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현 주소는 ‘비리 백화점’
농협의 현 주소는 ‘비리 백화점’
  • 우선미 기자
  • 입력 2010-06-08 13:15
  • 승인 2010.06.08 13:15
  • 호수 841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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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선거 비리 악순환 폭력배까지 동원
농협 관련 비리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다. ‘본전 뽑기’식 비리 악순환에 폭력배까지 동원해 상대 후보에게 상해를 가하는 사건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또 위로는 농협중앙 전임 회장부터 아래로 지방 농협조합장까지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개혁’과 ‘투명 경영’을 외치고 있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농협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해 11월, 농협 조합장 하순 선거를 목전에 둔 밀양의 한 후보가 괴한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몇 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지난 5월 25일, 상대 후보 측이 조직 폭력배를 동원해 벌인 테러였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을 접한 경상남도의 한 주민은 “국회의원 선거에도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농협 조합장이 어떤 자리 길래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농협과 관련한 사건들은 이 뿐만이 아니다. ‘비리’하면 ‘농협’이 떠오를 정도로 조합장 선거와 관련된 금품 살포 사건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달 16일, 포항북부경찰서는 포항 농협 이사 감사 임원 선거에 당선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당시 조합장 A씨(67)와 대의원 등 21명과 이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임원 B씨 등 9명이 농협협동조합법위반으로 대거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를 포함한 대의원들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선거 후보자 10명에게 각 각 100만 원씩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은 ‘조합 측에서 개최하는 야유회에 참가하지 않으면 선거에 불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은 임원 후보 중 B씨 등 7명에게 1인당 1500만 원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 직전에는 ‘표 몰아주기’를 합의해 3차례에 걸쳐 식사를 제공받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조합 금고에 보관 중이던 5천만 원이 사라져 경찰이 4개월 가까이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단서는 나오지 않고 있어 오리무중이다. 포항북부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비리 사건과 5천만 원이 사라진 사건과의 연결점을 찾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해당경찰서는 금고 담당직원 3명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소환 조사를 실시했고,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아 개인 명의의 통장과 가족 명의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 조사에서 새로운 단서가 나오지 않는한 지난 2월 횡령 사건도 미궁으로 남을 전망이다.

경남 창원의 한 단위농협 지점에서도 대출 비리를 저지르다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지난달 13일 창원지검 특수부는 창원 모 단위농협 지점장 C모씨(52)와 대출브로커 D모씨를 알선 수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D씨(42)는 빌딩 감정평가액을 부풀려 건축 시행사가 이 농협 지점에서 15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3억 5000여만 원을 받았다. 그는 같은 수법으로 2007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170억 원 대출을 알선해주고 총 6억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 상무인 C씨는 D씨에게 총 7000여만 원을 받아 검찰에게 적발됐다. 지난해 11월, 이 농협 감정 업무를 맡은 감정평가사 E모씨(49)는 자신이 감정했던 임야가 경매과정에서 과다 감정한 사실이 드러나 자살했었다.

비리 사건은 비단 경상도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충북지역 농협도 각종 비리와 불법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은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제천경찰서는 4월 27일 재직하는 농협에서 잡곡판매 대금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로 제천지역 모 농협 직원 장모씨(43)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 2008년 11월부터 지난 해 11월까지 잡곡 수매 및 판매 업무를 담당하면서 조합원 22명의 명의를 도용, 허위 잡곡수매전표를 작성한 뒤 판매 대금을 자신의 어머니(68) 통장으로 이체, 인출하는 수법으로 48회에 걸쳐 1억660만 원을 부당하게 챙긴 혐의다. 장씨는 경찰에서 개인 생활비와 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29일에도 충북지방경찰청은 옥천군지역 A농협이 감정평가액 보다 많은 금액에 자산을 매입한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벌였다. 당시 충북경찰은 지난 이 농협이 벼 건조·저장시설(DSC)을 짓기 위해 5억 원에 매입한 부동산이 감정결과 2억8000여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이 과정에서 매입을 담당한 전 조합장과 토지 소유주 간에 대가성 금품이 오고 갔는지 여부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혐의점을 찾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 직원은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농작물을 매입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만들어 1억여 원의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천경찰은 횡령 사실이 농협충북지역본부 자체 감사에서 드러나 고발에 따라 수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 농협들의 잇따른 불법 혐의가 드러나면서 수사결과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농협, 중앙회장의 막강한 권력 제재할 수단 필요

타공기업에 비해 농협에만 유독 비리 사건이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8년 직선제 이후 뽑힌 세 명의 농협중앙회장(현임 제외) 모두 비리 때문에 임기 도중 하차했다. 한호선·원철희 전 회장은 수 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농협의 세종증권(현 NH증권) 인수와 관련해 50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정대근 전 회장은 서울 양재동 부지를 싸게 넘기는 대가로 현대자동차로부터 3억 원의 뇌물을 받아 5년 징역형을 확정 받은바 있다.

이처럼 농협중앙회장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는 까닭에 대해 전문가들은 농협의 지배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농협관련 비리와 잡음들이 중앙회장에 집중된 막강한 권한 때문인데, 회장을 견제·감시할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명목적으로 농협중앙회 회장은 비상임직이다. 하지만 각 부문 대표는 회장이 추천하고, 농협 대의원 대회에서 승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사실상 회장 뜻대로 임명하는 구조다. 게다가 회장 임기는 4년인데 부문 대표의 임기는 2년. 연임을 하려면 회장의 의중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회장을 비상임으로 한 것은 단지 출근 안 할 자유, 책임 안 질 자유만 주고 권한은 그대로 놔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임기 4년의 조합장에 당선되면 평균 1억 원이 넘는 고액 연봉을 받게 된다. 제천의 한 조합원은 “승용차와 업무추진비까지 나오기 때문에 실속은 읍, 면장을 능가할 것”이라며, “거기에 부수입(?)도 짭짤할텐데 서로 다투어 조합회장을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연임제를 폐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더불어 중앙회장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를 튼실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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