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농출신 경남 의령의 수재’ 장관직 뛰어넘어 서울시장 꿈꾸다
‘빈농출신 경남 의령의 수재’ 장관직 뛰어넘어 서울시장 꿈꾸다
  • 정혜연 
  • 입력 2005-06-01 09:00
  • 승인 2005.06.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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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기업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CEO에서 정부부처 수장으로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한 사람. 바로 진대제 정통부 장관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진 장관은 사령장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에 휩싸여 위태로워 보였지만 현재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가장 오랫동안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다보니 이런 표현이 어울릴 법도 하다. 요즘 그런 그가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삼성전자 재직시절 받았던 스톡옵션이나, 그가 이끌고 있는 정통부와 관련된 일 때문이 아니다.

그가 오는 2006년 5월로 예정된 서울시장 투표에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업계에서는 진 장관이 이명박 서울시장의 뒤를 이어 서울시의 수장을 맡기 위해 슬슬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또 만약에 그가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경우,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시장을 맡는다는 것은 곧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이 곧 정치권 진출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이런 얘기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일부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국가 IT수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정통부 일만 계속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통부측의 이런 부인에도 불구하고, 요즘 그의 행동을 보면 오해를 사기에 딱 맞다.

진 장관은 지난 5월 2일에는 그의 모교인 경기고등학교 출신 장관·국회의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이례적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과연 그는 ‘삼성CEO-정통부 장관’에 이어 ‘정치권’에까지 진출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진대제 장관의 앞에 붙는 호칭은 여러 가지다. 그가 비록 공직에 몸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를 ‘진 박사’라고 부른다. 또 그가 삼성전자에 재직하던 시절 쌓아두었던 위업을 그리워하는(?) 몇 몇 사람들은 ‘진 전 사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물론 현재 그에게 가장 걸맞는 호칭은 ‘진 장관’이다.

진박사, 진 전사장, 진장관…호칭도 각양각색

진 장관은 1952년 1월20일생으로 올해 53세다. 그는 당대 최고의 명문인 경기고등학교,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77년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곧장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진 장관은 미국의 명문인 MIT에서 다시 전자공학 석사를 받았고, 이후 미국 서부지역으로 옮겨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력을 보면 최고의 엘리트코스만 골라 다닌 셈이지만, 사실 그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 장관은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애착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에도 몇 몇 지인들이 그를 두고 ‘진 박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의 학자적인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의 주위에는 학계에 몸담고 있는 선후배들이 참 많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준 서울대 전기과 교수 등은 모두 그가 학창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지인들이다. 이들이 전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진 장관은 말 그대로 자나깨나 반도체만을 생각해온 ‘반도체 맨’이란다. 진 장관의 후배인 박영준 전기과 교수가 전한 일화 한 가지. “벌써 수 십년은 넘은 얘기다. 진 박사는 학부를 마친 이후, 곧장 석사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학교 연구실에서 밤을 새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다보니 그는 유난히도 후배들을 잘 챙기고, 함께 어울렸다. 진 박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하루는 학교 실험실로 편지를 한 통 보냈다. 다들 모여서 편지를 같이 읽었는데, 본인의 얘기는 하나도 없고 전부 반도체에 대한 얘기뿐이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유난히도 공부를 잘했던 그. 그의 직장생활이 시작된 것은 그가 박사학위를 받기 전부터였다. 그는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미국의 휴렛패커드(HP)의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IBM왓슨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IBM왓슨 연구소는 이공계를 졸업한 학생들이 가장 취업을 희망하는 연구소 중 한 곳이다.

자나깨나 반도체만 생각한 ‘반도체 맨’

그리고 진 장관 개인으로서는 바로 이 때가 그의 인생에 변화가 온 때였다. 삼성과의 인연이 시작된 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85년, 그의 나이 33세였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직접 스카웃한 인재다. 요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말하는 ‘S급 인재’ 의 전신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고 이 회장의 사위였던 정재은씨(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남편)가 당시삼성전자 부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대학 후배인 진 장관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진 장관은 고 이 회장이 ‘삼고초려’를 한 끝에 삼성에 입사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그 역시 외국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거나, 학계에 남을 생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의 스탠퍼드대 동창인 오세정 물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진 장관은 항상 유학시절부터 한국의 산업 분야 발전을 위해 지식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삼성과 진 장관의 ‘유쾌한 만남’은 이때 시작됐다.

아직도 몇 몇 삼성 사람들은 진 장관에 대해 ‘진 전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삼성그룹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가 삼성전자에 재직하던 당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천재형 인간이었다고 한다. 진 장관은 삼성에 재직하는 동안 모든 인사 기록을 갈아 치웠다. 그는 회사에 입사한 지 7년 만인 지난 92년 삼성전자 메모리본부 제품개발센터장 겸 상무이사를 했고, 4년 만에 삼성전자 부사장, 또다시 4년 만에 삼성전자 정보가전총괄담당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다음은 진 장관과 함께 근무했던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가 전하는 얘기. “진 전 사장은 일반 직원들에게는 하늘같이 까마득한 존재였다. 특히 프로젝트를 한 번씩 진행시키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성격 덕에 밤잠 설쳐가며 일한 적도 많았다.” 진 장관은 어느새 삼성의 ‘간판스타급 CEO’로 명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그가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을 하고 말았다. 바로 정부 관료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

삼성시절 인사기록 갈아치워

지난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는 첫 번째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진대제 전 사장을 앉혔다. 그러나 진 장관은 정통부 청사에 출근한 지 며칠 만에 장남 상국(27)씨의 병역기피 의혹 문제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상국씨는 진 장관이 미국 MIT 석사과정에 있을 당시에 얻은 아들이다. 상국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택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진 장관은 채 그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당시 정계 및 재계에서는 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었으나, 그는 이를 딛고 현재 노무현 정권의 ‘최장수 장관’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 것. 하지만 그의 정통부 장관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 그는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전에, 정통부 관료들을 다루는 방식으로 인해 관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사기업에 있던 분이다 보니 처음에는 공무원들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의욕이 너무 앞서 직원들이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지독한 ‘워커홀릭’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이런 의욕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장관초기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다소 엉뚱하기도 한 그는 요즘에는 또 다른 영역에까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정치권 진출설이 솔솔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진 장관은 지난 5월2일, 일본의 ‘독도망언’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독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가 정통부 장관의 자격으로 독도를 방문한 공식적 목적은 이동전화 및 인터넷 서비스 현황을 살펴보기 위한 것. 진 장관은 독도의 바위 위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서비스 현황을 직접 살피기도 했다. 물론 그의 이런 행동은 정통부 ‘수장’의 자격으로 이뤄진 일이지만, 외교적 문제로까지 번질 뻔했다. 당시 진 장관의 행동을 본 일본 정부에서 강력하게 항의 하고 나섰기 때문. 물론 이 문제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진 장관의 ‘대외적인 활동’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는 시각을 보냈다.

이 날, 진 장관은 독도에서 돌아오자마자 경기고 출신 장관·정치인 모임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이 자리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유인태 열린우리당(이하 열우당) 의원, 신기남 열우당 의원 등 소위 말하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이 함께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진 장관은 지난 16일 ‘성년의 날’을 맞아 문희상 열우당 의장과 함께 20대 청년들과 미팅을 갖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가 단순히 정통부의 수장으로서 ‘IT사랑’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민간 대기업 CEO와 정부 관료, 정치권에까지 진출하는 독특한 기록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진대제 장관 부인이 전하는 얘기
- "가족들이 독점할 수 있는 사람 아니다”



워커홀릭 ‘남편’과 ‘아빠’를 둔 가족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진 장관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해인 1977년, 김혜경씨와 결혼했다. 연애결혼이었고,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진 장관의 부인인 김혜경씨는 성격이 무척 조용하고 조신한 한국의 전형적 내조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언론에 딱 한 번 공개된 적이 있었다. 진 장관이 정통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아들의 국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지난 2003년, 모 여성지와 잠시 만난 것. 김 씨는 남편에 대해 “나와 아이들이 독점할 수 있는 내 몫의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 장관이 워낙 바쁜데다 굵직굵직한 일을 하다보니 가정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을 자제했다는 얘기. 당시 김씨를 인터뷰했던 이 아무개 기자가 전하는 후일담이다. “김씨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였다. 한사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그에게 차 한잔만 달라는 말로 어렵게 집에 들어갔는데, 집 인테리어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실 한 편에는 가죽소파가 하나 있었는데, 가죽이 헤지고 낡아서 손으로 슬며시 한 번 만져봤을 정도다. 부인 김씨 역시 질문에 대해 간단한 답변을 했지만, 전혀 가식이 없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무척 특이한 점은 거실에 무척 큰 사이즈의 TV가 2대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진 장관이 삼성전자 정보가전 분야를 총책임지다보니, 유난히도 가전 기기에 대한 애착이 깊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진 장관은 삼성에서 정통부로 이색적인 ‘변신’을 한 이후에도 옆 집 아저씨같은 소탈한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례가 바로 컴퓨터 게임 대결을 신청했던 일. 그는 공식석상에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넥슨의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을 본인이 굉장히 즐겨한다고 말하며, 게임업체들을 관장하는 문화관광부의 정동채 장관과 게임을 한 판 해보고 싶다고 말을 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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