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어 떼는 사람들이 쳐놓은 온갖 그물을 피하고 천적의 습격을 헤쳐 나오는 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살아남은 행렬이다. 목숨 건 여정을 거듭하면서 악전고투 끝에 다시 모천(母川)의 남대천 품에 안긴 연어만이 번식의 기회를 얻는다. 통계적으로 1백 마리 치어 가운데 겨우 한두 마리 정도가 살아 돌아온다고 한다. 모든 연어에게 공평한 번식의 기회를 주지 않는 자연의 섭리가 이처럼 냉혹하다.
연어가 정확하게 제 태어난 곳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에 관한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선천적으로 하천을 감지할 수 있는 유전능력을 가졌다는 설과, 후천적으로 어릴 때 익힌 하천의 냄새를 기억하여 회귀한다는 설이다. 모진 여정 끝에 귀소에 성공해서 산란의 임무를 다한 암수 연어는 보통 3일 만에 상처투성이로 기진맥진 한 채 숨을 거두게 된다. 모험으로 가득찬 연어의 여정이 끝을 맺는 순간이다.
사람에게도 분명한 귀소본능이 있다.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은퇴하면 귀향해서 말년을 보내고 싶은 회귀본능이 클 것이다. 우리 명절 때마다 일으키는 민족 대이동 행렬이 인간 귀소본능의 절정판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이 회귀 본능은 뿌리 찾기와 한 맥을 이룬다. 하는 일 가는 길이 다 달라도 사람 사는 세상이 뿌리를 잊지는 않는다. 우리에겐 망국의 지역갈등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연유가 됐다.
우리 정치가 이를 부추겨서 정권을 창출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부인 못한다. 지역 패거리 정치가 아직까지 종횡무진이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 때는 호남 없이 국가 없다는 ‘무호남 무국가’의 호남 극찬론이 일어났다. 누더기가 돼버린 ‘햇볕정책’을 호남 결집으로 살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다가선 초겨울에 필생의 여정을 끝내고 산란의 마지막 숭고한 임무를 위해 목숨 걸고 양양 남대천에 몰려드는 장엄한 연어 떼의 귀소본능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이 달 11월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합중국 역사 2백32년 만에 첫 유색의 흑인 혼혈 대통령이 탄생했다. 인종 차별하는 못난 ‘뿌리 찾기’를 단호히 배격하고 나선 미국 국민들을 지켜보며 미국이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연줄을 따져 줄서기를 능사로 아는 우리 꼴이 훨씬 치사해졌다. 뿌리 향한 연어의 귀소본능은 죽기 전 종족번식을 꾀하는 성스러운 여정이다. 사람의 귀소본능은 안식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한국 정치가 출신지역 따져 지역갈등 일으키고, 이를 이용해 정략에 불을 지피고, 국민 편 가르는 짓으로 일관한 나머지 정치 불신이 도를 넘은 지경이다.
이 한해도 뒷 달력이 달랑 1장 남았다.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 떼의 장한 여정을 함께 느낄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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