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박근혜 체제’로
그러나 박 대표는 본인의 정상적인 임기를 마치고 당권-대권 분리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결국 내년 지방선거는 현 주요 당직자를 중심으로 한 ‘박근혜 사단’의 주도 하에 진행시키겠다는 얘기다. 이러한 박 대표측의 움직임에 반박세력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박근혜 견제’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우선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과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는 당 혁신안 통과를 위한 연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혁신안에 대한 난상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달 말 연찬회를 겨냥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18일 모임을 갖고 혁신안 공동 추진과 공동 대응에 의견을 모았다.
발전연의 김문수 이재오 홍준표 박계동 의원 등과 수요모임의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박형준 의원 등이 이 모임에 참여했다. 문제는 이들 내부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수요모임의 한 관계자는 “수요모임이나 발전연 멤버들 가운데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많아 지도부가 내 놓을 타협안에 손을 들어줄 멤버들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도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타협안이란 2006 지방선거 이후인 7월에 전당대회를 개최한다는 게 골자다. 지방선거 이전 혁신안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당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된 공천 관행이 지속된다.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선 지방선거 출마를 점치는 전현직 의원들간의 신경전도 감지된다. 누가 박 대표에게 잘 보여 공천 심사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하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예비 후보들의 반박성향
혁신위원회 한 관계자는 “혁신안에 대한 지방 순회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으나 부정적 기류가 우세하다”고 전했다. 게다가 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까지 나서 혁신안 통과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혁신안 도입에 대한 당내 전반적인 분위기도 좋지 않다. 혁신안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모 의원 역시 박 대표와의 타협을 통해 혁신안 관철에 대한 의지를 접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는 모 지역 광역단체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으며 여론조사에서도 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사단’이라 불리는 현재의 주요 당직자들과 함께 내년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박근혜 대세론’은 더욱 굳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친박성향의 인사들이 지방선거에 대거 당선된다면 대선 후보 경선까지 무사통과다.
각 당 계파별 단체장 의석수는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을 좌우해 왔다. 박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가 지방선거 이전 혁신안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한나라당내에서 광역단체장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 후보들의 성향이 대부분은 반박성향이다. 특히 차기 대권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와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서울시장 출마를 타진하고 있으며, 차기 경기도지사를 노리는 예비 후보들 역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또한 한나라당 텃밭이라 할 수 있는 영남 지역에 출마를 타진 중인 모 의원 역시 반박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박 대표의 입장에서 지방선거 이전 혁신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권으로 가는 길목에 손수 걸림돌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2002 대선 비사 등장
박 대표측이 구상하는 지방선거와 관련, 한나라당 내부에선 ‘전략 공천’에 대한 소문도 돌고 있다. 지역주의 타파와 차기 정권 창출을 ‘명분’으로 내세워 적합한 인물을 공천한다는 얘기다. 호남 출신 인사를 적극적으로 추천, 호남 민심을 끌어안는다는 게 구체적인 방향이다.실제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의원회관 사무실에서는 ‘전략 공천’에 대비한 물밑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차기 대권 주자와의 역학구도를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특히 혁신안을 주도해온 인사들이 대부분 친이명박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은 전략 공천 소문이 소문에 그치지 않고 사실로 드러날 것이라는 주장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다. 결국 ‘박근혜 대권 프로젝트’의 한 단면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2002 대선 비사(秘史)가 다시 등장해 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회창 후보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한나라당 모 광역단체장이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대선 비사의 골자다. 한나라당 텃밭이라 할 수 있는 광역시였음에도 실제로 여권에 표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 당시 한나라당 내부에선 문제의 광역단체장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전략 공천 소문이 확산될수록 혁신안 주도세력과 이 시장 계파들의 움직임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 돌아온 노무현 사단의 엇갈린 행보
최근 사면 복권된 ‘노무현 사단’의 핵심 멤버라 할 수 있는 정대철 전 의원과 이상수 전 의원의 행보가 엇갈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들이라는 점에서, 사면 전부터 모종의 역할이 주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정 전 의원과 이 전 의원은 현재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정 전 의원측은 “아직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형집행정지 상태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 중이던 정 전 의원은 지난 15일 퇴원했다. 이튿날 부인과 함께 지방 여행에 나섰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정 전 의원은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둘 것이라는 게 정 전 의원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수감중 읽었던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독서일기’ 형식의 글로 엮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 정 전 의원의 경우 굿모닝시티로부터 받은 4억원이 정계 복귀에 있어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반면 이 전 의원은 적극적으로 원내 진입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오는 10월 재·보궐선거가 점쳐지는 경기 부천에 변호사 사무실을 마련했으며, 바닥 민심 다지기에 나설 태세다. 이 전 의원의 경우 지역구였던 서울 중량갑을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이화영 의원에게 물려준 탓에 지역구 물색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이 전 의원은 노 대통령과 오찬 등을 비롯해 여권 인사들과 빈번하게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정 전 의원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 전 의원의 정치 재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말로 이 전 의원의 정계 복귀를 만류했다는 전언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