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장’ …직원 돌연사 은폐 냄새 진동
‘죽음의 공장’ …직원 돌연사 은폐 냄새 진동
  • 장익창 
  • 입력 2007-12-05 09:50
  • 승인 2007.12.05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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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노동부 커넥션 의혹

1년 반 사이 돌연사를 포함 15명의 직원이 숨진 한국타이어.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역학조사단을 구성, 한국타이어 금산공장과 대전공장의 작업환경평가를 했으나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동안 사망자 유가족들, 민주노동당 대전시당을 주축으로 대전지역 16개 시민단체들은 믿을 수 있는 전문가를 역학조사에 넣으라고 촉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 11월 28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관련 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역학조사 진행과정에 대한 개괄적 설명회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공개내용은 전혀 없었다는 소리가 높다. 이로 인해 ‘한국타이어가 역학조사를 은폐하려 했다’ ‘회사와 노동부 사이에 커넥션이 있다’ 는 등 의혹들만 커지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


지난해 5월 이후 지금까지 한국타이어 전·현직 직원들 중 심근경색 7명, 폐암 2명, 식도암 1명, 간세포암 1명, 뇌수막종양 1명, 사고사 2명, 자살 1명 등 15명이 숨졌다.

돌연사한 직원들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물질은 타이어 접착에 들어가는 유기용제 솔벤트. 직원들은 보호 장비 없이 때로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응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부장은 “솔벤트는 호흡기를 통해 흡수돼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톨루엔이 주성분이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돌연사로 사망하는 것은 톨루엔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방송에서 솔벤트 유해성과 관련된 실험 장면을 내보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유해하다는 결론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는 “방송내용은 밀폐된 공간에서 짙은 농도의 솔벤트를 쥐에게 흡입시킨 것으로 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타이어의 산재신청은 같은 업종 회사들보다 매우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타이어 유족대책위원회엔 7명의 사망자 가족들이 모여 원인규명과 보상요구 등을 위해 뛰고 있다.

조호영 대책위 회장은 “유족들 모두 가족들이 의문사를 당했으나 산재가 인정된 사람은 단 한명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우원식 의원, 김영대 의원, 이상민 의원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단을 이뤄 활동하고 있다. 조사단에 따르면 2004년부터 최근까지 한국타이어 대전·금산공장, 연구소의 산재신청 건수가 한해 15~29건에 불과했다. 이는 경쟁업체인 금호타이어의 같은 기간 산재 처리 건수(200~560건)보다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조사단은 “금호타이어가 한국타이어보다 근로자 수가 1.5배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국타이어의 산재신청률은 아주 낮다. 회사 쪽에서 산재신청을 막아왔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곳곳에 은폐와 커넥션 의혹

한국타이어 직원 사망 문제와 관련된 역학조사는 한국산업안전공단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소속 전문가들로 이뤄진 조사단이 맡고 있다.

조사단은 금산공장의 경우 10월 31일과 1일, 대전공장은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현장 환경을 평가했다. 산업안전공단은 조사단의 현장조사에 앞서 언제 조사가 있을 것이라는 일정을 회사 쪽에 알려준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산업안전공단은 “공문으로 10월 18일 회사 쪽에 통보해줬다”고 밝혔다.

공단 관계자는 “역학조사는 점검이나 감독이 아니라 광범위한 연구다. 회사 쪽 협조 없이는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사전 통보해 주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에선 이를 통해 회사가 사전에 손을 써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이런 과정에서 정부기관과의 커넥션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대전시당은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잇따른 돌연사 원인 파악을 위한 대전지방노동청과 한국산업안전공단의 현장 작업환경조사를 앞두고 회사가 철저한 현장 청소 등을 지시한 문서를 공개했다.

대전시당은 한국타이어가 ‘대전공장 조사에 앞서 11월 7일 전까지 사용해온 솔벤트통을 절대 쓰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e-메일을 각 조장들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이 메일 골자는 ▲검사라인에서 사용하는 솔벤트통을 물질보건안전자료(MSDS)를 부착한 통으로 사용토록 교육할 것 ▲절대 그 이전 통은 쓰지 말 것 ▲검사대 위와 컨베이어벨트 사이 또는 주위청소를 8~12일 해서 군더더기 및 찌꺼기를 완전 제거할 것 등이 포함돼 있다.

대전시당 민병기 사무국장은 “한국타이어측이 역학조사에 대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업환경을 없앰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유족대책위원회 조호영 회장은 “믿을 수 있는 전문가가 역학조사에 참여했다면 중간 상황을 알 수 있겠으나 회사 쪽은 그동안 직원과 가족들 신상까지 조사해갔다. 현재 조사과정은 전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사장이나 공장장이 지시한 회사 차원의 공문이 아니고 작업반 주임이 담당직원들에게 보낸 문서일 뿐이다. 솔벤트통을 바꾸도록 한 것도 MSDS가 떨어져나간 통을 방치했다간 문제소지가 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한 것일 뿐이다”고 답했다.

노동자들이 현장조사 중 착용했던 시료포집기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병기 사무국장은 “작업환경조사를 위해 노동자들이 착용한 시료포집기 수거는 조사단이 아닌 회사간부가 직접 했다. 역학조사단이 이를 확인한 것은 15분 뒤였다. 그동안 직원들이 착용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조사대상 작업자들을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대전지방노동청과 한국타이어 노동조합은 11월 29일과 30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중앙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직무스트레스와 관련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역시도 첫날은 비공개, 둘째 날은 일부 공개로 진행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을지대병원 산업안전의학과 오장균 교수가 직무스트레스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평균 스트레스 점수가 한국 남성근로자 기준치의 하위 50%에 해당하는 등 평균치보다 낮았다는 게 조사결과였다.

그러나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한국타이어 한 직원은 “설문지를 주임반장이 돌리고 주임반장이 받아가서 나온 분석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29일 직무스트레스에 관한 설문조사는 원칙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게 정부 쪽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정부와 한국타이어는 ‘일부에서 나오는 커넥션 의혹은 당치 않다’며 펄쩍 뛰고 있다. 노동부는 역학조사와 관련된 업무는 전적으로 산업안전공단이 맡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공단은 유족과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전문가들의 역학 참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불가 사유를 들고 나왔다.


“커넥션 의혹 당치 않다”

공단관계자는 “역학조사는 법적으로 공공기관인 산업안전공단연구원에서만 하도록 돼 있다. 조사과정에서 개인정보가 드러나 공개될 가능성이 있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족과 시민단체들의 추천 전문가 참여요청 건에 대해선 진행과정과 의견수렴을 위한 자문위원회의 구성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비공개과정에 대해선 “역학조사는 결과를 갖고 말할 뿐이다”고 전했다.

공단은 역학조사가 시한이 정해진 게 아니나 중간조사결과는 올 연말, 최종 결과조사는 내년 1월말까지 끝낸 뒤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타이어 역시 역학조사와 관련된 규정대로 조사를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모든 진행과 결정은 정부기관이 정하는 대로 하고 있다. 유족들과도 지난달에만 세 번 이상의 공식 만남과 수시 만남을 통해 견해 차이를 좁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익창  sanbada@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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