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쪽은 북한 쪽이다
급한 쪽은 북한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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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2-09 09:32
  • 승인 2010.02.09 09:32
  • 호수 824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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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위한 만남, 원칙 없는 만남은 안 된다’는 남북 관련 이명박 대통령 소신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억측이 난무했다. 지난해 초부터 남북 물밑 접촉설이 흘러나왔으나 심드렁해 했던 정부였다. 그랬던 이 정부가 갑자기 남북 정상회담에 피치를 올리는 것은 ‘빌 클린턴’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평양에 들어가 140여 일 동안 북한에 억류돼있던 미국인 두 여기자를 대동하고 귀국하던 장면이 모두의 눈에 선할 것이다. 거기에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고 돌아오는 이 대통령 모습을 포개볼 만하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겐 경제난을 해소하고 북미관계 진전에서 남북 변수를 제거코자 하는 분명한 이해관계가 놓여있다.

회담 성사여부는 역시 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통령과의 대화’ 때 제시한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가 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은 원칙의 합의로 끝날 일이겠으나 국군포로 문제나 납북자 관련사항은 단박의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게 된다. 회담 후 국군포로나 납북자 몇 명을 데려 올 것이라고 치면 북에 대한 경제지원을 못마땅해 하는 소리는 분명 잦아들 것이다.

그러나 급한 쪽은 심한 경제난과 후계 승계 작업으로 시간에 쫓기는 북한 김정일 쪽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진전 없는 남북관계가 타개될 수 있는 여건이다. 그동안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이 이 대통령의 냉전적 대북관을 질타해온 터다. 이를 만회할 수 있는 호기가 북한 땅에 무르익어 있는 셈이다. 현 정권은 역대 두 번 정상회담을 ‘대북 퍼주기’로 규정했다. 그런 만큼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소극적일 수는 있으나 호기마저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붕괴 직전은 아니다”라는 대통령 말대로 북한 실체는 뚜렷하다. 어떤 차원이든 남북한 간 대화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남북 최고 지도자가 직접 마주앉는 자리가 많으면 국민이 덜 불안하기 마련이다. 북한의 도발행위가 줄어들 것이니 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이 사흘이 멀게 의도적인 불안 조성을 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대화를 채근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남북한 사이에 상시적인 대화기구가 마련돼야 한다”며 현 남북관계 구도의 변화를 언급했다. 1월 28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조만간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는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 같은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 됐다.

대신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 전제하에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칙을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확고한 원칙아래 추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원칙이 충족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원칙을 지키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는 표현을 했다.

이만하면 대화를 채근하는 북한에 대한 충분한 화답이 된 것 같다. 정상회담의 급한 쪽이 틀림없는 북한쪽이다. 김정일은 이미 남측의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송환 또는 고향방문 요구를 들어줄 채비를 끝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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