의료과정을 겪을 일도 없었다는 게 한씨의 주장이다.“의료사고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잘해보려고 했다가 불행하게 일이 잘못 된 경우라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경우였다면 저는 눈물을 머금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겠죠. 또 처음부터 안된다고 말했더라면 저는 그냥 ‘엄마가 될 운명이 아닌가보다’라고 단념했을 겁니다.
그러나 노씨는 제 난소를 떼어낸 후 최소한의 어떤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단 한번이라도 어떤 시술이 있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는 처음부터 제게 아이를 갖게 할 의도도 기술도 없었던 겁니다.”한씨는 또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지난해 9월 7일에도 노씨는 나팔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며 “내가 다른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지 않았더라면 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나팔관을 ‘도둑질’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한씨가 다른 병원 의사로부터 받은 소견서에는 ‘자궁과 오른쪽 나팔관, 난소 정상. 왼쪽 부속기(난소 나팔관)가 제거술을 시술한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적혀있는데, 이 난관절제수술(나팔관을 떼어내는 수술)은 한씨 본인도 모르게 이뤄진 일이라는 것이다.
“검찰수사 바란다”
일반적으로 환자의 동의나 사전 통보없이 신체 기관을 적출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씨는 형사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씨는 그간의 사실관계가 기록되어 있는 46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법원측에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자료가 아직 한글로 번역이 안된 탓에 자료가 정리될 때까지 대기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한편 한씨의 소송건에 대해 노씨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씨는 “그쪽에서 법을 운운하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노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행해지기를 바란다”며 검찰수사를 촉구했다.
실제로 소송건과 관련, 노성일 이사장은 어떠한 반론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다. 16일 병원 관계자는 “이사장님은 현재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라 병원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당분간 병원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소송건에 대해서는 어떤 답변도 들은 바 없으며, 기자들과 연락도 원치 않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이제 한씨는 법의 심판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상태다. 검찰수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한씨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노성일의 실체를 알리고, 더 이상 나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한씨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제가 난소를 적출당하고 나팔관을 도둑맞은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더 이상 힘들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고통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씨측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이상 사실 규명은 검찰 수사를 통해서라도 분명히 이뤄져야 합니다. 또 노씨가 왜그랬는지도 저는 반드시 알아야겠습니다.” 한씨는 “이제는 용서할 단계가 지났다”고 말했다. “만약 노씨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고해도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럴 경우 나는 노씨에게 ‘내것(난소,나팔관)을 떼어갔듯이 당신 것도 떼놓고 나서 얘기하자. 동시에 의사면허증도 내놔라. 그리고 용서는 그때가서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 여성단체 무관심에 한때 ‘좌절’
한경춘씨는 노성일씨에 대한 감정이 ‘분노’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아무 원한도 없는 한 여성의 꿈을 짓밟고 기만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노씨를 만나면 제일 먼저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라고 묻고 싶다고 한다. 또 인터뷰 도중 한씨는 몇몇 여성단체들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냈다. 한씨는 그동안 여성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노성일씨의 행동에 대해 폭로하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여성의 인권보호에 앞장설거라 믿었던 여성단체측의 대답은 뜻밖이었다는 것.
“6개의 여성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대답은 한결같았어요. ‘노성일씨는 우리 단체의 목표가 아니다’라는 거였죠. ‘황우석건에 대해서만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노성일씨는 제게 서초구에 있는 하청부라는 곳까지 안내하면서 난자 매매를 권한 사람입니다. 분명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자로서의 부끄러움도 감수하고 노씨의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했음에도 여성단체들은 저를 도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말이나 됩니까?”한씨는 소수 여성의 인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황우석 죽이기’에만 집착하는 일부 여성단체 관계자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더없이 깊은 좌절감을 느껴야했다고 털어놨다. 한씨는 “저는 비록 재일동포지만, 한번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여성단체라는 곳도 제 편이 아니더군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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