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표의 발언은 세종시 수정의 옳고그름을 떠나 오랜만에 정치인으로부터 듣는 믿음직스러운 소신 피력이고 ‘신뢰’를 중시하는 정도(正道)의 언어이다. 그의 세종시 수정 반대는 제 2 행정도시의 효율성을 따지기 전에 정치인으로서의 ‘신뢰’ 문제를 제기하였다는데서 의미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 당시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는 세종시에 터닦는 불도저 소리가 요란하고 원주민들의 이주가 진행되는 마당에서 원안을 뒤집엎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약속’을 깨는 것이고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충청권 주민들은 “세종시가 경상도나 전라도에 있다면 이렇게 쉽게 뒤집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울분을 터트린다.
어느 인기 소설 작가는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백지화 반대 발언을 “변형된 포퓰리즘의 하나“라고 빈정댔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반대 발언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반대하며 ‘신뢰’를 되살리려는 소신 표출이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충청권을 제외한 경상·전라·경기·강원·서울 등 다수 주민들의 세종시 백지화 지지 여론에 맞서며 소수를 대변한 용기있는 항변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에 맞서는 행위를 포퓰리즘으로 볼수는 없다. 반대로 다수를 등에 업고 박 전 대표를 포퓰리즘으로 몰아대는 태도야말로 “변형된 포퓰리증의 하나”로 간주된다.
만약 이 대통령이 세종시 건설을 “양심상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악수(惡手)로 간주하였다면 대선 유세시 선거이슈로 내걸어 국민의 심판을 받았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대선때는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고 취임한지 1년반만에서야 “양심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갑자기 딴소리 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기에 족한 태도바꾸기이고 비굴한 짓이다. 이 대통령의 신뢰도 추락은 10월28일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서 여지없이 반영되었다. 한나라당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완패를 당했다는데서 그렇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세종시를 포항이나 구미 처럼 자생력이 있는 생산기지로 키우고 싶다면 세종시 원안을 축소할게 아니라 거기에 포항과 구미 요소를 추가하면 된다. 교육과학부와 환경부 등 중앙행정기관 9부2처2청을 계획대로 옮기고 자생력있는 환경을 보완해주면 된다. 더욱이 세종시를 축소하게되면 추진중인 혁신도시(중부신도시)도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국가 균형발전 원칙에 위배된다.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되어야 한다.
박 전 대표의 굽힐 줄 모르는 소신 피력은 1980~90년대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대처 총리는 여자로서 강철같은 소신 정치로 ‘철의 여인’ ‘철의 나비’라는 애칭을 들었다. 그는 소신 정치로 영국을 고질적인 ‘영국 병’으로부터 구해냈다.
박 전 대표도 소신과 ‘신뢰’ 정치를 통해 기회주의와 배신이 판치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 한국의 ‘철의 여인’ ‘철의 나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이 땅에서도 소신과 ‘신뢰’가 지배하는 선진 정치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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