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올해 4월초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JU(주수도) 리스트가 언론에 노출된 이후 재차 사행성 도박 동향 보고서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핵심 정보를 다루는 타 사정부서에서는 이번 보고서 유출이 국정원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보내고 있을 정도다. 이에 국정원은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고 있다. 하지만 검경측에서는 ‘안기부·국정원 도청 파문’, ‘전안기부 수장 구속’, ‘국정원 검찰 압수 수색’ 등으로 실추된 기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한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정원이 올해 7월에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사행성 게임장 폐해 문건(총 14p)에는 국내 도박의 폐해에 대해 얼마나 치밀하게 조사를 했는지 잘 나와 있다(박스기사 참조). 특히 도박장과 조폭 연계에 따른 서민들의 폐해, 세금 탈루 의혹 실상을 조목조목 예시하며 국가의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검·경과 조폭이 영업장과 유착된 의혹까지 제기하며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JU 리스트 주 회장 구속
지난 4월에도 국정원은 JU리스트를 언론에 공개해 결과적으로 주수도 제이유 그룹 회장을 구속시키는 데 일조한 바 있다. 제이유 그룹의 피해자만도 35만명으로 추정하고 있어 한때 민란도 예고된 심각한 사안이었다.
특히 `제이유그룹의 비자금규모 및 은닉 실태’ 보고서는 총 8쪽짜리 분량으로 JU 그룹의 불법 경영 및 비자금 조성 규모, 정관계 로비 실태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JU 리스트로 인해 검찰은 주 회장을 비롯해 JU 핵심관계자들을 구속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이 리스트에는 뇌물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정치권, 검·경 출신 그리고 공정거래위 위원들 수십 명이 나열돼 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리스트와 관련, 주 회장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수사에 진전을 보이질 않고 있는 형편이다.
국정원이 연이은 2건의 문건 유출로 인해 곤혹스런 입장이기는 하지만 내심 명예회복도 했다는 평도 받고 있다. 정보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국정원 불법도청, 안기부 수장 구속, 검찰의 압수 수색을 당하면서 국정원의 명예가 실추된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번 청와대 보고서나 JU 리스트로 인해 사회악을 일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평했다.
언론사, 보좌진 초청 홍보기능 강화
동시에 국정원은 부처 안보 정책에 대한 대언론 홍보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0일 국정원은 이례적으로 중앙언론 기자들을 국정원에 초청해 안보정세설명회를 가졌다.
출입기자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은 국정원은 국방부, 통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 중에서 국정원 담당 기자들 20명을 이날 초청했다. 행사에 참석한 17명의 기자들은 안보기념관을 방문하고 권총 발사, 국정원 고위간부와 오찬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선 이들에게 기념품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연례 행사’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타 정부기관에서는 대언론 홍보를 강화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편 1인당 50만원 상당액의 예산을 책정했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 국정원 행사 담당자는 “황당하다”며 10분의 1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국정원은 여야 정보위 소속 보좌진들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난 17~18일, 30~31일 1박2일 일정으로 백령도에 초청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작년 8월에 이어 올해에도 가진 정기 행사”라며 “안보 시찰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보고서 고의유출 ‘아니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이 연이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되는 명예회복을 위한 ‘고의 유출’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국정원 한 간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행성 도박 동향 보고서 유출과 관련 “국회 정보위에서 그런 문건이 있었다는 점은 (김승규 국정원장도) 인정했다”면서 “그러나 국정원이 작성했다느니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흘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해명했다.
또 그는 국정원은 지난 7월에 청와대에 보고했느냐는 질문에 ‘확인도 부정도 해줄 수 없다’(NCND, Neither Confirm Nor Deny)고 답변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2004년 청와대에 사행성 게임의 문제점을 보고했다는 한나라당 정보위원들의 주장에 대해 29일 보도 자료를 통해 2004년 8월에 불법 사행성 도박행위에 대한 정보 보고, 2005년 9월 사행성 도박근절 대책 강구, 2006년 1월 사행성 도박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관련부처에 정보를 지원한 사실을 시인했다. 또 국정원은 2004년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정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점은 부인하면서 2006년 들어 사행성 도박의 폐해와 관련된 동향보고를 청와대에 한 바는 있다고 시인했다.
# 국정원 사행성 도박 동향 보고서 핵심 내용
탈루, 조폭·검경 유착 등 상세하게 지적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총 14페이지로 구성된 사행성 도박 동향 보고서에는 성인 오락실, 사행성 PC방, 카지노 등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서민층의 호주머니를 털어 삶이 피폐화된 예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현재 구속된 서방파 부두목의 카지노 운영, 영광파 중간보스의상품권 유통망 장악 등 구체적인 인사를 거론하면서 조폭의 개입 정황을 나열했다.
보고서는 성인 오락실, 사행성 PC방, 카지노 등 3분야로 나뉘어 있다. 각 업종별로는 ▲ 시장동향 ▲ 영업실태 및 파급영향 ▲ 폭력조직 개입 실태 등 구체적인 사례를 적어 즉각적인 검찰수사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 성인 오락실과 관련 폭력조직 개입 실태 부분에 있어 칠성파, 영광파, 태촌파 등 조폭들과 기존 게임업자들의 결탁, OO문화상품권 김OO파, 다음상품권 조폭·사채업자 출신의 OOO, 교육문화상품권 OO지역 조폭 개입 등 상세히 적었다.
사행성PC방, 도박공화국 ‘일조’
성인오락실뿐만 아니라 사행성 PC방의 폐해도 심각한 것으로 보고됐다.
2006년 4월 게임산업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성인오락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성인 PC방 도박장이 성행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성인오락기보다 사행성이 훨씬 강해 2~3개월이면 투자원금은 물론 수억원의 돈을 벌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기존 오락실이 업종전환을 서둘러 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확산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게임장은 1시간에 최대 투입금액이 9만원인 반면 PC방의 포커 바둑이의 경우 1,000원짜리 게임 선택시 3~4분도 걸리지 않아 한판에 수십~수백만원이 오가며 최대 1,000만원까지도 가능하다. 또한 24시간 영업이 가능해 도박 중독 위험에 노출돼 있는 형편이다. 특히 단속을 피하기 위해 사이버머니를 바로 돈으로 지불하지 않고 경품 상품권 취급 대신 남은 사이버머니에 대한 쿠폰을 프린트로 발급해 주고 인근 환전소에서 10%의 수수료를 받고 현금을 지불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만4,000여개 PC방 중 이미 5,000여개 이상이 불법 온라인 도박 게임을 취급하고 있다며 기존 오락실 업종전환 및 신규개업 업소를 포함할 경우 6월말 현재 1만 여개가 성업중이라고 보고서는 추산했다. 또 보고서는 업소별로 차이가 있지만 일일 매출이 보통 500~2,000만원으로 하루평균 업계전체 매출이 1,000억원에 달하며 시장규모가 연간 30~40조원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한편 보고서는 단속이나 처벌을 받는다 해도 얼마간의 벌금(500~2,000만원)만 내면 그뿐이라 단기간 내에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주로 고스톱, 포커, 바둑이, 바카라, 블랙잭 등의 특정 업체가 온라인 도박게임을 만들고 가맹PC방을 모집해서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카지노바, 베테랑 딜러 월 3,000만원 받아
성인오락실이나 사행성 PC방 보다 폐해는 적지만 도심을 중심으로 카지노바, 카지노카페, 카지노 호프 등도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 업소도 적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남의 대형업소의 경우 한때 멤버십 전략으로 24시간 영업을 하며 하루 입장객만 500여명에 1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업소까지 등장, 초기에 1,000여개가 성행한 적도 있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최근 성인 PC방의 인기로 많은 업소들이 문을 닫아 청담·역삼·압구정동 등 강남 일대 부유층과 유흥가를 중심으로 500여개 업소가 회원제 방식으로 음성적인 영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고객들은 중소기업사장, 유통업자가 많으며 여성손님의 경우 스폰서가 있는 연예인, 모델, 룸살롱 마담 등이 단골 고객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특히 이 보고서는 도박장 수익은 전액 누락하고 위장허가 받은 음식료 영업만을 매출액으로 신고하고 있어 엄청난 세원 누수현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특히 최고 베테랑급 딜러들은 월급이 3,000만원수준이고 고객 몰래 속임수(일명 볼랙)까지 쓴다고 언급돼 있다. 특히 보고서 내용 중 강남의 M 카지노바는 야간에만 영업하는 관행을 탈피, 24시간 영업을 한다며 검·경과의 유착 의혹도 제기했다.
카지노바의 사행성이 높은 게임은 ‘바카라’로 게임당 10만원~200만원, 20만원~300만원, 50만원~500만원의 3등급으로 나뉘어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준>
홍준철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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