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한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촛불혁명의 반대세력이 벌인 조직적인 저항이라고 판단한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십이분 활용하여 조국 법무부장관을 관철했다. 야당에게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논리의 비약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서히 데워지는 가마솥 안 개구리 신세 같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게 뜻하지 않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었으며, 정치생명의 연장을 위협받던 야권 인사들에게도 희망을 갖게 하였다. 앞으로 어떠한 정치적 결말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내년 총선에서 정부여당에게 얼마나 치명상을 주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결과의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귀결될 것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후에 야당과 야권인사들이 선택한 투쟁방법은 삭발의식이었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다. 그녀는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영입인사로 국회에 입성하여 재선을 하였지만, 지금은 야권의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반민주당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 되었다. 내년 총선에서는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 부산에서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유한국당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어필하기 위해 ‘아름다운 삭발’을 하였다.
그녀의 뒤를 이어 삭발 대열에 합류한 사람은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었다. 송파갑 선거구를 지역구로 둔 재선 의원이기에 지도부에 공천을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한 제스처(gesture)가 아닐까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칠순의 여성 의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결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높게 평가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제까지 진행되고 있는 야권인사 삭발의식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삭발이다. 그는 삭발을 통해 항간에 떠돌던 그의 머리카락에 관한 입방아를 단숨에 잠재우는 효과를 얻었을 뿐 아니라, 당대표로서의 정치력에 대한 의문부호도 어느 정도 지울 수 있었다. 야권의 대표적 대권주자로서의 위상도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그의 삭발은 일석삼조 이상의 효과로 전혀 밑지지 않은 장사를 한 셈이다.
필자는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삭발한 날 저녁, 일본의 유력 일간지 서울지국장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황교안 대표 삭발식 취재를 갔던 지국장은 기사를 송고하고 그 기사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응에 대응을 하느라 약속시간보다 늦게 왔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한국에서 정치인이 삭발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필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라며, 공자님 말씀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만큼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때 하는 의식 중에 하나가 삭발의식이라고 말해 주었다.
지국장에게서 돌아온 말, “그런데 머리는 누구나 다 자르잖아요.” 그러면서 던진 한마디, “일본에서는 보통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할 때 삭발을 하는데, 일본하고는 다르군요.” 순간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맞아, 황교안 대표는 아직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한 적이 없지!’
자유한국당의 릴레이 삭발의식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봇물 터지듯 계속되고 있다. 내년 총선전략의 일환으로 삭발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자유한국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고 한다면 작금의 삭발의식이 신선놀음은 아닌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나저나 이발소, 미용실이 걱정이다.
이경립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