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표현 마뜩치 않다
「백의종군」 표현 마뜩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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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9-07 10:49
  • 승인 2010.09.07 10:49
  • 호수 854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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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십 년 만의 40대 기수론이 불과 21일 만에 형편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국민들 ‘신선한 충격’파가 채 가라앉을 새 없이 ‘아연한 충격’에 빠진 결과다. 8.8 개각이 실패로 끝나면서 집권 후반기 첫 내각 개편에 뼈아픈 좌절을 겪은 이 정권의 ‘심리적 충격’ 또한 클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존중하고 야당과의 갈등을 해소한 것은 앞으로 국정 수행에 장애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자산과 힘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김태호 총리 지명자를 포함한 후보 세 사람이 더 늦지 않게 사퇴한 것은 다행스러웠다. 공직자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거짓말이 수없이 반복되고, 위장전입, 투기, 탈세, 공? 사생활의 혼돈 등 후보자들이 남긴 의혹은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심지어 어떤 후보는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이미 청와대 검증팀에 알렸었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 인사 검증팀이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도덕적 결함 사실을 알고도 내정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일만 잘하면 된다는 ‘실용주의’의 산물 아니었나 싶다. 특히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권력에 의한 인위적인 세대교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입증한 역사가 됐다.

이 정부는 집권 초기 ‘강부자’ ‘고소영’ 내각 소동으로 곤욕을 치르고 장관 후보자들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줄줄이 낙마하는 면역이 쌓인 정권이다. 지난해 또 다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하자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한다고 요란법석을 떨었던 터다. 이런 정부가 정권 후반기의 첫 개각을 그런 식으로 했다. 조그마한 기업 체계도 그 정도 시행착오를 거치면 완벽히 변신해낼 것이다.

여권은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소통과 자성의 의미로 대폭 개각을 예고했었다. 만약 7.28 재보궐선거 마저 여당이 패했다면 권력의 자만이 여실하게 드러난 이번 같은 정부 인사는 단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내 편에서만 인재를 찾는 편협함도 덜 했을 것이다. ‘김태호 카드’같은 깜짝 인사로 국민을 놀라게 하는 일은 애초 없었을지 모른다.

김태호 씨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 이상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후보직을 사퇴하며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 억울하지만 백의종군 하겠다는 김태호 씨가 ‘백의종군’의 말뜻을 모를 리 없다. ‘백의종군’은 벼슬 없이 나라를 위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간다는 뜻이다. 즉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아무 댓가 없이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 한 몸을 바쳐 희생하겠다는 호국의 의지를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과연 김태호 씨가 그런 표현을 할 자격이 있는지? 마뜩치 않다. 그는 은행법, 공금회령,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위증, 공직자윤리법, 공직선거법, 지방공무원법 등 8개항의 법을 위반해서 야당으로부터 당장 고발당할 처지였다. 그가 청문회장에서 보인 태도는 우선 발뺌하고 강하게 부인하다가 증거를 들이밀면 막다른 골목을 못 피해 시인하는 행태였다.

사퇴 기자회견에서까지 “잘못된 기억으로, 정말 잘못된 기억으로 말실수가 되고, 또 더 큰 오해를 산 것”에 불과 하다느니 하는 핑계로 일관했다. 이런 사람의 ‘백의종군’ 의미를 공감하고 이해하겠다는 국민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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