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코와 춤이 흐르는 옛 카바레의 정취가 숨쉬는 곳
탱코와 춤이 흐르는 옛 카바레의 정취가 숨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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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7-28 09:00
  • 승인 2006.07.28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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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레. 언젠가부터 잊힌 이름이다. 카바레하면 무명 가수의 섹시한 음색의 노래와 펑펑 쏟아지는 사이키 조명아래 춤추는 남녀의 모습이 연상된다. 대중문화의 당당한 한 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딱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처럼 지난 시절에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이제는 한 두 곳만을 남기고 미인클럽, 북창동식 단란주점 등의 유흥업소로 업종을 변경했다. 인천의 대표적인 유흥지역인 석바위에 위치한 금강산나이트카바레에 가면 추억어린 분위기의 카바레를 만날 수 있다.카바레하면 <자유부인>을 떠올린다. <자유부인>은 지난 1954년 발간된 소설로 카바레 탄생과 때를 같이한다. 카바레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유흥업소를 처음 여성 그것도 기혼여성의 공간으로 넓힌 것이다.

당시 여성들에게 카바레는 일종의 해방의 공간이었다. 동시에 타락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영화‘바람의 전설’의 무대는 카바레이다. 탱고 리듬에 맞춘 영화배우 이성재와 박솔미의 화려한 춤 솜씨는 스크린을 압도한다. 스토리는 우연하게 접한 춤에 빠진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카바레가 불륜이나 퇴폐의 장소가 아닌 문화의 장소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TV가 보급되기 전까지 특급 가수에서부터 삼류 가수까지 밤무대를 통해 자신의 끼를 발산했다. 밤무대라는 쇼 문화를 통해 일본 대중문화를 이끌어 온 셈이다. 이런 문화가 시대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있다. 인천의 금강산나이트카바레가 그 맥을 잇고 있다. 금강산카바레를 경영하는 김원갑 회장은 미인클럽, 성인클럽, 성인나이트 등에 밀려 사라지는 카바레를 지키고 있다. 김 회장은 “밤무대라 불리는 카바레와 나이트의 쇼 문화 역시 일반 대중문화에 비해 저평가돼 왔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유명 가수들이 이곳을 활동무대로 이용했다.

당시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이 최고 인기였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이 카바레와 인연을 맺은 것은 60년대. 당시 밤업소는 연예인을 길러내는 창구역할을 했다. 연예계에서 매니저활동을 하던 그는 연예인이 밤업소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카바레와 인연을 맺었다. 80년도 TV시대가 도래하면서 연예계 진출의 창구 역할을 하던 카바레 역할도 사라진다. 오히려 밤무대에 출연하는 2류 연예인이란 불명예 꼬리표를 달게 된다.그렇다고 밤무대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수 인순이, 박명수 등 재기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방송 활동이 없을 때에 밤무대에서 활동을 하면서 절치부심했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60년대 <허무한 마음><미워하지 않으리>등을 히트시킨 원로가수 정원은 “카바레는 60년대 연예인들이 활동하던 무대였다. 이곳을 통해 수많은 스타가 탄생됐다”고 말했다.금강산카바레는 60~70년대 유명가수가 매일 출연하고 있다. 7월 27~30일까지 한해진, 김미성, 정원, 이철호, 장동건 등이 출연한다. 또한 밤업소 업계에서 유명한 김영섭 악단이 반주를 맡고 있다. 요즘 카바레에서 보기 힘든 6인조 벤드이다. 때문에 음악이 다른 카바레와 차별이 된다는 평가이다.한마디로 끼 있는 춤꾼들에게 금강산 카바레의 음악은 정평이 나있다. 매일 저녁 넘쳐나는 춤꾼들로 여타 카바레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불륜이나 퇴폐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카바레 032-9990-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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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 2020-02-22 13:20:31 211.34.8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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