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천국 꼬리표 뗀다더니…역시나 ‘양파’ 농협(?)

‘청렴한 농협, 투명한 농협, 깨끗한 농협’이라는 경영이념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비리천국’ 꼬리표를 달아 온 농협중앙회(회장 최원병)가 또 다시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농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국 도축장의 위생검사관 수가 법정 최소 규정에도 못 미쳐 환경단체로부터 구제역·콜레라 등 전염병 축산물 유통의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일에는 국방부로부터 저질 쇠고기 및 돼지고기 군부대 납품 사건과 관련 38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논란은 농협이 내부 임직원들을 상대로 ▲횡령 등 사고에 대한 제재기준 강화 ▲지역농협 및 계열사에 대한 클린카드 도입 등 ‘윤리경영 강화’를 선포한지 20여일 만에 발생해 농협 내부에서도 이에 따른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와 방만경영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최근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농협은 지난달 19일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에서 최 회장 등 임직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윤리경영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내년부터 윤리경영 체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결의대회를 가진지 채 20일도 지나지 않아 도축장 위생관리 논란에 이어 손배소 문제까지 불거져 관련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결의대회가 그저 결의에 그치고 말았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고 있다.
각 도축장별 평균 3.2명 검사관 부족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배포, 국내 84개 도축장 중 73.8%에 해당하는 62개소가 현행 축산물가공처리법에 규정한 위생검사관 인력을 채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축산물가공처리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검사관 1인당 1일 도축검사 규모는 소 30마리, 돼지 300마리, 닭 2만마리 미만으로 각각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도축장에서는 검사관 1인당 이 같은 법정기준치를 두 배 가량 넘어선 도축가축을 검사해온 것.
이런 가운데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는 농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도축장에서조차 이러한 규제가 지켜지지 않아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농협의 위생관리에 대한 논란의 불씨가 지펴지게 됐다. 특히 농협산하 전국 7개소에 걸친 모든 도축장의 위생검사관 수는 법정기준치 미달인 것으로 판명, 위생관리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강기갑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명의 위생검사관이 배치돼야하는 농협서울공판장의 경우 4명만이 투입, 6명의 검사관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평균 3.2명의 검사관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축장에서 위생검사관은 도축된 가축의 전염병 등 위생·품질검사는 물론 도축장 전체의 위생상태를 관리·감독하는 일을 맡는다. 때문에 검사관이 부족하게 될 경우 전염병에 감염된 육류의 시중 유통 가능성과 함께 도축 후 발생되는 내장, 피 등 부산물 처리가 허술해질 가능성까지 높아질 수 있다.
또 이 같은 위생검사관 부족 논란은 최근 불거진 국방부의 농협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건과도 ‘허술’이라는 맥락에서 비슷하게 풀이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 5일 국가는 국방부를 대신해 최근 “저질고기 납품을 묵인해 군에 유통시킨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농협중앙회를 상대로 38억5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검찰에 따르면 K사 등 6명의 군납업체 대표들은 지난해 농협 인천사업소의 검사 허술과 묵인 아래 같은 해 3월부터 7개월 여간 저질 쇠고기와 돼지고기 300여톤을 군에 납품해 온 혐의로 유죄판결 받은 바 있다.
농협, 검사관 인원 부족한 사실 조차 몰라
이와 관련 농협관계자는 “이번 소송건은 지난해 불거졌던 사건으로 이미 마무리된 사안”이라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윤리경영을 확고히 다짐한 직후 불미스러운 내용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리게 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생검사관 부족 논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관련부서 담당자조차 현재 도축장의 검사관 수가 몇 명인지는 물론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농협 축산유통부 관계자는 “검사관 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며 “검사관과 보조검사원은 자사 직원이 아닌 지자체에서 투입되는 인원”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검사관 수가 부족하더라도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기준에 부합시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수의사와 실험실 등을 갖춰 위생·품질 관리에 힘쓰고 있다”며 “검사관의 경우 정부에서 인원을 배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농협은 도축장에 대한 검사관 수가 부족하다는 기본적인 사실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HACCP 기준에 맞추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운영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정부 한 관계자는 “지차체 소속의 위생검사관 부족문제를 채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고용한 인원으로 부족부분을 충족시킬 경우, 공정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온 농협이 이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처리했을지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증원 고려하지만 쉽지 않아”
농림수산식품부 안전위생과 한 관계자는 “위생검사관 수 증원을 놓고 행정안정부와 수년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지자체 소속의 공무원을 늘리는 사안이기 때문에 쉽게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미봉책으로 2005년 검사보조원 제도를 도입했지만 보조원 배치조차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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