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의 다양한 취미 이렇게 한다

대한민국 1%로 꼽히는 재벌들의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연예인과 재벌들의 일상은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끌리는 법이다. 재벌들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나, ‘로열패밀리’처럼 화려하게 살지도 모른다. 동시에 평범한 우리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일요서울]에서 연속기획으로 재계 오너가의 삶을 재조명해봤다. 다르지만 같은 듯 한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자. <편집자 주>
수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그룹 총수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전문경영인의 그것을 초월한다. 매일 중요한 결정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고 판단의 책임은 항상 홀로 떠안아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피 말리는 결단의 순간도 많았고 며칠 밤을 새우며 고민도 했다. 기업의 현실에 대한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많았다"고 스트레스를 털어놓은 바 있다.
때문에 대기업 총수들은 중압감을 해소하고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
미친 듯이 뛰고 땀을 흘려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에서부터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일에 더욱 몰두하는 “워커홀릭"스타일에 이르기까지 그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취미도 워커홀릭CEO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일이 취미라고 측근들은 입을 모은다. 일 외에는 딱히 즐기는 스포츠나 취미, 관심거리도 없다. 그나마 즐기는 여흥이라고는 회사 임원들과의 술자리가 전부로 알려진다.
정 회장의 경우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스타일로 알려지고 있지만, 종종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을 더한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그러니 업무를 보는 데 주말, 휴일이 따로 있을 턱이 없다.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이유도 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그의 스타일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이따금 저녁 식사자리를 마련해 임원들을 다독이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도 한다.
측근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앞으로도 해외출장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국내 머물 때는 가까운 산을 찾거나 피터드러커 등 해외 유명 석학의 경영 관련 서적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최신IT기기 활용하는 오너들 다수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일반인에게는 그룹 회장인 박용현 회장보다 더 친근한 편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함께 대표적인 재계의 트위터 마니아이자 얼리어댑터이기 때문이다.
두산 오너 일가 중 가장 젊기도 하지만 최신 IT기기와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IT계의 이슈메이커로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의 ‘아이패드2 개봉기’ 동영상이 유투브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수준급의 디카 촬영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가수 양희은씨가 낸 앨범 ‘1991'의 재킷 사진이 박 회장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갈대밭에서 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이 사진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양희은씨와 박 회장은 꽤 절친한 사이로, 박 회장의 사진을 우연히 본 양씨가 앨범 재킷 사진을 찍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의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재계의 사진작가’로 명성이 높을 정도로 전문가급 수준을 자랑한다. 박 회장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명사와 함께하는 장터 사진전’에도 사진을 출품한 바 있다. 박 회장이 찍은 사진 중 1990년대 벨기에 여행 중 찍은 ‘브뤼헤 운하’는 뛰어난 구도와 영상미로 전문가 못지않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그룹 회장들이 디카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한 사진을 찍고,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클래식 광(狂)’등 조용한 취미로 유명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은 각별한 음악 사랑을 과시한다. 평소 박 사장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사장은 본인 입으로도 ‘음악 마니아’라고 말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클래식에서부터 국악까지 그의 서초동 자택에는 1000여 장의 클래식 LP와 수백 장의 CD가 빼곡할 정도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시절부터 클래식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놨다. 처음엔 하루 4시간씩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온전히 클래식 음악만 들었더니 1년쯤 지나자 ‘귀가 트였다’고 했다. 또 수십 년 간의 음악 편력 덕분에 음악을 들으면 그대로 악보에 옮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음악 감상에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클래식을 10년쯤 들으니 장르를 초월해 모든 음악이 좋아졌고, 20년쯤 지난 후엔 행복해지더라”며 음악 예찬론을 펼쳤다.
그의 남다른 음악사랑은 샘표의 문화지원활동으로도 이어졌다. ‘공장’이라는 이색공간에 꽃 핀 그의 아트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1999년 락밴드 공연 ‘생생 버라이어티쇼’, 2000년 ‘공장미술제’에 이어 2005년부터는 샘표식품 이천공장에서 ‘샘표 스페이스’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박 사장은 “젊은 예술인들의 실험정신을 통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샘표의 비전이 만나 주목받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샘표 스페이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견업체인 우림건설 심영섭 회장은 독서광이다. 집무실은 마치 각종 서적들로 빼곡히 차 있어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심 회장은 아예 '독서경영'을 표방하며 매달 7000권의 서적을 사서 임직원들과 계열사 직원들에게 보낸다.
책만 보내는 게 아니라 심 회장이 직접 쓴 서평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편지를 책 속에 써 넣을 만큼 독서에 대한 애정이 깊다. 특히 모델하우스에도 도서관을 지을 만큼 독서 경영이 회사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책읽기는 건설현장 인부들도 예외가 아닐 정도다.
공부하는 CEO로서의 모습을 보여줘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심 회장은 “건설업에서 이젠 생존을 위한 방향 설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생존의 길은 책에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우림건설을 방문한 업계 관계자들이 “건설회사라기 보다는 문화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 분위기가 난다"고 할 정도로 회사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아파트형 공장 첫 사업이던 구로e비즈센터를 호텔 수준으로 설계한 '파격'도 독서의 힘에서 나왔다는 것이 사내의 평가다.
취미가 경영으로 이어지기도
조웅래 선양 회장은 맨발걷기 등을 통해 ‘에코힐링(Eco-healin g)’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충남지역에서 소주회사를 운영하면서 건강을 생각하는 맨발걷기 예찬론을 펼치기 때문이다. 1992년 ‘5425 휴대폰 벨소리’를 브랜드화해 벤처 성공신화를 만들어 낸 독특한 이력만큼 이나 이색적인 행보다.
‘에코힐링’은 선양의 기업철학이기도 하다. ‘자연을 통해 몸을 치유한다’는 의미로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조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맨발 마라톤대회, 피톤치드 마라톤, 숲속 음악회, 맨발걷기 캠페인 등 다양한 에코힐링 프로그램 역시 여기서 나왔다. 그는 또 시민들이 편하게 숲에서 맨발걷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족산 숲속 황톳길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그의 맨발 걷기 전도는 민간외교 성과로 그 빛을 발했다. 2007년 9월 셰이셀공화국의 외무장관과 대통령을 초청해 계족산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에코힐링을 함께 체험하여 감동을 전해줬다. 그 결과 이듬해 2월부터 매년 ‘에코원선양 세이 셸 국제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 행사는 단순한 마라톤 대회가 아닌 한국의 맛(음식, 술)과 멋(전통의상), 문화(공연)를 알리고 교류하는 문화행사로 펼쳐져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대우건설의 서종욱 사장은 건설업계에 소문난 스키 마니아다. 십 수 년 전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스키는 준 프로급이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슬로프에 올라 눈보라를 헤치며 눈길을 질주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사장 취임 이후 일정에 쫓겨 스키장을 찾지 못했지만 그의 취미는 경영에 녹아들고 있다.
서 사장은 일에 관한한 역대 어떤 CEO보다 꼼꼼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해외 수주 목표를 지난해보다 대폭 늘렸지만 검증된 시장에만 ‘올인'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산업경제부]
산업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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